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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역사다(4)| 역사란 무엇인가? – 권길홍 수필가

전쟁후 가난, 하고싶어도 할 수 없었던 공부, 월남전 파병, 개발지상주의 폐해, 민주주의 항거 등 한국의 근대사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왔다. 현재 20여 년의 공직을 마무리 짓고 귀촌했다. 국민소득3만달러를 돌파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어떤 고난과 아픔을 가졌는지 이야기해 보고 싶다. 사실 우리 모두는 역사다./권길홍=gapowon@naver.com

참 많이도 먹은 나이다. 무려 일흔하고도 네 살이나! 아무도 오라고 하지 않은 세월은 저 혼자서 나를 밀어 넣듯 노년으로 보냈는데, 아무 한 것도 없이 나이만 먹어 무척 괴로웠다. 아스라이 멀어져 가는 내 과거는 아무 말이 없는데, 이리도 속절없이 늙어만 가는데, 내가 본 거, 들은 건 어쩌지, 고민하며 괴로워했다.
속물처럼 늙을수록 돈 있어야 하고, 흔히들 말하는 대로 건강해야 하고 친구가 있어야 된다는데 그 많은 시간을 돈만 가지고 폼잡다, 건강만 하다고, 또 친구만 있다고 살아진다면 얼마나 좋겠나. 그 물 흐르듯 보낸 시간은 계속 가는데, 뭘 할까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다. 여행도 다녀보고 정원도 가꾸어보고 자식들에게 매달리듯 잔소리도 해봐야 남은 거 하나 없어 그리도 허탈했었다.
한편으로는 늙어서 뭘 할까 걱정만 하며 조바심을 쳤는데, 몸은 어느덧 시들지만 정신은 이리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내 젊은 시절에 겪었던 상처는 지금껏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칼날이 되어 후벼파듯 뛰쳐나오려는데, 허공을 향해 내지르고 싶었던 그 말들, 말들! 억울하고 괴로워하고, 구겨지고 쪼그라들었던 내 몸 속에 박혀있었을 그 말들은 다 어쩌지?
역사란 무엇인가? 힘 있는 자가 제 뜻대로 그려대는 글일 뿐인가? 그리고 그 역사를 움직이는 사람은 누구인가? 다수를 차지하는 민중인가? 아니면 어떤 특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인가? 우린 흔히들 다수의 전체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내가 이 글에서 큰 제목으로 뽑았던 우리 모두는 역사라고 했지만 바로 알아야 한다. 역사에 대한 의식 없이, 아무 생각없이 사는 많은 민초들이 감히 역사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 한국인들이 우리끼리 하는 말! 참 똑똑하다고! 손재주도 좋고 머리도 뛰어나서 모든 일을 잘 해낸다고! 그러면서 위대한 민족이라고 자화자찬한다. 사실일까?
아니, 못 먹고 못 살 때는 이리 말해도 된다. 후손들에게 남겨줄 거라고는 부랄 두 쪽밖에 없었으니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찬란한 역사니 위대한 민족이니 하며 떠들어도 된다. 만주벌판을 호령했던 고구려의 후손이라고 가르쳐도 된다. 하긴 이 역사도 중국의 동북공정 속에 포함되어 중국의 자신들 역사로 편입하려고 눈이 벌겋지만. 그래서 세계적으로 우리만큼 근면하고 악착같은 민족이 없다고! 그리 자랑하면서 견뎌내도 되지만, 그러나 세계 십몇 위의 경제력에, 단군 이후에 단일 품목으로는 최대의 금액인 원자력발전이라는 최첨단 기술과 시설을 중동에 수출하면서 금액에서는 세계 8위가 되어 영국이나 프랑스를 앞선 나라라면서 잘못된 역사 지식을 가르치면 되는가?
정말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아니! 머리가 좋고 뛰어난 민족이라면서 그리도 허술하게 일본에 나라까지 빼앗기고 무려 36년간이나 일본의 지배를 받았나? 또 그 별거 아닌 명, 청나라에 왜 빌붙어 살며 상전 모시듯 사대나 하고 살았나? 그것도 오백 년 넘게! 그 버릇이 지금도 남아 ‘사드’라는 내 나라 방위시설에 중국이 감 놔라 배 놔라 하는데도 대꾸 한번 못하고 지레 주눅이 드나? 그게 똑똑한 나라의 사람들이 하는 짓인가? 6.25 전쟁 때는 속절없이 쫓기고 계속 패전하다가 거의 낙동강까지 밀렸으나 미국의 도움으로 겨우 지켜낸! 그런 미국을 한국에서 나가라고! 국제정세에도 어두운 무지한 나라에 은혜도 모르는 나라! 그게 똑똑한 한국 사람이 보여줄 짓인가? 또 얼마 전까지 굶기를 밥 먹듯 하며 지낸 나라가 똑똑한 나라면 밥은 먹고 살아가는 동남아나 아프리카도 우리보다 더 잘나고 똑똑한 나라인가?
