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사찰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의 창건유래 (2)
이병생
합천문화원향토사
연구소장
영축산 통도사(靈鷲山 通道寺) <1>
영축산 통도사는 신라선덕여왕 15년(646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 이절에는 자장율사가 당나라로부터 가져온 부처님의 불골, 불아, 불사리, 가사가 보관되어있다. 대웅전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고 금강계단(국보 제290호)에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시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통도사 주변의 영축산 기슭에는 20개의 암자가 통도사를 중심으로 앞섶에 싸이듯이 안고, 병풍을 두른 듯한 기암기석의 절벽과 어울려져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러면 통도사의 터는 어떻게 잡았을까?
전설에 따르면 자장율사가 처음 통도사 터를 고를 때 사용한 방법은 나무로 오리를 만들어 공중에 날려 보냈는데 어디론가 날아갔던 나무오리(木鳧:목부)는 얼마 안 되어 칡꽃 한 송이를 물고 돌아왔다. “겨울인데도 어디엔가 칡꽃이 피어 있는 모양이구나!”하고 자장율사는 인근의 산들을 찾아 헤매다가 칡꽃이 피어 있는 곳을 발견했다.
그곳이 바로 축서산(鷲棲山, 靈鷲山)이었다. 현재의 통도사 금강계단이 있는 자리이다. 그기에 가보니 칡꽃 두 송이가 피어 있었는데 나무오리가 물고 온 칡꽃과 똑같은 생김새였다. 이것을 확인하고 통도사 절터를 잡았다고 한다.
도선국사 이후부터는 좌청룡, 우백호를 따지는 풍수이론을 적용해 터를 잡기 시작했지만, 도선국사 이전에는 이처럼 택지점(擇志占)을 쳐서 터를 잡은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송광사에서도 산내암자 터를 잡을 때 목부(木鳧)를 사용했고, 전북 완주군 목부암에도 신라의 체징대사가 나무로 오리를 날려 보낸 뒤 터를 잡았다고 한다.
통도사의 터에는 구룡(九龍)의 전설이 내려오는데 현재의 금강계단이 있는 자리는 원래 연못이었다고 한다.
이 연못 주변에 칡꽃이 피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절을 지으려고 보니 이 연못에 용이 살고 있었다. 9마리의 용이 주인이었던 것이다.
절을 지으려면 용이 나가주어야 하지만 자기 살던 터를 쉽게 내 줄 용이 어디 있겠는가?
통도사 창건당시 자장율사와 그 구룡사이 서로 고집을 피었는데 “하는 수 없지! 어렵더라도 한번 설득을 해보자!”
자장율사가 마음을 가다듬고 주문과 경을 읽자 서서히 용들이 머리를 물밖에 내 밀었다.
“이제 이곳에다 부처님의 원력으로 절을 지어 중생들을 구제하려하니 너희들은 조용히 이 못을 떠나거라.”
자장율사는 아홉 마리 용들을 설득했으나 용들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끝내 이 방법을 쓸 수밖에 없구나! 이것이 정말 마지막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자장율사는 흰 종이에다 불화(火)자를 써서 용들이 웅크리고 있는 연못 한 가운데를 향해 던졌다. 공중으로 날아간 종이가 수면에 닿자 곧이어 물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더니 이내 연못 전체가 펄펄 끓어올랐다.
뜨거워진 물은 크고 작은 물방울을 만들어 이리저리 튀었고, 흰 수증기가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드디어 뜨거움을 참지 못한 용들은 제각기 앞을 다투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아홉 마리 용 가운데 다섯 마리는 남서쪽을 향해 산 너머로 도망을 갔는데 그 곳을 오룡골(五龍谷)이라 부르게 되었다. 또 세 마리 용은 동쪽으로 달아나다 솔밭 길 근처 야트막한 산의 커다란 바위에 부딪혀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때용이 흘린 피가 바위에 낭자하게 흘렀는데 후세 사람들은 이 바위를 용혈암(龍血岩)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현재의 산문 쪽에 있는 검붉은 색의 용혈암은 이 용들이 흘린 피가 묻어서 바위 색이 변한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모두 여덟 마리의 용이 연못에서 나왔다. 그리고 마지막 한 마리의 용만 남게 되었는데, 그 용은 자장율사에게 이렇게 명세하며 빌었다. “대사님! 저는 눈이 멀었습니다. 그러니 이 연못에서 그대로 있게 해주십시오. 대사님이 시키는 대로 순종하고 절을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너의 소원이 정 그렇다면 내가 너를 위해 자그마한 못을 만들어 줄 테니 거기서 살도록 해라.”
“고맙습니다. 대사님!” 용은 자장율사에게 넙죽 절을 했다. 그리하여 눈먼 용 한 마리만 이곳에 살게 되었다.
통도사 대웅전 바로 옆에 있는 구룡지(九龍池)다.
구룡지는 4평 남짓하고 수심도 한길이 채 안되지만 극심한 가뭄에도 수량이 전혀 줄지 않아 구룡신지 또는 강룡지라 한다.
왜! 통도사(通道寺)라 이름 하였는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