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현지(三嘉縣誌)와 퇴계(退溪) 이황(李滉) – 월허 전호병 합천군향토사 학회 회원
이십오일1) 합천(陜川)에서 삼가(三嘉)로 가던 도중에 [二十五日 陜川向三嘉途中]
朝看旭日傍伽川 조간욱일방가천
떠오르는 해 보며 伽川2) 길을 따라와
午過南亭入紫烟 오과남정입자연
한낮에 南亭3) 지나 紫烟4) 속에 들어왔네
欲把塵機渾脫累 욕파진기흔탈루
세속의 잡념일랑 떨쳐버리고 싶어도
柰何世事動遭牽 내하세사동조견
세상일에 이끌리니 어이하면 좋을꼬
新陽雪盡纔三日 신양설진재삼일
입춘 넘긴 사흘 만에 초봄 눈이 다 녹고
舊館人非已六年 구관인비이육년
육 년 지나 옛 객사 그때 사람 아니로세
杳杳家山今更遠 묘묘가산금갱원
내 고향 까마득히 이제 더 멀어지니
羇心休道洛中偏 기심휴도낙중편
나그네 맘 서울서만 더 외롭다 할 수 없어
23일이 입춘이었고 지금 사흘이 지났다. 지난 정유년(1537, 중종 32)에 내가 宜寧에 왔으므로 지금 임인년까지 꼭 6년이 되었는데, 인간사가 많이 변했다. 樂天 詩5)에 “만 리라 구불구불 뻗을 길 따라, 육년 되어 이 몸 막 돌아왔노라. 지나온 곳 옛 객사 많기도 한데, 대부분 옛 그 주인 아니었어라.[萬里路長在 六年身始歸 所經多舊館 太半主人非]”라고 하였다.
二十三日立春, 至今過三日也. 歲丁酉, 余到宜寧, 至今壬寅, 恰是六年, 而人事多變. 樂天詩, 萬里路長在, 六年身始歸. 所經多舊館, 太半主人非
1) 이십오일 : 임인년(1542, 중종 37) 1월 25일이다. 이때 퇴계 선생의 나이는 42세였다.
2) 伽川 : 가야산에서 발원하여 성주 가천면으로 흐르는 강이다.
3) 南亭 : 성주 관아에서 남쪽으로 1리 지점에 있던 정자이다. 現 성주여자중고등학교 언덕에 있던 정자가 임진왜란에 화재로 없어졌다.
4) 紫烟 : 붉은 빛을 띤 안개라는 뜻으로, 주로 신선이 산다는 신성한 곳을 말한다.
5) 樂天 시 : 락천은 당(唐)나라 문장가 백거이(白居易)의 자이다. 시는 그가 지은 ‘商山路有感’이란 제목의 작품이다.
삼가(三嘉) 쌍명헌(雙明軒)
暗覺輕黃著柳時 암각경황착유시
버들가지에 담황색 붙는 것을 느낄 때 著(붙을 착)
夕陽明麗下樓遲 석양명려하루지
맑고 고운 석양이 누각 너머 뉘엿뉘엿
當年雪後行吟處 당년설후행음처
지난날 눈 내린 뒤 거닐며 읊조리던 곳
依舊人家有竹籬 의구인가유죽리
예 그대로 민가에 대울타리 둘러 있네
滴殘簷雪暮凄凄 적잔첨설모처처
저물녘 처마 끝에 눈 녹는 물 차가운데 잔
古屋烟生一半低 고옥연생일반저
피어나는 고가 연기 대부분 낮게 깔렸네
自是南中有佳致 자시남중유가치
남쪽 고장 당연히 좋은 운치 있기 마련
竹林多處翠禽啼 죽림다처취금제
대나무 숲 여기저기 물총새 울어대네
진산(晉山)의 시에 晉山詩, “옛 고을 해질 무렵 까마귀 울어대고, 눈 개인 강변길이 구불구불 가늘구나. 민가는 곳곳마다 숲나무 의지했고, 흰 널판 쌍 사립문이 대울타리에 얼비치네. [古縣鴉鳴日落時 雪晴江路細逶遲 人家處處依林樾 白板雙扉映竹籬]”라고 하였다.
*진산(晉山)의 시 : 진산(晉山)은 강혼(姜渾 1464년∼1519)을 말한다. 시는 그가 지은 ‘三嘉雙明軒’이란 제목의 작품이다.
