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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2) – 변명규

긍정(肯定)의 눈으로 보면
70년대는 우리나라 경제개발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고, 그 결과 우리의 무역이 매년 증가하고 있었으며, 국민소득이 날로 올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국가경제가 내실을 다지고, 안전한 기반을 잡기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함이 많았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는 공업화의 필수인 원자재 값이 뛰면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지금은 그것을 예측한 대비가 어느 정도 갖추고 있긴 하지만. 특히 100% 수입에 의존하는 석유 에너지의 안전한 수급에는 전혀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73년도 1차 오일파동이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는데 당시 순항하던 경제발전에 목을 졸리고 말았던 것이다.
밝은 곳이 있으면 어두운 곳이 있고, 어두운 곳이 있으면 밝은 곳이 있는 법이다. 다만 그 밝은 곳을 찾을 줄 모른다거나 안내를 해도 가지 못하는 사람은 그 밝은 곳을 놓치고 마는 것이다.
그 어려운 시기에 우리경제를 반석에 올려놓은 두 영웅이 있었다. 잘살아 보겠다고 불철주야 경제발전에 매진한 두 영웅. 그 두 분의 실화를 하나 옮겨본다.
1975년 여름 어느 날, 박정희 대통령이 현대건설의 정주영 회장을 청와대로 급히 불렀다. “달러를 벌어들일 좋은 기회가 왔는데 일을 못하겠다는 작자들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중동에 다녀오십시오. 만약 정 회장도 안 된다고 하면 나도 포기(抛棄)하지요.” 정 회장이 물었다. “무슨 얘기입니까?” “1973년도 석유파동으로 지금 중동국가들은 달러를 주체하지 못하는데 그 돈으로 여러 가지 사회 인프라를 건설하고 싶은데, 너무 더운 나라라 선뜻 일하러 가는 나라가 없는 모양입니다. 우리나라에 일할 의사를 타진해 왔습니다. 관리들을 보냈더니, 2주 만에 돌아와서 하는 얘기가 너무 더워서 낮에는 일할 수 없고, 건설공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이 없어 공사를 할 수 없는 나라라는 겁니다.” “그래요, 오늘 당장 떠나겠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5일 만에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하늘이 우리나라를 돕는 것 같습니다.” 박 대통령이 대꾸했다. “무슨 얘기요?” “중동은 이 세상에서 건설공사 하기에 제일 좋은 지역입니다.” “뭐요!” “1년 12달 비가 오지 않으니 1년 내내 공사를 할 수 있고요.” “또 뭐요?” “건설에 필요한 모래, 자갈이 현장에 있으니 자재 조달이 쉽고요” “물은?” “그거야 어디서 실어 오면 되고요.” “50도나 되는 더위는?” “천막을 치고 낮에는 자고 밤에 일하면 되고요.” 박 대통령은 부저를 눌러 비서실장을 불렀다.
“임자, 현대건설이 중동에 나가는 데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도와줘!”
이렇게 하여 중동에서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인의 근면은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거기다 한국인이 머리가 좋기로도 이름이 나 있지 않는가? 사막의 열사에서 건설공사를 하면서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는 근면과 여러 가지 아이디어로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밤에 불을 밝히고, 현장마다 얼음을 생산하여 활용하면서 모래밭에 수십 층의 건물이 올라가고, 모래 속에 대형 수도관을 묻어 사막을 온통 오아시스로 만드는 자부심으로 50도가 넘는 열기와 싸워 이겼고, 한국인의 얼도 모래 속에 함께 심었던 것이다.
석유 자원의 보고 덕에 가만히 앉아서 거대한 부를 거머쥔 중동국가들. 그들이 재주를 부리면 세계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고, 오일달러가 무진장 쏟아져 들어가 그들의 금고가 넘쳐나는 것이다.
그 넘치는 오일달러를 우리 건설회사와 노동자들이 우리나라로 옮겨왔으며 우리 경제의 안정적 발전과 국민소득을 높이는 데 큰 공을 세운 것이다.
여기에는 세계가 모두 외면한 가운데 오직 우리만이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안목이 일궈낸 쾌거였던 것이다.
그 두 분은 지하에 잠들었다. 아니 저승에서 다시 만나 옛날을 회상하면서 어느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부딪치며 후손들의 앞날에 희망이 가득하기를 기원하고 계실 것이다.

돌터니즘
220여 년 전(1794), 한 남자 아이가 어머니에게 드릴 크리스마스 선물로 양말을 사 들고 왔다. 그런데 엄마는 선물을 받고 기뻐하기는커녕 버럭 화를 내는 것이었다. “넌 왜 이렇게 철이 없니? 청교도에게 이런 색은 금기야!” “파란색이 왜 금기야?” 아이가 이상한 듯 되물었다. “네가 산 건 붉은 색이잖니?” 어머니와 아들은 색깔을 두고 다투었다. 아이는 곧 형을 불러 판결을 부탁했는데, 형도 파란색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 기가 막힌 어머니는 이웃에게 양말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붉은색이라고 입을 모았다. 아이는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자기와 형의 눈이 색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리고는 자기처럼 눈에 이상이 있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이 아이가 바로 수많은 조사와 연구 끝에 ‘색맹론’이라는 과학 논문을 쓴 존 돌턴이다. 이 논문은 시차 원리에 따른 색맹 문제를 논한 첫 번째 논문이었다. 돌턴은 이 논문으로 명성을 얻은 뒤, 기상과 물리, 화학 분야에도 많은 공헌을 했다. 훗날 사람들은 그를 기리기 위해 ‘색맹증’을 그의 이름을 따서 ‘돌터니즘(Daltonism)’이라 불렀다.
돌턴이 자신의 불행을 행운으로 바꿀 수 있었던 근본적인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영혼의 눈이다. 신체적으로는 색맹임을 발견했지만 영혼의 눈을 새로 얻었기 때문이다. 역사상 인류의 수준을 높이고 사회를 변혁시킨 위대한 인물들은 대부분 이처럼 용기 있게 인생의 문제를 발견하고 지혜롭게 헤쳐나간 사람들이다.
이것은 곧 긍정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