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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는 삶이…” – 미산 변용규

요즈음 합천에서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일해공원의 명칭문제 논쟁이 나의 자존심에 상처를 더하고 있다. 지난번에 전문기관의 여론조사 결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으로 생각했는데 또다시 논쟁을 일으키고있는 불순한 무리들의 행위에 분노를 느낀다.
대통령 후보로 등장한 여당 야당의 주역들도 전전 대통령이 과도했지만 공도 있다고 긍정적으로 재평가하고 있는가 하면 온국민이 애도하고 있는 이 기간에 이곳 합천에서 이 무슨 해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형법에 아무리 중죄를 지었다고해도 생명이 끝난 사람에게는 기소할수 없다는 기소권없음이 있거늘 이미 서거한 전전 대통령의 흔적을 지우겠다고 안달하는 시민단체의 처신은 용서할 수 없다. 합천 군민의 자존심이 발동할 때이다. 우리 모두가 일어나 우리 고장의 자존심을 지키자.
합천신문 지난호(1344호)에 실린 합천노인회 이천종 회장 기고문을 읽고 불현듯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옛날 나이가 50세 때(1988년) 처음으로 등장한 합천월보(가회 출신 김희동씨 창간) 창간호 칼럼에 글을 올려 많은 공감을 얻었던 기억이 났다. 요즘 합천에서 가장 큰 논쟁을 하고있는 일해공원의 명칭과 상당한 관계가 있는 내용이었다.
2008년 칠순 기념지로 <흔적>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한 권 발간한 적이 있었다. 나는 기묘생이니 책력에서 새해 달력의 연표를 보면 84세로 나온다. 그러고 보면 14년 전 펴낸 책 속에 1988년도에 쓴 글을 소개했던 것이다. 지금은 상상도 못했던 글을 34년전 최초의 지방지 창간호에 가장 중심 되는 글을 썼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합천신문 구독자에게 다시한번 전문을 소개하고자한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 없는 삶이…
나의 자존심이 곧 합천의 자존심일수는 없겠지? 그러나 무릇 문화라는 인간 생활에서 비롯되는바 각 지역마다 특성을 가지며 부분문화를 창조하듯이 이곳에서 조상대대로 25대를 살아왔고 나 자신이 태어나서 50년을 생활하는 동안 느끼고 호흡하며 앞으로 계속 살아나갈 나에게는 다른 친구들에게 찾아볼 수 없는 뚜렷한 자존심이 있는것 같다.
이것은 나에게 영향을 주는 요인이었으니 바로 합천의 산천이고 합천의 정신이고 합천인의 자존심이다.
우리 합천은 소백산맥의 자락인 가야·황매 양대산의 정기를 받고 군의 중심에 흐르는 수정같이 맑은 황강물이 우리의 정신적 젖줄이다. 또한 조상대대로 이어져오는 자존심이 있어니 그것은 바로 신라 충신 죽죽장군의 피와 정신이 가장 강하게 흐르고 있다.조선시대고려때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보물 팔만대장경에 깃든 호국불교 정신이 있고, 이때를대표해서는 성리학의 독보적인 존재이신 남명 조식선생의 철학을 낳게한 선비정신이있었으니 실천궁행의 철학으로 임진왜란시 의병정신으로 발현되어 구국의 정신으로 승화되었다. 이러한 모두가 오늘에 이어져 얼마나 자랑스러운 군민정신인가.뿐만 아니라 우리 합천의 외손 이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초계변씨의 외손이다) 이 백의종군하던 구국정신이 강력히 흐르고 있어 지난 일제 핍박 민족으로 있을때는 3.1독립만세운동이 영남지방에서 가장 먼저 일으났고 그 규모가 가장 컸었다니 이 또한 합천인의 가슴속에 흐르고 있는 자긍심이다.
이렇게 훌륭한 구국정신과 호국정신, 실천궁행의 철학을 한데 묶어 해마다 우리 군민은 함께 모여 기리는 행사로 대야문화제를 개최하여 조상의 얼을 되새기고 군민정신을배양하고 있다.
그러면 나는 어떠한가? 나의 자존심은 무엇인가?
나는 적중면 평산리에서 태어났고 적중국민학교, 초계중학교를 거쳐 대구에 유학하여 경북대학을 졸업한 후 수의사가 되어서 돌아와 합천군 농촌지도 공무원으로 사회 생활의 첫발을 들여 놓아 십여년을 봉사했고 1974년 부터 전공을 살려 수의사로서 15년 현재에서 미래가 가장 보편적인 보통사람들만 상대로 배우고, 가르치고, 어울리고 있으니 나의 자존심일 수 도 있겠다. 나를 시대적 배경으로 설명해 보건데, 1948년에 국민학교를 입학하였으니 대한민국 1회 졸업생이고 대학 2학년때 4.19를 맞아 부정부패를 규탄하였으니 이름하여 4.19주체 세대가 되었고 1961년도에 군대에 학보병으로 입대하여 5.16을 맞아 혁명공약을 밤세워 익히던 시절을 겪었으니 5.16주체 세력이라고 자랑해 왔다. 그 후에 공직생활에서 유신을 맛보았으니 이 또한 유신주체 세대이다.
