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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알프스 도전기 (1) -비오는 문복산 – 정두현 수필가

첫인사 치고는 장대하다. 하늘이 우리의 뜻을 알고 이렇게 환대를 해 줄 주리야. 누구나, 아무나 하는 일인데, 이슬비도 모자라 장대같은 비를 내려주심에 감사하다. 가을의 길목이지만 산을 오르는 일이야 늘 상 땀으로 범벅이다. 이렇듯 더위를 식혀주고 들뜬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단비를 뿌려주니 정말 감지덕지다.
‘난감 하네’라는 노랫말이 애달프게 튀어 나온다. 모든 준비는 완벽했는데, 옥의 티라고나 할까? 어쩌면 제일 중요한 한 가지를 빠뜨렸다. 출발지에 도착해 장비를 점검하는데 아뿔싸! 등산화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 정말 난감했다. 비는 오지요, 신발은 없지요. 카페(청도로 가는 길)앞에 앉아 고구마 줄기를 다듬는 아낙네에 묻혀있는 취객이 농을 던진다. “삼계계곡이 정말 좋거든요, 하지만 비 오는데 구두 신고는 안 됩니다. 여기서 막걸리나 한잔하고 놉시다.” “여름에 관광버스로 ‘알탕’하러 오는 곳인데, 정말 아름답고 멋진 계곡 이구마.” 가라는 말인지, 가지 말라는 말인지 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울주군에서 ‘영남알프스 1,000고지 9봉 완등’을 하면 순은화로 제작된 메달을 준다고 한다. 우연히 9월초에 알게 되어 바로 도전하고 싶었다. 늦었구나 싶을 때가 가장 빠르다고 한다. 올해 안에 완등 목표로 동행할 도반을 물색했다. 다행히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 단 한 번에 입질을 한 절친 덕분에 첫 출정이 빨랐다. 바쁜 일정에 맞추되, 모든 계획을 벗에게 맡겼다. 히말라야 14좌에 버금가는 영남알프스 9봉 완등의 첫 출발이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안개에 묻혀있는 문복산을 바라보는 심정은 불확실한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기분이다. 능선을 타면 깔딱 고개가 많아 계곡을 타기로 했다. 계살피계곡은 작은 소(沼)들이 많아, 하산 길에 더위를 식히기에 참 좋다고 한다. 친구 왈 ‘알탕’이 아니고, ‘러브탕’이라고 비꼰다.
맑은 물에 삶의 무게를 씻어 내리고, 쏟아지는 폭포소리에 마음을 정화시킨다. 아직 요만큼의 가을 정취도 느낄 수는 없지만, 이 비를 맞은 나뭇잎은 한결 더 아름답게 물들 것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계곡이다. 분명 우측 능선일 것 같은데, 안개에 가려 방향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개울을 우측으로 건너 좋아 했는데, 또 되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얄밉다. 한참을 오르는데 예상이 빗나가고 말았다.
앞만 보고 오르는데 능선삼거리 표지석이 앞에 버티고 있다. 왼쪽은 마당바위로, 오른쪽은 문복산으로 가라한다. 잠시 입맛을 다시다가 정상으로 치달았다. 우의를 덮어쓴 친구의 몰골이 마치 ‘노틀담의 꼽추’ 형상이라 우습다. 물소리가 자지러드는 것은 정상이 얼마 남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래도 변강쇠의 오줌 줄기는 되겠다. 우리 정도의 세기여야 되지 않을까?” 벗의 재치 있는 말 덕분에, 비에 젖은 생쥐 꼴이지만 즐겁다. 중국인들이 제일 힘 드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갑자기 주먹이 날아 올 때, 한 번에 돈이 왕창 들어 올 때, 느닷없이 홀라당 벗고 덤벼들 때.
드디어 사람들 목소리가 들린다. 계곡에서 아무도 만나지 못해 긴가민가했다. 모두 능선을 타고 온 모양이다. 정상에서의 인증샷은 줄을 서야했다. 빗속을 누비며 오른 모든 분들이 훌륭해 보였다. 악전고투한 정상정복의 쾌재를 만끽하고 싶지만 참아야 했다. 하산 길 안내판에 마당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이 길로 올라온 노익장들의 말씀은 상당히 가파르다고 한다. 어딘들 편안하리요! 따질 것 없이 우회하자고 했다.
