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증영(李增榮) 유애비(遺愛碑)와 “사람사는 세상”
이현출
전 국회입법조사처 심의관
5월 1일부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를 일반인에게 개방하였다. 서거 7주기 행사의 일환이다. TV에 비친 생가의 모습은 소박하고, 평소 그 분의 소탈한 모습을 느끼게 하였다. 필자에게는 TV화면 속 접견실 옆 벽에 걸린 신영복선생이 쓴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액자가 눈에 들어 왔다. 그가 꿈꾼 사람사는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를 생각하며, 문득 우리 합천의 묻혀온 역사속의 ‘사람사는 세상’을 위해 헌신해온 인물을 회고해 본다.
합천 대야성 기슭 연호사 일주문을 지나면 일군의 비석이 있다. 그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이 이증영(李增榮) 합천군수 유애비이다. 비석의 표제는 「이영공유애비(李令公遺愛碑)」로 되어 있다. 비는 합천군수를 지낸 적이 있는 이증영(?~1563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비문은 1554년에서 1559년 사이에 합천군수를 지냈던 이증영이 1554년의 극심한 흉년에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해 구휼하고, 청렴하게 관직생활을 했다는 내용이다. 비석은 조선 명종 14년(1559년)에 세워졌으며, 비문은 남명 조식(1501~1572년) 선생이 지었고, 글씨는 당대 최고의 서예가였던 고산 황기로 (1521~1567년)가 썼다고 한다.
남명선생이 지은 비문을 보면 이증영 군수를 부모에, 합천군민을 갓난 아이에 비유하며 그 사랑이 지극한 부모의 정성 이상이었다고 술회한다. 부모가 갓난 애를 먹일 때에는 사랑이 때에 따라 틈이 날 수도 있으나 “유독 우리 공(公)이 백성의 부모가 되었을 때에는 사랑이 어찌 잠시라도 틈이 난 적이 있던가?”라고 적고 있다. 그런 이증영이 부임해 왔을 때에는 자신만만하여 우리 백성 보기를 아픈 상처보듯 하더니, 그가 떠나갈 때에는 황급히 비석에 그의 공적을 기재하지도 않고 떠나갔다고 술회하고 있다.
남명은 이증영의 공적을 하나하나 기록하고 있다. “우리에게 밭이 있으면 공이 농사짓게 해주고, 우리에게 뽕이나 삼이 있으면 공이 옷을 만들어 입게 해 주었다”며 백성들의 의식문제 해결에 공을 들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나라에서 무거운 요구가 있으면 관아에서 스스로 대응”하여 조세부담을 줄여주려고 하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백성들에게 굶주리는 기색이 있으면 자기 음식을 밀어 살을 찌워 주었다”며 이증영의 애민사상을 드러내고 있다. “향약을 일으킨 것은 윤리를 돈독하게 하려는 것이었고, 주포(周布)를 불린 것은 백성들의 노역을 덜어 주려는 것”이었다며 공동체 정신을 진작시키려 노력하였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증영이 백성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했는지는 다음의 구절을 보면 알 수 있다. “의지할 데 없는 백성들이 외로운 송아지가 젖을 들이받는 것처럼 덤벼도 노하지 않고 타일렀으며, 권문세가에서 뇌물을 요구할 때는 매번 빈 봉투를 보냈다”며 그가 어떻게 백성을 대했는지 잘 나타내주고 있다.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지도자의 노력은 이증영 군수의 사례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이증영보다 200여년 뒤에 살았던 다산 정약용은 그의 명저 『목민심서』에서 공직자의 자세로 율기(律己), 봉공(奉公), 애민(愛民)을 들고, 어떻게 공직자로서의 몸을 바르게 할 것인지, 법을 바로 지키며 백성을 이롭게 할 것인지, 힘든 백성을 어떻게 배려할 것인지에 대한 세부 실천항목을 소상히 설명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애민이야 말로 오늘날 공직자가 주목해야 할 사회보장과 연관되어 있다. 불특정 다수의 백성들을 사랑한다는 허울뿐인 애민정신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살아가기 힘든 사회적 약자들을 한없이 아끼고 배려해 주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점에서 정약용은 이증영의 애민사상에 감동하고 그를 조선의 모델로 삼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사는 세상’으로 요약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가적 이상은, 빈부와 귀천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사람다운 대접을 받고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자본주의 경쟁 시스템에선 반드시 낙오자와 소외자가 발생하기 마련인데 이렇게 어렵고, 소외받고, 뒤처진 사람들을 함께 끌어안고 가야 한다는 뜻에서 이증영의 사상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된다. 고령사회인 우리 사회에 소외받는 노인들은 없는지, 학대받는 아동은 없는지, 송파 세 모녀 자살사건과 같이 우리 사회안전망의 흠결은 없는지, 사회적 약자로 고통받는 장애인은 없는지 가정의 달 5월에 더욱 꼼꼼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 정치도 성장의 그늘에 가려진 어둡고, 힘들고, 아파하는 사람을 다독이는 ‘따뜻한 정치’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