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오피니언)칼럼

고향에 띄우는 편지

문경자
논설위원

최남백 문학비 제막식(합천 망향의 동산)에 다녀 왔다. 한국소설가협회와 한국산문 작가협회(수필가) 회원 120명을 태운 버스가 망향의 동산에 도착했다. 얼마나 아늑하고 조용한지 숨소리 조차 크게 들릴까 염려되었다. 합천댐의 푸른 물결은 봄 햇살에 눈을 감고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듯했다. 주위에 경관이 빼어나고 푸르른 소나무는 댐의 전설을 읽는 듯이 보였다. 날씨는 약간 흐리고 봄비가 내릴 것 같았다. 여기는 경남 합천군 봉산면 김봉리다.
수몰지역을 직접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합천을 오가며 바쁜 핑계로 그냥 지나쳤다. 이곳에 와서 보니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각정자에서 바라보니 주위가 아름답고 소나무의 배경이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하였다. 아래로 보이는 것은 물뿐이었다. 더 깊이 파고 드니 옹기종기 모여 살던 고향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 둘 흰구름이 되어 정처 없이 떠간다. 저 속에 고향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을까! 순희 영희 철수가 뛰어 놀던 작은 집에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와 형제들이 화목하게 모여 살던 정든 집. 봄이면 농사일을 시작하고 먼 산에 진달래 동구 밖 개나리가 피면 처녀총각들 마음을 설레게 하는 봄밤의 향기. 여름이면 모깃불 피워놓고 수박을 나누어 먹으며 웃음꽃이 영식이네 담장에 꽃을 피우기도 하였다. 가을이면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 쌀밥을 고봉으로 먹을 수 있고 할아버지 제삿날에는 노란 시루떡도 맛볼 수가 있어 얼굴에 핀 마른버짐도 떨어져 나갔다. 겨울이면 달빛이 부숴지는 골목길을 따라 마실을 가면 달님도 내 머리 위에 올라 타고 할머니 집 앞까지 바래다 주곤 하였지! 아득하게만 떠오르는 환상을 쫓아 본다. 내가 어릴 때의 일이다. 아버지는 봉산초교에서 교직으로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아버지를 따라 봉산초교에 가보았다. 작은 목조 건물로 되어있던 예쁜 학교였다. 아버지는 학생들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며 설명까지 해주었다. 일년에 한 번 합천군 체육대회가 열릴 때는 봉산초교 선수들을 율곡면 영전초교에 데리고 와서 꼭 우리 봉산이 이긴다며 필승을 다짐하던 때도 있었다. 까마득한 기억이 스쳤다. 또 다른 기억에 남는 것은 무서운 공중다리다. 아찔하고 어지러운 다리 위에서 한 발짝도 떼지 못하고 중간에 줄을 잡고 앉아 울던 때가 있었다. 대낮인데도 까만 밤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운 곳을 가만히 뒤돌아 본다.
합천 망향의 동산에서 주민들과 작가들이 모여 최남백 문학비 제막식이 거행되었다. 하늘도 감동을 받았는지 비는 내리지 않았다. 경남 합천 출신인 최남백 소설가는 하얀 백발에 검정색 코트를 입고 팔순의 나이가 비껴갈 정도로 건강한 모습이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뵙는다는 것도 행운이다. “저도 합천출신입니다.” “어디라고?” “율곡면 본천입니다.” “반갑네” 라며 대화를 하다 보니 친할아버지와 손녀가 오랜만에 만나 대화하는 느낌이 들었다. 온화하고 조용한 성품에 따듯함이 스며 있었다. 표정은 동화 속에 나오는 소년으로 그려졌다. 고향이 수몰되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한국산문』4월호 인터뷰한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소설『수몰촌』과 최남백 문학기념비. 1985년 TV 문학관에도 방영되었다. 수몰촌은 합천댐 개발에 의해 수몰될 날이 며칠 남지 않은 강가의 한 노파를 배경으로 상투 하나를 지키기 위해 죽음까지도 불사했던 조부를 생각하고 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주민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작가는 고향 노파의 지명을 남기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 수몰민들이 망향공원을 세웠고 소설가 협회에서는 이를 기려 최남백 문학비를 올 4월 16일에 제막식과 세미나 등 행사가 열렸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인사말에서는 보잘것없는 문학비 행사를 위해 멀리 서울에서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 드린다고 했다. 돌아서 가는 모습 뒤로 수몰촌의 그림자가 발걸음마다 새겨졌다.
푸르름이 저물어갈 즈음 훤하게 뚫린 도로를 따라 네 바퀴가 신나게 달렸다. 벌들이 날아와 따끔한 입맞춤을 하는지 벚꽃이 파르르 떨고 있다. 사월의 봄 향기에 젖어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달려가는 길은 가슴이 떨리고 앞에 보이는 아름다운 경치에 흠뻑 젖었다. 골짜기에서 시커먼 손님이 찾아와서 해인사의 모습을 슬그머니 감추어 버렸다. 그러더니 비님이 찾아와 호텔 창가에 마구 뿌렸다. 심술궂은 바람은 노크를 하며 문을 열어 달라며 큰 눈물을 뚝뚝 흘린다. 아무리 그래도 심술궂은 너는 반갑지 않아 어서 썩 물러가라며 내가 손짓으로 보냈다. 코고는 소리에 밤은 깊어 가고 낯선 사람과의 동침이 시작되었다.
친정동네에 와서 얼마나 좋아요. 내가 올 신년사에서 한국산문 가족들과 합천을 방문한다는 내용이 합천신문에 게재되었다. 꿈은 이루어 졌다. 기를 받아서 열심히 글을 쓰겠다고 했다. 합천이 고향이라 좋으시겠어요. 임헌영 교수는 항상 그런 말을 했다. 이렇게 함께 여행을 와서 더 행복하고 자랑스러웠다.
최남백 소설가도 항상 건강하고 다시 또 만나 뵙기를 기대해 본다. 합천에 오면 다시 한 번 망향의 동산을 찾아 수몰촌의 기억을 떠 올려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