비는 계속 우리를 괴롭혔다. 물먹은 흙은 미끌미끌하고, 그 위에 살며시 더부살이 하는 돌들은 저 살기도 힘들다는 듯 발길을 외면한다. 올라오는 것 보다 내려가는 게 수월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이제는 정말 조심을 해야 한다. 무책임한 돌 때문에 엉덩방아라도 찢게 되면 큰일 난다. 한번 다치면 오래간다. 친구는 만약을 대비해서 배낭을 엉덩이에 걸쳤다고 한다.
마당바위에서 점심을 먹으려 하는데, 비는 여전히 우릴 시험한다. 우의로 나뭇가지와 스틱을 이용해 하늘을 가리려는데, 너무 애처로워 보였든지 그만 그친다. 산이 옷을 벗듯이 안개가 위로, 위로 솟구친다. 멀리 산꼭대기의 안개는 마치 선녀의 옷자락처럼 나풀거리며 하늘로 날아오른다. 바위는 이름만큼이나 넓고, 사방이 확 트여 시름마저 잊게 한다. 꿉꿉한 옷이 몸을 휘감지만 퍼지고 앉아 점심을 챙긴다. 먼 산의 풍광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소찬이지만, 잘 넘어가니 살 것 같다.
한 무리의 인기척에 놀라 돌아보니, 비에 흠뻑 젖은 꼬마들이 힘차게 다가온다. 산이 안개로 머리를 감는지, 비가 그친 바위가 웅장해 보이는지, 먼 산자락이 안개를 등말 태우고 노는지, 전혀 관심이 없다. 어린아이의 눈엔 무엇이 보일까? 볼 것이 없다면 왜 산을 오를까? 정상 표지석의 인증샷을 위한 산타기일까? 뒤따라오는 수녀님이 이채롭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수녀를 만나다니, 참으로 오래토록 남을 추억이다.
한참을 신나게 내려왔다. 그런데 계살피 계곡으로 내려가지 않고 자꾸만 능선을 탄다. 뒤늦게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분명 저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데 길이 보이지 않는다. 임무를 완수한 개선장군 앞에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한 블록 되돌아가면 되고, 너무 멀면 택시타고 가면되지. 잘 못 될 그 무엇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버리기 위해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내려가도, 내려가도 끝이 없다. 한없는 우려 속에 드디어 계곡으로 꺾는가 싶은데 급경사다. 마치 산양이 다니는 길 같다. 육십령고개 같은 갈지자 자갈길을 살얼음판 걷듯,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기나긴 기다림에 귀를 쫑긋 세워 보지만 물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조금씩 발가락이 아파온다. 하산 길에 너무 많은 힘을 쏟아 부은 장단지가 욱신거린다. 말없는 친구는 괜찮은 걸까? 내색을 하지 못하고 “왜 이리 머노”라며 애써 참는다.
운동화를 빌려준 카페 주인이 너무 고맙다. 등산화만큼이나 미끌림 없이 잘 지탱해 준다. 어떻게 사례를 해야 하나. 세탁비를 드려야 하나, 아니면 아예 신발을 사 버릴까? 가게에서 뭔가를 살까? 그러면 얼마를 사야하나? 계속 머리를 굴리고 상의를 해도 뾰족한 수가 없다. 우회를 했지만 내려오니, 차가 반갑다고 웃어준다. 카페주인 내외가 “대단합니다”라며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 가게 앞에 있는 자연산 싸리버섯이 보였다. “신발에 대한 사례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니 “뭘요 그것 가지고, 괜찮습니다.”라고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버섯과 고랭지 무를 샀다.
도전이라는 것은 항상 신선한 생동감을 준다. 무언가에 자신을 맡겨보는 것은 삶의 활력소다. 세월을 거스를 수야 있겠냐 만은, 의욕 만큼은 꺾이고 싶지 않아서다. 오늘 첫 등정으로 자신감과 건재함을 확인했다. 9봉 완등 의지가 확고해졌다. 친구도 이런 경험을 해줘서 고맙다고 한다. 오히려 내가 더 고마운 것을. 삶은 이토록 찾아 나서면 즐겁고 행복하다. 세월을 한탄하지 말고, 테스형 노래만 듣지 말고, 그 무언가에 자신을 던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