1980년대엔 보통 시민으로 생업에 종사하던 중 이 고장 출신의 前 전대통령이 혼란기를 바로 잡아 나라를 안전하게 주도해 주었으니 이로서 개혁주도 세력이라 자랑하며 나의 자존심을 키워왔다. 그래서 나는 사회적 모임에서도 많은 동창들의 모임에서도 우리합천적 사고방식과 면면히 이어오는 합천정신의 토대위에서 나의 가치관, 나의 자존심을 역설한 바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특히, 강조한 것이 있었으니 이것은 합천정신을 이어받은 前 전대통령의 정치철학을 우리 합천정신의 한부분이라고 역설하여 많은 공감과 박수를 받은바가 있었다.
이제 퇴임한 전대통령의 공과를 두고 세상사람들의 논함에 따라 나의 자존심을 대단히 상하게 하고 있다. 이제 나의 자존심이 발동하여 항변하노니 전례없는 안정적 경제성장과 성공적인 물가안정정책 등을 제쳐두고 오직 한가지 두고 두고 자랑스럽고 후세에 빛나게 할 위대한 업적은 단임정신이며 이를 차질없이 실천함이었다. 이 단임실천정신이야 말로 합천정신의 진수라고 자랑하고 싶다.
취임때부터 우리 국민에게 약속한 단임의 뜻을 많은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았고 불안해 하며 의심해 왔지만 우리 합천인은 아무도 이를 후세에 기억될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모두가 믿어왔고 많은 사람들에게 합천정신은 실천궁행의 정신으로 행동과 실천이라는 것을 강조한 바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나는 전대통령을 한번도 만나 본적은 없다. 특혜를 받은 일도 없다. 두세번 이곳 합천을 다녀갔다지만 선택된 사람이 못되었기 때문에 그분과 대면할 기회가 없었다. 다만 뭇사람들이 전씨측과 줄을 대며 살려고 하던 인심을 먼곳에서 바라보고 느껴왔을 뿐이다.
하기야 민속촌에 가깝도록 버림받았던 이곳 합천에 도로포장이 갑작스레 90%까지 되었으니 오토바이를 타고 가가호호를 먼지 길로 달리던 때를 생각하면 나로서는 엄청난 혜택을 받은 것이 된다.

조석으로 변하는것이 인심이라 하거늘 세상 사람들아 변하는 인심에만 편승하지 말고 역사의 큰 물줄기를 잡아 주고, 앞으로 바로잡아줄 한 지역의 역사적, 전통적 가치관과 철학정신은 오래 오래 기리고 기억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지금 국회에서 5공비리의 특위조사반이 前 전대통령의 선산 치산관계를 논함에 있어 비애를 느낀다. 일해 재단 기금의 비공개 부분을 공개하도록 종용하는 민심을 보고 구역질이 난다. 연희동의 주택을 호화 주택으로 매도하는 신문 기사를 보고 의심이간다. 이 나라의 부유층이며 오늘의 정치인이 이만 못한 선산과 집을 가진 자 몇이나 되겠는가.
지난날의 잘한 것은 제쳐두고 잘못된 모든 것을 혼자에게만 책임지우고 손가락질할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 온 우리 국민 전체가 먼저 책임지고 자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 사람의 희생양으로 민심을 수습할려는 자세는 빨리 버리고 우리 국민 모두가 책임을 지고 각성하여 새로운 역사창조와 새로운 차원의 국민적 자존심을 키워 나가야 할 것이다.
나의 가슴속에 흐르는 뜨거운 합천의 얼과 정신을 다시한번 가다듬으며 우리 군민에게 외치노니 합천인의 자존심을 지켜 나가자!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이 곧 우리 합천의 자존심이 아니던가. 합천인의 자존심과 구국정신이 전 국민의 가슴속에 자리 잡을때 화해와 화합의 장이 열리고 나아가 민주통일 한국의 앞날이 밝아오리니 끝으로 기억나는 고시조 한수를 암송하며 자존심 상한 나의 마음을 달래어 본다. “삼동에 베옷입고 암혈에 눈비 맞아 구름겐 별늬도 씐 적이 없건마는 서산에 해진다니 눈물겨워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