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헷갈리는 ‘원-달러 환율’, 조직신학, 차입자 – 정병수 재경합천문인회 회원

우리나라의 화폐 단위는 원화(₩)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은 달러($), 유럽은 유로(€), 일본은 엔(¥), 중국은 위안(元)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국가마다 화폐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환전(換錢)에 있어서 차이가 생기게 되는데, 이 비율을 우리는 환율(換率, exchabge rate)이라고 부른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세계 12위 규모의 무역국으로서 환율이 갖는 중요성은 매우 크다.
예를 들어 환율이 1달러당 1,000원이고 국내 제조원가가 변하지 않는 상태에서, 환율이 1달러당 1,100원으로 변한다면 수출업자는 환율이 변하기 전과 비교하여 1달러당 100원의 이익을 더 얻게 되므로 유리한 상황이 된다. 반대로 수입업자의 경우에는 이전과 같은 물건을 1달러당 100원을 더 주어야 동일한 물건을 수입할 수밖에 없으므로 자신의 이익을 줄이거나 국내 판매가격을 높여야 하므로 경쟁에 불리해진다. 이렇게 1달러당 환율이 1,000원에서 1,100원으로 변화되었을 때 환율이 올랐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내렸다고 해야 할까. 달러를 기준으로 해서 원화를 설명하면 1달러당 1,000원이던 교환 비율이 1,100원으로 바뀌었으니 환율이 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원화의 가치는 변화 전에 비하여 하락하였다. 소위 평가절하(平價切下) 된 것이다.
이런 경우 방송 등 언론 매체에서는 일반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올랐다(또는 상승했다)고 한다. 우리 돈의 가치가 하락되었는데도, 환율은 올랐다고 하니 환율 전문가가 아닌 보통 사람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일반인들은 우리 돈의 가치가 올라간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이런 혼란스런 현상이 나타날까. 이는 우리가 막연히 말하는 ‘원달러 환율’이 구체적으로 원-달러 환율인지, 원/달러 환율인지 또는 원(1)·달러 환율인지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고 각자의 입장에서 편의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며, 아리송한 용어 자체에도 원인이 있다. 비교 대상인 원화와 달러화 둘 중 어느 것을 기준으로 하여 올랐다(또는 내렸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달러를 기준으로 해서 원화의 교환 금액이 올랐다면 ‘원-달러 환율이 올랐다’는 식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소수의 사람 외에는 헷갈리는 것이 오히려 정상이다.
이러한 혼선이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상식적인 용어이면서 자연스러운 용어로 보정(補正) 할 필요가 있다. 즉, 현재 사용하고 있는 ‘환율’이나, ‘원-달러 환율’ 대신에 ‘달러 당(当) 원화 환율’이라고 하면 어떨까? 또는 ‘달러 당 환율’ 그리고 엔화의 경우 ‘엔화(¥) 당 원화 환율’처럼 용어를 변경하면 어떨까? 이는 우리 식의 표현이기도 하고, 말 그대로 1달러당 원화의 가치를 나타내주는 것으로 어느 나라 화폐의 가치가 변동되었는지 어렵지 않게 명확히 이해할수 있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 외에도 헷갈리는 용어가 많다. 예를 들면 기독교 목회자 중에는 학위 소지자가 많은 편인데 전공을 물어보면 ‘조직 신학’이라고 하는 분이 많다. 교회라고 조직학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전공하는 분이 생각보다 많아, 그 내용이 무엇인지 묻다가 실소(失笑)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직 신학’이란 것이 인간관계를 조직(organizing)한다 할 때의 조직이 아니라, ‘이론적이고 체계적(systemic)인 신학’이라는 뜻, 즉 ‘이론 신학’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조직 신학’을 ‘이론 신학’이라고 변경하면 더 이상은 혼란스럽지 않고 상호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겠는가?
또 다른 경우를 보자. 지인(知人)이 억울하게 수원 구치소에 수감된 적이 있었다. 사실 관계가 명확하여 피의자는 자신만만하여 여유있게 대처한다는 것이 그만 법정에서 패소하여 영어(囹圄)의 신세가 된 것이다. 하도 딱하여 구치소를 물어물어 가 면회를 한 뒤 약간의 돈과 책을 넣어 달라고 관계자에게 부탁했다. 그 직원은 비치된 인쇄 용지에 내용을 기입하여 접수시키라는 것이다. 그런데 용지에는 아무리 살펴봐도 접수자의 이름란이 없기에 물었더니 첫 칸에 적으면 된다는 것이다.
“선생님, 첫 칸은 ‘차입자’라고 되어 있는데, 접수하는 내가 왜 차입자가 되어야 하지요?”
그 때서야 직원도 용지를 보더니 당황하기 시작한다.
“정말 그렇게 되어 있네요!”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때의 차입자는 흔히 사용되는 차입자(借入者)가 아니고, 민법에 나온다는 차입자(差入者)로 한자가 다르다는 것이다. 세종대왕도 웃을 일이다. ‘맡긴 이’ 또는 ‘보낸 이’ 정도로 하면 될 것을 지금까지 사용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담당 직원에게 이 단어는 다른 구치소 등 여러 관련 기관에서도 사용하고 있을 것이므로 내부적으로 정리하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귀에 들려오는 답변은 가히 ‘코미디’ 수준이었다.
“민원을 제기하세요”
나는 황당하여 그만 고개를 숙이고 솟아나는 분노를 삭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낸 세금이 저런 사람의 인건비로 지출되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