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역사다(25) | 휴대폰, 애니콜에 얽힌 역사 – 권길홍 수필가
전쟁후 가난, 하고싶어도 할 수 없었던 공부, 월남전 파병, 개발지상주의 폐해, 민주주의 항거 등 한국의 근대사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왔다. 현재 20여 년의 공직을 마무리 짓고 귀촌했다. 국민소득3만달러를 돌파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어떤 고난과 아픔을 가졌는지 이야기해 보고 싶다. 사실 우리 모두는 역사다./권길홍=gapowon@naver.com
반도체 산업은 1965년 미국 코미 사가 코미 반도체(주)를 합작 설립, 트렌지스터의 조립 생산을 개시한 것이 최초로 기록된다. 미국이나 일본보다 절반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 1위의 반도체 공업국이 되었다.
메모리 반도체만으로는 일본에 이어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개별 회사로 범위를 좁히면 삼성전자가 반도체 전체로는 2위, 메모리는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반도체도 예외 없이 저임금에 의한 수익 극대화를 노린 외국 업체의 진출에서 비롯됐다.
한편 전자 공업의 중요성을 인식한 정부는 전자공업진흥법을 만들고 1969년부터 1976년까지 전자공업진흥 8개년 계획을 실행했다. 국내 업체가 반도체 사업에 진출한 것도 이 시기이며 1970년대 말부터 대그룹이 가세하면서 산업적인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반도체에 대한 단순 조립에서 벗어난 웨이퍼를 가공하는 일괄 생산이 시작된 것도 이즈음이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전자 산업의 발달에 따른 연쇄적인 파급효과에 의해 발전했다기보다는 전적으로 대기업의 미래를 내다본 투자에 의한 것이었다. (조국 근대화의 언덕에서 인용)
이렇게 남의 글을 인용하면서까지 얘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결국은 사람이다. 아무리 국제환경이나 기업의 흐름에서 반도체사업을 하기 쉽다 하더라도 누군가가 시도해야 하고 거대한 자본을 들이는 일도 사람의 판단이 개입한다.
그래서 이병철 회장님의 모직이나 제분, 설탕 등의 생필품 업종에서 전자산업으로 방향을 전환할 때의 그 심정은 어떠했을까? 나는 그 분의 그 때 심경을 자꾸만 알고 싶다. 또 전자에서 반도체라는 생소한 업종으로 들어갈 때의 그 어려운 결단을 누가 조언하고 실행에 옮기도록 했을까?
초기에 삼성이 애니콜이라는 상표로 휴대폰을 만들었을 때 세계적인 삼성으로 이름을 떨칠 줄 짐작한 사람이 있었을까? 기능이나 모양에서 디자인도 볼품없었던 그 애니콜이 삼성휴대폰으로 세계시장을 석권하다니!
비록 조그만 휴대폰 가게주인에 불과했던 나지만 우리나라 제품이 우리가 만든 그 휴대폰이 세계의 초일류제품이 되었다는 사실이 나를 너무 자랑스럽게 만든다.
90년대 초에 오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서 생업으로 어떤 일을 할까 궁리하던 중에 이동통신기기 판매업에 손을 댔다. 그 당시 새로 출현한 삐삐와 휴대폰이었다.
그래서 삼성전자의 애니콜 휴대폰 대리점을 개설하여 삼성의 애니콜휴대폰을 팔았는데 그 당시의 이 휴대폰은 볼품도 없었고 구매자인 우리나라 사람들까지 인정해주지 않았다. 지금은 세계가 인정하고 서로 앞 다투어 구매하는 삼성휴대폰이고 삼성전자제품이지만 휴대폰을 만들던 초기의 삼성 통신제품은 이처럼 별 볼일 없었다. 그런데 함께 팔았던 휴대폰 가운데 영국산 유니덴이라는 제품도 팔게 되었는데 아무리 영국산이라 하지만 이 제품도 크기만 하고 인기가 없었다.
손님들은 하나같이 미국산 모토롤라를 찾았었다. 가지고 다니기 간편하고 손에 쥐고 통화하기에 가볍고 크기도 적당한, 그러면서도 다이얼 판 뚜껑이 부착 되어 인기가 좋았던 제품이다. 이 당시만 해도 미국산이면 다 좋고 미제라면 믿음도 가는 시대라 그리 했겠지만 이러한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 앞에서 우리나라는 항상 일류가 아닌 이류도 못되는 삼류였고, 선진국이라는 나라에 당연히 뒤질 수밖에 없다는 사고에 젖어 있을 때였다. 그래서 삼성제품이 안 팔려도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체념했고 미국산 휴대폰을 찾는 고객들을 당연하게 바라보았다. 정말 지금은 우리나라의 제품이 일류가 아니라면 화가 날 정도로 우린 최고라는 사고에 젖어서 살지만!
그래도 국산품애용을 철저하게 교육받으며 국산품을 사야 나라가 잘 살게 된다는 교육을 받고 자라난 우리들이라 업주인 나는 당연히 국산품인 우리나라 제품을 팔려고 했지만 너무 안 팔렸다. 물론 이 삼성제품을 팔면 대리점주인 나에게도 이익이 좀 더 남았지만, 이익이 안 남을 정도로 싸게 팔아서라도 많이 팔고 싶은 제품이었다. 한국사람인 내가 장사를 하는데 그래도 내나라 상품을 팔아야 된다는 신념으로 하나라도 더 팔려고 계속 노력했는데 결국은 모토롤라에 밀리고 노키아 제품에 밀려 결국은 이 사업도 문 닫게 되었다.
나는 장사를 못하고 문을 닫고 말았지만, 세계적인 제품이 된 삼성휴대폰을 볼 때마다 그래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을 했고, 노키아나 모토롤라를 이기고, 우리를! 우리나라를! 세계에 더 높였다는 생각에 격세지감을 느끼면서 너무 고맙고 자랑스러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또 국산품이 많이 팔려야 나라가 잘된다는 생각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다.
그래서 내 손에는 지금도 삼성휴대폰이 들려있다. 노트8이다! 이 국산 삼성휴대폰은 내 젊은 시절의 3등 국가에 3등 저질제품만 만드는 나라라는 열등감과 좌절을 멋지게 보상해준 자존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세계 어디를 가든 삼성이라는 간판만 보아도 반갑고 고맙게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또, 아직, 나는, 외제차를 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