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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역사다 (11)| – 휴지 이야기 – 권길홍 수필가

오늘은 하찮고 시시하다고 생각하기 쉬운 휴지이야기를 하려 하지만 그 별 거 아닌 휴지라도 모자라거나 부족하면 얼마나 불편하게 되는지 깊이 생각할 부분도 있을 것 같아 짧은 글이지만 독자 여러분께서는 긴 생각으로 연결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정말 그 보드랍고 우리 피부에 닿을 때 감촉이 좋은 휴지 몇 장! 요즘 햄버그 가게에서 햄버그나 감자 칩, 치즈 스틱과 같은 먹을 걸 사면 냅킨까지 수북하게 담아줄 정도로 휴지는 흔해지고, 커피점에 가서 커피를 몇 잔 시켰는데도 휴지를 한 옹큼씩 주지만, 불과 삼,사십 년 전에는 화장실 볼일을 마친 후에는 신문지로 또 철 지난 잡지나 책의 종이 한두 장으로 뒷처리를 하거나 뒤를 닦았다면 믿을 수 있을까?
그 신문지도 없을 땐 나뭇잎이나 호박잎을 따서 처리하기도 하고!
러시아는 70년대 말까지 생필품이나 식량에서 부족함이 없었던 나라였다. 80년대 초 유엔의 조사에서도 TV를 보는 시간이 세계에서 제일 긴 나라라고 알려질 정도로 여유가 있었고 잘살았던 나라였다.
그런데 이렇게 잘 살던 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렵고 IMF와 같은 환난으로 어려워지면서 휴지까지도 유통이 잘 안 되었다. 사회주의 특성상 생산과 배급에서 조그만 차이를 보이니 국민 개개인에게 적절하게 보급이 되지 않았다. 생산에서 조금 부족했던 휴지가 유통이 안 되면서 식당이나 가게에서 식탁에 내놓지 않거나 팔지도 못할 정도로 모자랐다. 식당에서도 냅킨을 내 놓으면 손님들이 다 가져가버리니 내놓지도 않고, 화장실에 비치된 휴지까지 손님들이 가져가 버리니 화장실에도 휴지를 비치하지도 못하여 손님들마저도 고통을 겪는, 한 마디로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러시아라는 나라의 국민 모두가 하찮은 휴지 때문에 나라에 대해 불평하고 서로를 불신하며 고통을 받았던 사실을 내 눈으로 보았다.
이런 일이 오래 전의 과거가 아닌 바로 얼마 전, 90년대 중반에 사회주의의 종주국이라고 하는 러시아에서 일어났다.
이젠 우리나라의 얘기로 돌아갑니다! 혹시 중고등학교에 있는 화장실에 가보셨는지요?
몇 년 전 어느 고등학교의 상담교사로 근무하면서 지켜본 화장실은 거짓말이 아니라 하루에 몇 번이나 휴지통을 비워야 할 만큼 수북수북 쌓이는 휴지를 보았다. 학교의 예산으로 무한정 주는 거니까 화장실 휴지는 함부로 써도 된다고 학생들은 쉽게 생각을 하는지 모르지만, 공부를 잘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저 심성 고운 착한 학생들이 자기 집에서도 저리 마구 사용할까 조금은 걱정을 한 적이 있었다.
우리 학생들에게 우리가 뭘 먼저 가르쳐야 되는지 고민할 만큼 막 버리듯 사용하는 휴지를 보면서 학생들에게 영어나 수학보다 나 아닌 타인을 위해 휴지 한 장이라도 절약해야 한다는 걸 가르치고, 우리 모두가 사용하는 화장실을 깨끗하게 사용하는 마음을 먹도록 공중도덕을 가르쳐야 되지 않을까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다.
관공서에서 화장실에 있는 휴지통을 치우라 하니 그 서슬 시퍼런 명령에 치우긴 치웠는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화장실 안에는 휴지통을 두지 않으려 한다. 그렇다고 화장실이 깨끗하게 되던가? 우리 정부의 화장실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 휴지통을 치우라는 그 좋은 구호는 공공의 화장실을 깨끗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도덕적 정신이나 윤리적 자세를 먼저 가르쳐 놓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휴지를 대하고 화장실은 어떻게 사용하는가?
그 별것 아닌 휴지를 마구 버리듯 습관처럼 사용하는 사람들은 중고등학생만 있는 게 아닌지 제주도의 외국인이 설립한 목장에 보았던 작은 얘기를 들려드리려 한다.
목장의 휴게실에 있던 화장실은 깨끗하게 청소가 되었고 잘 관리가 되었지만 화장실의 휴지통에 지저분하게 버려진 휴지가 가득 들어있었다. 이렇게 마구 버려지니 휴지통을 치우지도 못하고! 이 사실은 우리의 머리로만 생각하는 행정과 우리 국민과의 수준이 다르다는 말이 아닐까? 중고등학생만이 휴지를 마구 사용하는 건 아니라는 말이고! 관광객들은 아직도 남의 화장실에서는 휴지를 버릇처럼 마구 쓴다는 말이다!
정말 하찮은 휴지를 얘기하면서 도덕이니 윤리를 들먹여서 좀은 미안하지만 반드시 도덕이라는 문제가 꼭 거창한 일에서만 필요한 건 아니다. 휴지를 절약하고 화장실을 깨끗하게 바로 사용하는 이런 작은 일에서도 제대로 지켜지고, 모든 국민들이 철저히 지킨다는 자세가 될 때에야 우리 사회가 바로 굴러가는 건 아닐까?
지금 우리가 누리는 물질의 풍족함은, 우리나라에 질서가 잡히고 도덕적으로 성숙한 사회가 되어야 하찮은 휴지까지도 제대로 유통이 되어 모든 사람들이 편하게 생활할 수가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가 사회적으로 혼란스럽거나 어려워지면 나 혼자 경제적으로 부자고 호주머니가 두둑하다고 그 여유를 누릴 수 없다는 걸, 러시아에서 똑똑히 본 나로서는 안정된 나라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또 우리 서로 다 함께 지키는 사회의 질서가 얼마나 귀한 건지 새삼 중요하게 느껴진다.
물자가 풍부하다고 편해지는 게 아니라 국민 모두가 함께 잘 사용할 수 있도록 자신이 좀 적게 사용하더라도 다음 사람을 위하는 마음들이 자리 잡을 때에야 다 넉넉하게 편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공중화장실에 있는 휴지 하나의 유통이나 사용에서 함부로 마구 사용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별거 아닌 휴지 하나라도 절약하고 함께 공평하게 사용되어, 다른 사람까지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정신적인 가치가 우리 사회 전체에 골고루 스며들어 있어야, 바른 사회가 되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