아니 또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와 경제적 여유를 누가 이끌었고 어떤 과정을 겪으면서 달성한 지를 알아야 하는 건 아닌가? 우리가 바로 얼마 전까지 초근목피로 생계를 유지하고 미국의 잉여농산물로 겨우 목구멍에 풀칠만 하고 살았던 나라라는 건 다 잊었나? 그 가난하고 못살았던 시대를 뚫고 나와 잘 살게 되었던 역사에 대한 성찰과 판단을 다시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세계의 숱한 큰 나라와 강대국인 여러 나라들 속에서 그래도 십몇 위의 선진국 언저리로 다가섰던 그 힘의 원천이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사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조선의 지배계급인 양반들이 끊임없이 당파로 나눠지고 분쟁이나 일삼다 그 귀한 세월 다 보낸, 정말 이웃나라인 일본은 이때 벌써 세계를 향해 달려갔는데 당파싸움으로 나라를 거들낸 그 어리석은 나라의 백성들을 경제개발이다 새마을 운동이다 하며 단합시킨 사람이 누구며 그 사람은 무엇 때문에 그리도 목매가며 이 민족을 닦달하다시피 뭉치게 한 이유라도 마음에 담아야 하는 건 아닐까?
또 우리 젊은이들이 3포니 7포니 하고 좌절하다가 이젠 노골적으로 헬조선이라고 자기들이 살고 있는 나라를 비하하고 욕하는 그런 국민들이 잘난 나라의 사람들인가? 누가 그렇게 만들었나?
아니 비록 일부의 사람이겠지만 88만원 세대라고 자기비하하며 긍지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잘난 민족이라고 떠든다면 잘나지 않은 민족이 어디 있을까? 이런 식으로 터무니없이 잘난 민족이라고 잘못 가르치니 우리 젊은이들이 마치 게을러도 되고 부모님들께 빌붙어 부끄러운 줄 모르고 공짜밥을 얻어먹어도 된다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남들은 힘든 일을 해도 자신은 편한 일만 찾고 번듯한 좋은 일자리만 찾으면서도 마치 일만 하면 잘할 것처럼 생각되고 뭐든지 쉽게 성공할 거라고 자만하고!
우리의 그 어렵던 시절은 못살았다고 좌절한 시절이 아니라, 또 가난하다고 우리를 비하하며 체념하고 살았던 시절이 아니었다. 그 누군가가 깃발을 들고 나가자 하면 그 가리킨 방향을 따라 나아간 게 바로 서독의 지하 막장인 탄광에 들어가며 살아서 만나자고, “그뤽 오프”라고 눈물로 외쳤던 광부와, 시체를 닦으면서도 당당했던 서독의 간호사였고, 또 위험한 원양어선도 마다하지 않고 바다로 떠났다. 정말 고물배니 닳고 닳은 낡은 배에 태운다고 불평하기보다, 그 망망대해의 거센 파도에도 두려움 없이 맡겨준 일에 그물을 죽어라 당기며 묵묵히 따랐다. 그래서 손바닥의 손금이나 지문이 다 닳아 흔적도 없이 마치 바위처럼 뭉툭한 손으로 변할 정도로 힘들어도 해냈다. 또 열일곱,여덟의 꽃다운 청춘의 우리들 누나였고 형님이었고 언니며 오빠인 공돌이 공순이는 하루 열네다섯 시간의 잔업이다 특근이다 하며 새벽부터 밤늦도록 휴일도 없이 일했던 우리의 젊은이들!
우린 열심히 살고 어려움도 이겨내며 견뎌야 하는 줄 알았다. 시골에선 쌀 한 톨이라도 더 생산하려 뜨거운 땡볕에서도 땅을 갈았고! 또 죽음이 오가는 곳, 전장터로 가라고 나라가 명령하니 돌아올 수 있을까, 가족을 떠나고 나라를 떠나는데 불안하기도 하고 나라 잘못 만난 죄라고 체념하며 떠났다. 마음속으로는 이 전쟁의 족쇄를 벗겨주길 간절히 바랬지만 누가 우리를 이 가난의 사슬에서 놓여나게 해줄 수 있을까, 애초 바라지도 않고 절망하고 마음으로 울면서도 태연한 척 월남전에 참전했다. 정말 나라가 시키니까! 그 누군가가 가리켰던 곳으로 묵묵히 떠났다 온 세계가 젊은이들의 피를 팔아 미국의 달러를 구걸한다고 비난해도 우리는 떠났다..
정말 그 누군가의 의지와 고집과 뚝심으로 밀어부친 일에 우리 모두가 이를 악물고 해낸 결과가 바로 오늘이 아닐까?
이런 역사를 하찮다고 생각하는가? 그래서 이런 위대한 과업을 이룩한 그 분을 독재자라고 비난하거나 이 시절을 잘못된 역사라고 가르치거나 왜곡해도 되는가? 전세계가 원조 받았던 나라에서 원조를 해주는 나라가 되었다고 우리나라와 그 지도자를 칭송하면서 존경하는 역사! 정말 영국의 더 타임즈 기자인 앤드류 새먼이라는 분이 말한 라는 우리 시절의 찬란했던 그 역사를 언급도 하지 않으면서 ‘한강의 기적’을 부인하는가? 아니다. 우리 오천 년 역사에서 이처럼 위대한 역사는 없었다고 감히 단언한다.
역사에 대한 반성이 없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든가?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이다.
또 자신의 역사에서 긍지를 찾지 못한 민족은 자부심도 없는 하찮은 인간이 될 뿐이다. 이 찬란한 역사를 두 눈으로 보고 겪어낸 사람인 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