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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가 곧 행복이다 (15) – 변명규

불이과(不貳過)
이름 없는 가수였던 데이브 캐럴(Dave Carroll)이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수화물로 맡긴 자신의 기타가 화물칸으로 마구 던져져 실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도착해서 기타의 목이 부러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한국 돈으로 무려 400만 원이나 하는 고가 기타였죠. 미국 시카고 공항에서 가칭 U 항공사(유나이티드 항공) 직원에게 항의했지만, 그 직원은 캐나다에서 항공권을 끊었으니 거기서 불만을 처리하라고 합니다. 급한 상황이라 자신의 돈 100만 원을 들여서 기타를 고친 후 가칭 U 항공사의 고객서비스센터와 계속 통화를 했지만, 9개월 후에야 그 항공사에서 이메일이 옵니다. ‘보상을 해 줄 수 없다.’는 내용이었죠. 어떻게 항의해야 할까요? 그 가수는 화내지 않고 U 항공사와의 기나긴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그래,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들자.’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U 항공은 기타를 부숴버리지 (United Breaks Guitars)]라는 컨트리풍의 코믹한 노래입니다.
유튜브(Youtube)에 올라간 경쾌하고 재미있는 동영상은 일주일 만에 300만 명 이상이 보았고, 몇 달 동안 1,000만 명이 그를 응원했으며, 동시에 U 항공사를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오랜 무명생활에서 벗어나 큰 인기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캐럴은 U 항공사를 비판하기 위해 노래를 만들었지만, 이로 인해 그가 더 유명해졌죠. 각종 뉴스 프로그램에서 그를 인터뷰했고, 아이튠즈(iTunes) 같은 음원 판매 사이트에서도 그의 노래가 크게 히트했습니다.
오히려 급해진 건 U 항공이었습니다.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간 후 U 항공사의 주가가 나흘 동안 10%나 빠져서 한국 돈으로 2,000억 원(1억 8,000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습니다.
이 금액은 기타를 5만 개 이상 사줄 수 있는 돈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U 항공은 그에게 사과하고 노래 동영상을 수하물 관련 직원들의 교육용으로 쓰고, 악기 등 파손 우려가 있는 물품은 기내에 반입할 수 있도록 규정을 고쳤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기업의 환경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이제 한 사람의 고객이 거대기업을 흔들 수 있게 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공자는 어진 안회를 칭찬하며 불이과(不貳過)를 이야기합니다.
아니 불(不), 두 번 이(貳), 실수 과(過) 같은 실수를 두 번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누군가가 두 번 실수하지 않게 하는 것은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냉정한 항의입니다.
하찮은 것이라고 잘못이 있으면 솔직하게 사과하고 배상을 하는 것이 개인이나 단체의 기본 철칙이라고 하겠습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격언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눈덩이처럼 크게 불어난 후에는 감당이 어렵습니다.

거지가 준 교훈
큰 백화점 입구에 거지 한 명이 구걸하고 있었다. 예순 살 정도의 노인. 어깨까지 내려오는 흰머리는 헝클어져 있었으며 길바닥에서 누워 잤는지 잡초가 붙어 있기까지 했다. 그래도 그는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두 손을 앞으로 펼치어 구걸하고 있었다. 어느 날 여섯 살 정도의 한 어린이가 거지에게 다가와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거지가 손을 내려다보니 예쁜 꼬마 아이가 하얀 손을 내밀고 있었다. 거지가 허리를 굽혀 그것을 받아들였다. 손바닥에는 1유러 짜리 동전 하나가 놓여 있었다. 거지는 얼굴 가득히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무엇인가 주머니에서 꺼내서 돌아서려는 아이에게 주었다. 아이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서 저만치서 기다리고 있는 엄마에게 뛰어갔다. 엄마가 놀랐다. 딸의 손에는 1유러 짜리 동전 2개가 쥐어져 있었다. 엄마는 거지에게 다가와서 “우리 아이가 드린 것도 겨우 1유러 하나인데 1유러를 더 보태서 보냈군요. 이러면 안 될 것 같아 다시 가져왔습니다.” 동전을 그의 손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거지는 그 동전을 다시 아이 엄마에게 건네며 “그건 간단하게 생각해 주세요. 아이에게 누군가를 도우면 자신이 준 것보다 더 많은 걸 돌려받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거든요.”
자라나는 어린이에게만은 특히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어른들이 행한 것들이 그대로 아이에게 교육이 되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아직 거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없었다. 그저 어른들이 하니까 자신도 하고 싶어 동전을 얻어(부모한테)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준 것보다 더 많이 받았기 때문에 좋아서 달려간 것이다.
아이는 두 번 기분이 좋았다. 거지에게 줘서 좋았고, 그런데 받아서 또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여기서 아이는 무엇을 배웠을까? 굳이 무엇을 배웠다고 의식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두 번 기분 좋은 상황이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배려하는 씨앗으로 커가는 것이다.
그 거지는 비록 구걸하는 처지지만 어른으로서 어린아이들에게 취해야 할 행동을 알고 실천한 것이다. 어쩌면 거지이기에 더 큰 교육의 장면이 된 것이다. 진정한 교육은 삶의 모든 과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어른들 모두가 명심해야 할 교육의 현장임을 기억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