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곳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라~”(1) – 신라충신 죽죽비(新羅忠臣 竹竹碑)
“꺾일지언정 굽히지 말라”
합천읍내에서 연호사로 가다보면 절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한껏 휘어지는 길목이 있는데 딱 중간쯤에는 비각(碑閣)이 있고 그 비각 안에는 한없이 고즈넉한 검회색 비석(碑石)이 있는데 바로 ‘신라충신 죽죽비’(新羅忠臣 竹竹碑)다. 하지만 차나 도보로 연호사나 강으로 가는 사람들은 비각을 쉽게 알아볼 수가 없는데, 비각이 뒷산 등선으로 길 보다 7~8척(尺) 위로 있어 관심을 가져야만 확인할 수 있다.
이 비는 642년 신라 선덕여왕 11년 대야성에서 전사한 죽죽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신라의 대야성은 642년에 윤충(尹充)이 이끄는 백제군에게 포위 되었다. 이때 성주 김품석에게 아내를 빼앗긴 검일이 창고에 불을 질러 성안을 혼란에 빠뜨렸다. 이에 전의를 잃은 김품석은 부하인 죽죽의 만류를 뿌리치고 항복하였다. 그런데 백제군이 항복하러 나온 사람들을 모두 죽여 버리자 김품석은 아내와 자식을 죽이고 자신도 자결하였다. 죽죽은 남은 병사를 거느리고 싸웠으나 백제군을 당할 수가 없었다. 그는 “아버지가 나를 죽죽(竹竹)이라 이름을 지은 것은 추울 때에도 시들지 않고, 꺾일지언정 굽히지 말라 함이다. 어찌 죽음을 겁내 항복하리요” 말하고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선덕여왕은 그에게 급창(級凔)의 관등을 내리고 그 처자들을 왕도로 옮겨 살게 하였다. 높이 1.4m, 폭 54cm의 화강암으로 세운 이 비석은 죽죽의 충절을 기리고 그 뜻을 후대에 전하기 위하여 1644년(인조 22)에 합천군수 조희인(曺希仁)에 의해 건립되었고, 비문은 한사(寒沙) 강대수(姜大遂)가 지었다.
신라충신 죽죽비 양편으로는 보는 쪽에서 왼편으로는 죽죽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사당인 충장사(忠壯祠)가 있고, 오른편으로는 ‘3·1운동 기념비’가 있는데 3·1운동 기념비가 왜 거기에 있는지 알겠다.
경남도는 1974년 12월 18일에 유형문화재로 지정하여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죽죽의 충절을 따르라 한다./시민기자 황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