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부부 은사님 팔순을 축하합니다’ – 정병수 경영학박사
시골 중학교 1학년, 생물 수업시간에 27살의 초년생 총각 선생님은 종족 번식에 대해 설명하려 한다. 까까머리 학생들은 감수성과 호기심으로 눈망울이 반짝인다. 총각 선생님은 도시에서 대학을 다닌 ROTC 출신으로 시골에선 보기 드문 멋쟁이시다. 그런데 종족 번식을 설명하는데는 뭔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 농촌 학생들은 집에서 소, 돼지, 염소, 닭, 토끼 등 가축들의 교배를 일상적으로 보면서 자라므로 특별한 것도 아닌데, 도시 출신의 총각 선생님이 매끄럽게 설명하려니 왠지 쑥스러워하는 눈치다.
그 총각 선생님이 1학년 나의 담임을 맡으셨던 최태환 선생님이셨다. 당시가 1967년 봄이었으니, 2020년 올해로 53년 전의 일이요, 그 때 까까머리 소년도 이제는 손자손녀가 있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반세기도 더 된 그 옛날, 담임 선생님의 속 마음은 깊었으나 말수가 적은 편이라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편하게 다가서기가 쉽지 않았다. 말씀도 다소 무뚝뚝해 보였으나 논리정연하고 카리스마로 오히려 존경을 받았다. 그리고 여러 사람과 놀아야 할 때는 뒤로 빼지않고 잘 어울리시는 분이셨다. 특히 1학년 봄소풍 때 학생들 앞에서 선생님께선 멋지게 하모니카를 부셨다. 사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5학년 2년간 학교 악대부 소속으로 하모니카를 분다고 단원 속에 묻혀 다녔지만 하모니카를 불지는 못하고 그냥 들고 다닌 나만의 비밀이 있었기에, 그 날 담임선생님께서 분 하모니카 연주를 잊을 수가 없다.
그러니 존경하지 않을 수 있으랴! 존경하는 선생님으로부터 귀여움을 받고 싶을 땐 대수롭지 않은 책망에도 상처를 받기 쉬운가 보다. 사건의 발단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나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일로 뒤 좌석의 친구가 꾸지람을 듣자, 무심코 내 이름을 거론하는 바람에 죄없는 나는 그 친구와 함께 방과 후에 벌 청소를 받게 되었다. 나는 청소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명예가 손상되는 것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자초지종을 말할 용기도 없어, 나도 모르게 울기만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청소하고 끝날 정도였지 싶은데 그 땐 왜 그리 심각하고 억울했는지 모르겠다. 친구도 나의 잘못이 없음을 알기에 “미안하다!”고 반복했지만, 내 눈물은 멈춰지지 않았다.
울음으로 나의 무죄를 항의하는 내 마음이 전해졌는지, 선생님은 내 옆에 다가와 속삭이듯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병수야! 울지마. 네 잘못이 없다는 건 알고 있어. 그냥 저 친구에게만 벌을 내리면 상처가 얼마나 크겠니? 그래서 알면서도 너에게도 벌을 함께 준거야. 그리고 말이야, 남자는 일 평생에 걸쳐 3번만 우는 거야. 태어날 때,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그리고 나라를 잃었을 때야. 그 외에는 울지 않는 것이야. 알았지? ”
그제서야 비로소 내 눈물은 멈췄다. 나의 억울함을 이해해 주시면서도 그 친구에게는 덜 미안하도록 우회적인 방법으로 교육적인 배려를 해주셨던 것이다.
선생님! 그 때 말씀하신 남자삼곡(男子三哭) 중 두 번째 까지는 세월과 함께 자연적인 발로지만, 마지막 세 번째의 경우는 없어야 할 텐데요. 그런데 전화위복인지 담임선생님의 지혜로 그 친구로부터 공식적으로 사과도 받고 화해도 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 친구의 주선으로 1학년이 끝나가는 어느 겨울 밤 선생님의 하숙방에 들러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당시 1학년 우리들의 국어를 담당하셨던 미인 처녀 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의 하숙방에 함께 계신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후 난 중학교를 마치자말자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이후로 두 분의 소식을 잊고 있었는데 나중에 두 분이 결혼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움과 함께 무척 기뻤었다. 사실 나는 최태환 선생님도 좋아 했지만 사모님이신 조선희 선생님을 그에 못지 않게 흠모했었기 때문이다.
내가 제주도 신혼여행을 갔다가 고향 합천으로 가는 길에 아내와 같이 망미동 선생님 댁에 들러 인사를 드렸다. 이후 부산에 갈 적마다 인사드리곤 했는데, 그 때마다 두 분은 나의 부부 은사님이자 큰 형님과 큰 누님같이 친근하게 대해 주셨다. 지금도 두 분께서 평생의 반려자로 서로 존중하며 해로하시는 것을 볼 때 소설 ‘큰바위 얼굴’처럼 뿌듯하다. 2003년 4윌 삼가중학교 졸업 33주년 재상봉(Home-coming day) 전야제 때 사모님과 함께 제자들 앞에서 멋지게 노래를 부르시기에 아직도 정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다음 해인 2004년 최태환선생님은 교장선생님으로 정년퇴직을 하셨다. 너무나 아쉽게 느껴졌었다. 선생님은 진정한 교사상을 보여주신 고마운 은사(恩師)이시다.
세월이 흘러 2020년이 되었다. 어쩌다 찾아뵙기는 했지만, 주로 전화로 안부를 여쭤보는 경우가 더 많았다. 대화 중에 최태환 교장님께서 팔순이라는 것을 알았다. 부랴부랴 나는 제자로서 팔순 기념 당일 여행을 제의했다. 다행히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가까운 수원은 수원화성(水原華城)을 포함하여 유네스코 등록문화재 등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아직 방문해 보지 않은 곳이라고 하여 장소는 쉽게 합의했다. 11시에 수원역에 도착하려면 부산에서는 새벽부터 준비해야 했을텐데 그것을 마다하지 않고 오셨다. 저녁에 부산으로 떠날 때까지 아마추어 1일 가이드를 따라 수원화성과 행궁, 천년사찰 용주사와 융건릉, 나혜석 생가 터 등을 탐방했다.
다행히 12월인데도 날씨가 포근하여 다니기에 불편함은 없었으나, 팔순인 교장선생님의 연세도 연세지만 얼마 전에 사고로 다리를 다쳐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모습이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당당했던 27살의 청년 교사와 오버랩되어 안스러웠다. 수원역을 떠나 부산으로 가기 위해 잠시 대기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빨개진다.
“정교수, 오늘 수고했소. 우리는 좀 기다리다가 기차를 탈테니, 먼저 가 봐요.”
그냥 기다리겠다고 하는 나를 한사코 가라고 하니 돌아서는데, 조선희 선생이자 사모님께서 교장선생님의 팔을 잡는 모습이 흐릿하게 다가왔다. 아름다운 모습을 뒤로하고 나는 조용히 작별의 고개를 숙였다. 최태환 교장선생님, 조선희 사모님과 건강하게 백년해로 하소서! (2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