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역사다(13)| 우리집에 자전거가 있었다 – 권길홍 수필가
차 한대를 소유한다는 일은 꿈에서라도 불가능한 시절을 우린 겪었다.
근래에는 일도 아닐 만큼 간단하게 차를 사거나, 뭐! 직장을 가지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차를 사는 일이라 할 정도로 아무나 소유할 수 있지만 60년대 초에는 차도 없었고 자전거도 없을 때였다. 거꾸로 요즘은 세 살 먹은 어린애가 내 자전거라고 말을 할 정도로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자전거지만 1950년대에 거의 우리집에 있는 자전거가 유일했다. 비록 부산 서면의 변두리인 우리 동네에서지만!
그러나 연탄공장을 하는 앞집에 트럭이 한 대 있었지만 차도 컸고 온통 연탄가루로 덮여서 다니던 차라 그 당시에 동네사람들도 잘 타려고 하지 않았다. 이런 시절에 우리집에 자전거가 있었다.
내 초등학교 시절에는 부산의 변두리에서 우리집이 철물점과 지물포를 비록 소규모지만 차려놓고 장사를 했다. 마을 사람들 상대로 못, 문고리와 경첩, 자물쇠와 톱과 망치 등의 철물과 천장지니 창호지라 하여 닥종이와 벽지 도배지를 팔았을 정도로 제법 살았던 집이다. 그런 걸 팔았다고 잘 살았다니! 요즘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이런 철물이나 지물을 조방앞 자유시장의 도매시장에 가서 떼 오는데 짐자전거가 필요했다. 시장에서 물건을 해 온다고 아버지께서 가실 때도 있었지만 중학생인 형이 물건을 사러 갈 때도 있었다. 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가게 일을 도우다 보니 형은 자전거를 잘 탔다. 우리 형은 이 동네에서 친구들이 한번 태워달라고 졸졸 따라다니며 사정할 정도로 스타대접을 받았다. 형이 기분 좋거나 마음 드는 친구에게는 자전거도 가르쳐주었고!
지금 생각하면 무슨 자전거 한 대 있다고 그리 대단할까 생각하겠지만 가게를 했고 우리 부모님 두 분도 열심히 사셨고, 낭비라는 걸 모를 정도로 근검하게 지냈으니 큰 부자는 아니지만 자전거라도 소유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아침저녁으로 밥 때가 되어 동냥하러 온 거지들이 몇 명씩이나 때로 몰려와도 밥을 수북하게 담아줄 수 있을 정도인 건 사실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10여년이 지난 60년대 말 쯤에 자가용이라는 승용차는 우리 교회에도 한 대밖에 없었다. 우리 교회가 부산에서도 교인들이 6,7백 명 되는 제법 큰 교회로 가까운 국제시장에서 도소매 장사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차를 가진 교인은 딱 한 분밖에 없었다. 이때가 68년인가, 69년도에 차를 소유한 이 교인도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이민을 갔다. 그래서 청년들끼리 말하길 이젠 교회 오면 차 한 대도 구경할 수 없다고!
이렇게 자전거 한 대에도 감지덕지 하며 살았던 우리가 왜 국산이 아닌 외제 자동차를 선호하나? 내 것에 대한 긍지는 빠지고 외제물품에 대한 동경만 남은 우리는 마치 이 나라가 땡전 한 푼 없고 모든 걸 미국에 의지하고 미제니 일제에 기대어 살았던 6,70년대의 구차한 정신적 고갈상태가 아직도 남아있는가? 지금은 적어도 십 몇 위의 세계 경제력을 가진 나라인데 그때와는 달라져야 되는 건 아닐까?
사업상으로 또 회사방침에 의해 외제차를 타는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고 외제차라면 무조건 좋아 보이고 멋있게 생각하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그저 과시하고 싶고 남들에게 드러내고 싶은 마음은 있는 줄 알지만 우리나라에서 만든 국산 자동차는 세계의 전설이다. 젊은이들이 즐겨 말하는 레전드다. 꿈이다.
외제차를 탄다는 건 달리 생각하면 국부의 유출이 될 수도 있다. 과거에 연필 하나라도 국산품 애용하자고, 그래서 우리나라의 사업을 발전시키자고 한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그 값비싼 외제물품을 사다니! 이 정도라도 살아남기 위해 고생한 앞서가신 분들에게 미안하지 않을까?
