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역사다 (5)|우리나라의 피라미드는 어디 있는가? – 권길홍 수필가
전쟁후 가난, 하고싶어도 할 수 없었던 공부, 월남전 파병, 개발지상주의 폐해, 민주주의 항거 등 한국의 근대사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왔다. 현재 20여 년의 공직을 마무리 짓고 귀촌했다. 국민소득3만달러를 돌파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어떤 고난과 아픔을 가졌는지 이야기해 보고 싶다. 사실 우리 모두는 역사다./권길홍=gapowon@naver.com

우리 역사 얘기를 한다면서 생뚱맞게 남의 나라의 건조물로 제목을 올리니 독자 여러분께서는 좀 당황하셨을 수도 있고, 또 여기에 올리는 우리나라의 시설은 순전히 필자의 개인 의견이라 독자들과 다를 수 있다는 걸 양해해 주시면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의 긴 역사 안에서 모든 국민의 정신이 녹아있고 자부심을 가진 세계적인 자랑거리가 되는 무언가를 찾아내어 하나쯤 마음에 담아둔다면 좋은 일이라 생각된다. 한나라의 구성요소는 국민과 영토, 그리고 주권이다. 그렇지만 이 3요소 외에도 국민 모두의 정신에 심어줄 무언가를 찾기 위한 이런 작업이 필요한 건 국민을 한마음으로 뭉치게 하고 또 자긍심을 불러일으켜, 우리 모두의 정신적 유대감과 동질감을 가질 수 있기에 국민 화합의 차원에서, 또 역사적인 의미에서 더 나아가 애국심을 길러줄 수 있다. 그 일은 마치 이집트의 피라미드처럼 또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처럼, 우리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무언가가 되리라.
그래서 우리나라를 상징하면서 전 국민의 공감을 주고 단합시킬 수 있는 건조물로 어떤 것을 꼽을까? 남대문일까? 그래도 서울의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어 잘 알려진 건물이니까. 그렇지 않으면 천년이 넘은 불국사일까? 청운·백운교를 설치한 아름다운 건축물에 다보탑과 석가탑을 품고 있는. 또 진짜 불교의 신비한 부처님의 미소를 머금고 있는 석굴암까지. 이런 지난 시절의 건축물과 달리 최근의 건조물 가운데서 뽑는다면?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었던 빈털터리인 우리나라가 무리를 해서라도 이루어낸 사업 중 우리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으면서 가장 어려웠던 사업은 무엇이었을까? 대통령을 지낸 사람들까지 반대하고 큰 언론사인 조중동에서도, 뭐 힘 있고 가진 자들만이 나들이 갈 때 이용되는 도로라고 비웃으며, 나라 망하는 일을 한다고 반대했던, 2차 경제개발계획 기간 중에 완공된 <경부고속도로>가 가장 힘든 사업에 우리나라의 최고 시설이라면 어떨까?
아무리 역사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이 거대한 나라의 경제개발의 역사를 나타내는 숫자보다 그 이면의 좌절을 겪어낸 스토리가 아닐까? 어찌 보면 맨주먹으로 일어선 그 집념이 더 위대한 건 아닐까?
경제는 숫자만 제시하고 설명하면 가장 편하고 쉽다. 이때까지는 그리 해왔고 그런 편한 방법으로 역사와 경제를 설명했다. 우리의 모든 업적은 경제적인 가치로만 바라보았고 또 숫자로만 설명되었지만 역사적 관점에서 사고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우리가 이룬 모든 업적을 숫자로 드러내는 경제를 떠나 역사로 보았을 때 아마도 가슴이 뛰는 벅찬 감동이 많을 것 같다.
어떤 개인이나 회사가 또 나라가 위대하다고 칭송을 받으려면, 성공한 실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좌절과 실패, 그리고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내는 능력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한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국민 모두의 정신에 심을 피라미드를 찾기 위한 숙제도 역시 우리 근현대 역사적 관점에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내는 능력의 유무로 찾아야 할 것 아닐까?
포항제철은 하나의 기업일 뿐만 아니라 빈곤 타파와 경제 부흥을 향한 우리 국민 모두의 의지였다. 포항, 광양의 양대 제철소 체제의 완공을 끝으로 반세기에 걸친 대장정을 마무리하였다지만, 돌이켜 보면 참으로 형극(荊棘)과도 같은 길이었다. 자본도, 기술도, 경험도 없는 불모지에서, 용광로 구경조차 해본 일이 없는 그 당시의 여건에서, 오늘날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제철 국가로 일어섰다는 것은 분명히 우리가 이룩한 신화이다.
전 세계가 반대하던 내용을 요약하면, KISA가 약속한 차관 도입이 막혀 있는 상황에서 세계은행의 차관사업 타당성 조사에서도 한국은 제철소를 건설할 능력도, 운영할 여력도 없다는 것이었다.
IBRD 실무 담당자인 영국인 자페가 1968년 한국경제 평가보고서에서, 한국의 제철공장은 엄청난 외환비용에 비추어 경제성이 의심스러우므로 이를 연기하고 노동-기술 집약적인 기계공업 개발을 우선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경제에 대해 어느 나라보다 우호적이고 협력적이었던 서독이 동백림사건으로 태도를 바꿔서 냉랭히 나오고, 한일각료회의에 가서 종합제철 차관에 협력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일본 정부도 퇴짜를 놓았다. 오스트리아 국립은행 총재 헬무트 하세의 회고에서도 세계의 모든 철강인들이 과연 우리 포항제철이 성공리에 건설될 수 있을까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던 때, 일부 사람들은 우리 한국의 결정을 마치 자살행위로 보는 듯 했다고. 우리는 정말 캄캄한 밤길에 그냥 버려졌던 나라였는데 제철산업을 추진하겠다 했으니 전 세계가 얼마나 조롱했을까?
제철소를 지을 돈 없고, 제철소를 움직일 기술도 없었고, 온 세계가 반대하고 덩달아 우리 일부 국민들까지 반대한 사업의 책임자로 박태준을 임명하는데 처음부터 이 일을 맡기려 한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유정회 국회의원을 하라고 권했는데 그때 박태준의 입에서 “나 같은 사람은 조금도 어긋나거나 비뚤어진 걸 못 보는 사람인데 그런 내가 국회의원을 하면 아마도 조용할 날이 없을 건데” 라며 고사하니 포항제철의 모든 책임을 주면서 완공에 경영까지 맡겼다는 전설!
우리는 박정희를 장기집권에 독재자라고 쉽게 말한다. 간단히 우리나라의 제철산업 하나만 보더라도 계획부터 제철이 되어 나오기까지 무려 10년이 넘게 걸렸는데 그 사업을 자신의 정상적 임기에 해결이 될 수 있겠으며 어떻게 끝까지 물고 늘어질 수 있을까? 자금 하나 없었는데! 포항제철은 연인원 810만 명,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의 3배에 이르는 1천135억5천300만원을 투입하여 완공이 된 시설이다. 또 어떻게 가동한지 6개월밖에 안 되는 종합제철 공장에서 1천200만 달러의 이익을 낼 수 있겠나?
미국 스탠포드대학교 비즈니스스쿨이 다음과 같이 명쾌히 분석했다. “포항제철은 박정희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와 박태준 사장의 탁월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고.
포항제철이 완공되면서 값싸고 질 좋은 철강의 원활한 공급으로 조선업이 발전하고, 건설업과 기계공업, 자동차산업이 약진하기 시작했다. 제철산업을 전 세계가 반대하고 돈 한 푼 없는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추진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피라미드보다 더 가치 있고 훌륭한 작품이 바로 <포항제철>이라고 감히 단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