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놓고 툭터놓고| 민주주의를 위해, 인내와 숙의(熟議)가 필요하다 – 박황규 발행인
지난 24일,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인데, 오전부터 ‘센’ 날이었다.
오전10시 쌍백면 도농교류센터에서 예정된 <발전소 환경전문가 초청토론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2018년부터 진행되어온 “청정에너지 융복합발전단지”조성 사업을 두고 반대하는 주민들의 항의가 최근 거세지고 있는 형국이었다.(이 사업은 삼가면과 쌍백면 일대 100만평 규모로 합천군과 한국남부발전 공동으로 추진하여, 총 1조5천억원의 대형 사업으로 “LNG복합발전(500MW)” “수소연료전지(80MW)”, “태양광(200MW)” 총800MW 발전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으로, 합천군에서는 소멸 위기에서 벗어나고, 밝은 미래로 한걸음 도약하기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라 말한다.)
반대측에서는 이번 토론회에 대해 ‘강력 저지하겠다’는 성명서도 발표한 상태였기에 이날 ‘충돌’과 ‘파행’은 어느 정도 예상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 삶은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행정은 행정대로, 반대측은 반대를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상대로 처음부터 시위대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시위가의 고성, 마을어르신들 머리에 두른 빨간 머리띠와 항의피켓, 반대측 인사들이 나와 마이크를 들고 토론회를 전횡하는 등 토론회는 전혀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남부발전에서 준비한 영상을 시위대에서 나와 피켓으로 가려버린다든지, 전문가들이 발표하려고 할 때 우르르 나가버린다든지 하는, 대화의 기본 자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후 2시에는 장진영 군의원이 마련한 <합천군시설관리공단 설립>과 관련한 토론회가 있었다. 장 의원은 최근 ‘숙의(熟議)민주주의’에 한마디로 꽂혀 있다. 대구시 신청사 부지결정과 관련해, 시에서 숙의민주주의 제도를 통해 원만하게 해결된 사례에 크게 감명을 받은 듯, 최근 수차례 이런 주민 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하지만 시설관리공단과 관련해 군의회에서 여러번 타지역 탐방, 전문가 토론회 및 충분한 심의가 이미 있었다는 견해에서 볼 때, 때늦은 감이 있고 불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 의원이 바라볼 때, 지역의 주인인 군민들이 충분한 숙의가 없다고 판단했고, 이렇게 개인적으로 마련한 토론회 자리였다고 보여진다. 이날 배몽희 의장 등 군의원과 지역주민들은 개최일 통보를 받은 지 며칠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불구하고 시간을 내어 대부분이 참석을 했고, 심도있게 논의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전에는 과격한 토론회였고, 오후에는 나름 진지한 토론회였다. 이날 오전 오후 있었던 두 토론회를 지켜보고 나서, 여러 가지 영감이 떠올랐다. 이 두 토론회를 비교해서 어느 것이 낫다, 그르다를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오전 토론회에서 보인 주민들의 격한 반응 역시 의견 제시의 한 형태라고 보아야 한다. 다소 과격하고, 토론회가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을 만큼 여유를 허용하지 않았지만, 주민들 역시 행정(합천군) 앞에 어떤 형식으로든 의사를 표시했다고 본다.
오후에 열린 토론회도 사전에 여러가지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했기에, 토론에 대한 사전지식이 부족하거나 관심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아무래도 장 의원의 홀로 준비였기에 충분치 못한 점이 있었을 것이다.
합천군이 인구감퇴, 지역소멸 이야기가 나온 지 오래됐다. 일각에선 이를 타파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이야기하고, 비상한 각오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쳐야 한다고 한다. 또 일각에선 사실 무관심이다. 살기 바빠 그럴 것이다. ‘악플(악성댓글)보다 무풀(댓글없음)이 더 무섭다’는 말이 있다. 무관심과 무반응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무질서하고, 토론회 진행을 일방적으로 끊거나 전횡하는 토론회였기는 하지만, 그런 열성이 있다는 것을 ‘기쁘게’ 포착해야 한다고 본다.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 지역을 살리기 위한 이정도의 열성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래야 좌충우돌 바른 길을 찾아 가볼 수 있다. 지역 지도자들도 이런 반응들을 너무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가진 진심과 열성으로 받아들인다면, 앞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좋은 실마리로 작용할 수 있다. 쌍백에서 열린 2번째 열린 토론회가 시작부터 무산되고, 길을 나서는 문준희 군수 차를 주민들이 막아서고 한참을 보내지 않고 대치를 하고 있을 때, 문 군수가 내려 주민들에게 직접 다가서자 어른신들이 다소 감정을 누그러트린 채 말을 나눴듯이, 주민들의 마음만 보고 가야 한다.
반대측에서 이성을 잃고 감정에 치우치기는 했지만, 지금쯤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라 여긴다. 무작정 반대만 한다고 해서, 여러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는 없다. 차분해야 하고, 대화와 설득을 함께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이번 일을 통해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숙의민주주의를 위한 뒤늦은 <시설관리공단>에 대한 토론회 역시, 뒤늦은 감이 있지만 늦게라도 열린 것이 어딘가. 현실은 항상 늦다. 제 때에 적시에 무슨 일을 한다는 것은 웬만한 준비성과 계획성을 갖지 않고서는 힘들다. 항상 뒤늦게 부랴부랴 달려오는 돌쇠같은 합천. 들숙날쑥, 좌충우돌하는 모습으로 민주주의를 향해 아장아장 발을 내딛는 합천. 합천은 이제 시작이다. 유럽 어느 곳의 발전된 민주주의가 있더라도, 시작부터 그리 세련된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투박함, 모자람 여기서 민주주의 싹을 엿본다.
/박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