우리나라가 자동차를 만들려고 했을 때의 세계는 우리를 얼마나 비웃었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렸는지 아는가. 그 자동차를 만들려고 할 때 기술과 돈과 판매나 영업전략, 그 모든 부문에서 되는 것 하나 없는 상태에서 외국의 자동차회사와 어떻게 하든지 연합하여 제조하려고 발버둥칠 때의 정주영 회장님 같은 분은 세상에도 없는 철인이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여러분들도 잘 알 거라 믿는다. 정말 군대말로 맨 땅에 헤띵! 또 정말이라는 말을 쓴다. 정말 맨땅이 아니라 콘크리트 바닥에 온 몸으로 부딪쳐가며 자동차를 만들려고 했고 하나의 새로운 사업인 자동차 산업을 일으키려고 했다. 외국의 유명 기업에선 우리 자동차 산업을 자신들 편리한대로 이끌어가려고 조금도 도와주지 않고 있을 때 최고경영자이신 정주영 회장님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 철벽같은 자세! 우리들 모두, 그리고 젊은이들이 배워야한다.
우리가 그리도 욕하기 좋아하는 일본만 하더라도 그 나라의 길에는 외제차가 별로 안 보이고 그들은 우리보다 외제차를 소수의 사람만 이용한다고 한다. 우리는 국가적 밸도 쓸개도 없는 국민인가. 그래도 이웃나라 일본보다는 우리가 더 국민적 정체감이나 자존감이 더 강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일본을 낮추어 보기를 그리 쉽게 하면서 우리가 그들보다 모자라는가? 우리가 처음 새나라라는 자동차를 만들 때는 보잘 것 없고 형편없는 물건이지만 지금은 세계가 알아주는 브랜드의 자동차인데 정작 본국인 우리나라 국민들이 모른 체 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정말 잘 생각해야 된다.
또 우린 왜 그리도 잘난 체를 하고 싶어 하나? 인간인지라 뻐기고 싶어 하는 심정은 공감하지만 차와 같은 외형적인 것으로만 뽐내고 싶다는 건 자신의 수준을 오히려 드러내는 건 아닐까? 진정한 멋은 겉이 아닌 정신적인 자세에 있다는 걸 잊은 사회라 그저 속은 텅텅 비었으면서도 겉만 치장하고 싶어 하는 수준! 그래서 더 외제차를 선호하는지 모르지만,
진정한 자신의 가치는 마음속의 자부심이나 긍지를 가졌을 때 오히려 우리 인간들을 드러나게 하고 빛나게 해주는 게 아닐까? 자신의 줏대는 빠진 체 남의 눈만을 의식하면서 자랑하고 싶고 으스대고 싶은 속물근성들이 바로 우리라면 잘못 판단한 건가?
차를 타고 가다 보면 다른 차에서 쓰레기를 휙 던져버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내가 사는 곳인 황매산 올라가는 길처럼 많은 사람이 다니는 데도 불구하고 커피캔이나 음료수 병이 버려져 있는 걸 보는데 이런 사람은 좋은 차를 탈 자격도 없는 사람이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함부로 휴지나 쓰레기를 버리는 어리석은 인간들이 우리의 어긋난 자화상이라면, 또 읍의 뒷길이나 내가 산책을 계속 자주 다니는 대기저수지에, 그 깨끗한 저수지에 페트병이나 과자봉지들, 비닐봉지하며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다면 어찌 생각하시는지! 아무도 쓰레기 버리는 자신에게 잔소리 안할 거라고 쉽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자체도 인간 이하의 수준이다. 저렇게 함부로 살아가는 인간에게 말도 걸기 싫을 건데 왜 귀찮게 시비를 걸어? 머리가 빈 인간들 때문에 그 아름다운 자연이 보기 싫어지고 골목길이 너덜너덜해져서 보기 싫어진다면 우리는 어찌 해야 할까?
머리는 텅 빈, 정신적으로 고갈된 상태라 드러나는 겉모습 만으로라도 치장하고 싶고 자랑하려는 걸까?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며 폼을 잡고 싶은 마음도 이해는 하지만 좋은 차 탄다고 잘나 보이는 만큼 남이 안보는 곳에서도 휴지 한 장이라도 안 버리고 공중도덕을 지키는 우리가 되면 어떨까? 또 좋은 차와 같이 외형도 가꾸어야 하지만 안 보이는 정신이나 마음의 아름다움도 잘 가꾼다면 더 좋아지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