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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운잡기| 이순신 백의종군로와 권율도원수부 재현사업 – 권해조 논설위원

충무공(忠武公)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와 충장공(忠莊公) 권율도원수부 재현사업은 학계나 군민들의 큰 관심일 뿐만 아니라 고향 합천군의 중요과제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사업은 오랫동안 관련지역주민의 견해차로 아직까지 빛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며칠 전 합천율곡에 거주하는 한분이 <이순신 백의종군로 (이어해 가)>란 도로 안내 표지판이 찍힌 사진과 함께 최근 소식을 전해왔다.
필자는 2007년 이순신 장군 백의종군로와 충무공이 40여 일간 유숙(留宿)했던 이어해(李魚海) 집과 권율도원수 진영의 사령부 위치로 추정되는 영전, 낙민, 둔전마을 일대를 (고)박환태 합천신문사장, 매실부락 (고)이종규 선생 등 합천군 향토사학회 회원들과 함께 현지를 처음 답사한 적이 있다.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방문하였으며, 코로나19사태 이전 2019년에도 매실마을 이어해 집과 초계 권율도원수 공원 재현장소도 방문하였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그리고 필자는 안동권씨 종보(宗報)인 <능동춘추(陵洞春秋)> 제99호(2007년3.1일자)에 <충장공 권율도원수의 엣 합천병영지>란 제목으로 420여 년 전에 5년간 주둔했던 황강변 진터를 향토사학자들과 생생한 현지답사기를 3면 특집으로 보도했다. (고)박환태 사장도 합천신문에 <권율도원수의 초계진지는 어디일까?(2007.2.1.)>부터, <이순신의 백의종군과 율곡의 둔전동(2.8)>, <난중일기 모여곡은 매실이다(3.5)>, <율곡 백마산성은 상기(上己)산성이다(2007.5.10.)> 등 10여 차례 시리즈로 발표하였다. 그리고 최근 어느 학술지에는 도원수진영 사령부가 벽전리(율곡면 영전리 385번지) 군막이라고 기술하였다. 특히 지난달 발간한 재경합천문인회원 정병수박사의 세 번째 수필집 <촌놈으로 살다보니(2021.5.27)>에서는 민족의 영웅 이순신 장군이 눈물로 걸어간 삼가- 쌍백- 합천이 이르는 37km길을 그분의 넋을 기리고 후손들이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백의종군길’이라 부르자며 자랑스럽게 말 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보면 1597년 정유년 음력 4월1일 옥문을 나와 백의종군으로 4월 3일 한양을 출발하여 수원을 거처, 5일 아산 고향에 도착하여 선영을 찾고, 친척들을 만났다. 이어 19일 아산을 출발하여 공주를 거쳐 23일 임실, 25일 운봉을 거처 26일 구례, 27일 순천에 도착하였다. 순천에서 한 달 정도 머물다가 5월 27일 순천을 출발하여 28일 하동에 도착하였다. 6월1일 단성을 거쳐 6월2일 삼가현에 도착하여 2박하고 6월4일 삼가를 출발하여 문보(文步)집에서 1박하고 모여곡(毛汝谷) 이어해(李魚海)집에서 정착하게 된다. 6월 8일 도원수를 만나고 7월18일 수군의 대패소식에 도원수의 요청으로 해안으로 가서 실상을 살핀 후 방책을 세우기 위해 모여곡을 떠났다. 따라서 합천군(당시 초계현과 삼가현 포함)은 이 충무공이 지금부터 424년 전 가장 무더운 삼복더위 때인 음력 6월 2일 삼가현청 도착부터 7월18일 다시 삼가를 떠날 때까지 47일간 머물었던 유서 깊은 곳이다.
그러나 충무공의 처소나 충장공의 진영의 위치를 두고 아직도 지역주민들이 줄다리기 속에 합천군도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1997년 12월부터 시작한 충무공이 기거했던 율곡 매실마을의 이어해(李魚海) 고택의 복원사업은 현재까지 진전이 없고, 권율도원수부 재현사업도 2014년에 초계면 8-8번지 일원 31,895㎡ 면적에 역사문화시설과 커뮤니티 광장 등 편의시설, 주민운동을 위한 주민참여시설, 녹지시설 등이 조성되었으나 지금은 유명무실(有名無實)이 되어 이름까지 초계대공원으로 바꿨다.
충무공의 유숙지(留宿地)는 <난중일기>에서 유추하고 있지만, 당시는 오늘날같이 합천댐도, 황강제방도 없어 여름 장마철에 강물이 범람하여 모여곡이 어디인지는 정확하게 어딘지 알 수 없으나 (고)박환태 사장은 매실을 매야실(梅也室), 매곡을 모여곡(毛女谷)이라 표기할 수 있다며 모여곡을 매실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충장공 권율도원수부도 본인의 기록이 없어, 조선 <선조실록 36권>에 1593년(선조 26년) 6월7일 김명원(金命元)후임으로 8도 도원수가 되었고, 그해 12월 25일부터 전선(戰線)의 소강시에 합천으로 진영을 옮겨 무과를 설시(設施)하여 900명의 무관을 뽑았다는 기록이 있다. 도원수 진영도 <난중일기>에서 유추하면 적포(赤浦), 두사(杜汜), 낙민(樂民), 둔전(屯田)마을로 이어지는 황강양변의 넓은 지역으로 판단된다. 송복남의 <권율전기> 294면에 보면 당시 병조판서 유성룡의 말을 인용하여 ‘장수가 막사도 없이 산중에서 천막을 치고 있으니’하며 탄식하는 장면을 보아 지휘소는 고정되지 않고 수시로 옮겨졌지만 전 진영이 한눈에 보이는 낙민정(樂民亭) 부근이 유력시되며, 숙영지(宿營地)는 초계여지(草溪與誌)183면에 ‘관문에서 20리를 가면 합천군 벽전리에 병영이 있다’라 기록되어, 봉수산성 아래 벽전리(현 영전리) 일대로 추정된다.
합천은 예부터 황강이 굽이쳐 흐르고 대야성, 악견산성, 백마산성 등 천연요새(天然要塞)로 삼국시대나 임진왜란 때도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에는 전국에서 제일먼저 대규모 의병이 발생하였고, 임란 후 정유재란 발생 전 5년간 조선의 최고 전선사령부(현 합동참모본부)인 권율도원수 진영이 있었던 지역이다. 유서 깊은 ‘권율도원수 진터’와 ‘이순신 장군의 유숙지와 백의종군로’ 성역화사업은 1992년부터 10여간 세운 ‘임란창의기념관’과 더불어 합천의 역사적 명물이요, 잊혀가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재조명하여 후세들에게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살아있는 역사의 장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복원시설을 가능한 역사의 현장에 설치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항일의병 발상지 기념관인 창의사(彰義祠)도 합천댐 근처 대병면 성리 악견산에 위치했듯이 사정에 따라 다른 곳에 설치할 수 있다. 그러나 안내지도나 설명유인물 등에는 정확하게 표시해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앞으로 관련지역 주민들도 큰 안목으로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합천군의 강력한 추진으로 이미 조성된 초계 권율도원수부, 율곡매실 충무공 유숙지를 포함한 백의종군로 복원사업이 조속히 이루어져서 대병 임란창의기념관과 함께 합천의 임란항쟁(壬亂抗爭) 주요명물로 발전되길 기대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이 분야 연구를 해오시다 작고하신 합천신문 (고) 박환태사장님과, 매실마을 (고)이종규 선생님 두 분의 노고를 기리며 삼가 조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