선생께서 1542년 1월 25일 立春에 처가가 있는 의령으로 가는 중에 [二十五日 陜川向三嘉途中] 을 지었고, 삼가에 도착해서 객사(鳳城館)에서 지내면서 쌍명헌(雙明軒) 詩를 지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舊삼가읍지에 퇴계 이황선생의 詩「쌍명헌(雙明軒)」만 실려있다. 二十五日 陜川向三嘉途中 도 삼가현지에 실려야 할 자료이다. 퇴계는 버리고 내 고장 출신인 남명만 선양하는 것은 편협偏狹이니 퇴계의 삼가행적을 기록하고자 한다. 선생께서는 의령을 여덟 번 이상 다녀갔다고 하는데, 의령은 선생의 처가妻家이고 요절한 次子의 무덤도 외조부(선생의 장인) 무덤의 아래에 있다고 한다.[二十五日 陜川向三嘉途中] 은 수년 전에 저장해두었던 詩를 이번에 처음으로 국역하고, 쌍명헌 詩는 이미 두 번이나 국역이 되었지만 3번째로 다시 국역하게 되었습니다. 한시나 한문공부를 하시는 독자님들께서는 읽을거리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면지面誌를 발행하였거나 추진 중인 지역이 많지만 삼가에서는 감감하다. 삼가에서는 舊삼가읍지를 보완하여 삼가현의 역사를 잘 기록하고, 현재 삼가면의 현황까지 포함해서 三嘉面誌가 아닌 삼가현지三嘉縣誌가 되어야 할 것이다. 舊삼가읍지를 보완 정리하는 것이 삼가면의 현황을 정리하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지만 지나온 역사에 더욱 정성을 들여야 한다. 삼가현과 초계현이 합천군에 통폐합되었고, 문명의 발전으로 앞으로는 합천군도 이웃 군과의 통폐합이 되어 합천이란 이름도 없어질 수가 있으니 현재를 기록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수년 전부터 가야사伽倻史를 복원한다고 삼가 양전리 고분군古墳群을 조사 발굴하고, 학술대회도 열어 까마득한 과거사過去史 연구에 힘쓰고 있다. 이로써 역사를 잘 기록하는 것이 더한층 중요함을 알게 한다.
삼가에서는 합천군수님과 담당자 제위께서 애쓴 덕분으로 국토부의 도시재생사업 자금을 약180억원이라는 많은 자금을 지원받아 지난해부터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먼저 크게 감사하고 치하하는 바입니다.
사업진행은 1)상금리 숙박시설, 2) 면사무소옆 쌈지공원, 3)삼가현청內 카페, 4)삼가현청內 2층건물, 5)삼가현청內 쉐어하우스, 등의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도시재생사업의 시작부터 우선적으로 검토해야 할 문제는 첫째, 옛 사적史蹟을 철폐(폐철)할 것인가 보존 * 복원인가를 중요시해서 여러 방면으로 조예가 있는 인사들을 초빙하여 검토 조사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실제의 진행은 사적지史蹟地의 검토 연구는 아예 생략하였습니다. 둘째, 도로와 낙후된 지역을 정비하여 도시의 미래지향적인 균형발전입니다. 도시균형발전도 도외시한 채로 복잡한 동네에 필요성을 느낄 수 없는 관에서 운영하는 숙박시설을 지었고, 쌈지공원을 조성하려고 합니다.
삼가현청과 삼가면사무소 자리에 객사 * 동헌 * 정금당 * 관수루를 복원하는 문제로 좁혀져서 동헌복원東軒復元은 추진하기로 하고, 현청자리에 복원하는 정금당淨襟堂 설계용역비까지 5,000만원이 책정되었다고 합니다. 보채는 아이들에게 사탕 쥐어주는 격으로 정금당을 복원사업을 쥐어주고, 삼가현청의 흔적을 지우는 사업은 그대로 추진하려고 합니다.
정금당보다는 관수루觀水樓를 더 우선해야 합니다. 삼가읍지에는 詩文에 탁월한 여러 선생들께서 관수루에 올라 지은 시가 실려 있습니다. 목계木溪 강혼姜渾,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 睡軒수헌 권오복權五福 선생 등입니다. 김일손선생과 권오복선생의 詩도 정금당이 아닌 관수루에 올라 지은 것입니다. 또, 학봉 김성일선생께서는 정금당의 기록이 없어 보입니다. 유생 이대기李大期의 만원서挽轅書도 학봉선생께서 초계진영에 있을 때에 올린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도 비가 오는지라 현감도 산성(악견산성)에 가고 비어있는 객사(봉성관)에서 2박3일동안 머물렀을 뿐인데, 기록에 없는 정금당에 들렀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하금리 도로변인 도의원댁에서 귀양루 건너편까지 폐가가 되어가는 집들을 매입하여 현청內에 거주하고 있는 분들 중에서 희망하는 분들은 이주(교환)하게 하여 부지확보를 수월하게하고, 귀양루 건너편 강둑 가까이에 관수루觀水樓와 정금당淨襟堂을 복원하고 소공원을 조성한다면 도시의 정비와 균형발전이 되었을 것입니다. 정금당이나 관수루를 복원하는 문제는 면사무소 근방이 변하고 복잡해져서 적당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삼가현청三嘉縣廳은 정문인 귀양루가 경상남도지정문화재로 남아있으며, 청사의 윤곽과 중요건물의 위치를 알 수가 있는 합천과 초계에도 남아있지 않은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현감의 집무실이었던 동헌東軒은 정미소 뒤쪽의 김영길원장 선친께서 살던 집과 이병조씨께서 살던 집터에 있었고, 외동헌인 근민당近民堂의 자리도 대강을 알 수 있다. 이런 소중하게 다뤄야 할 사적지史蹟地에 까페를 만들고 현대식 2층 건물과 쉐어하우스 등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고민도 없이 삼가현청의 흔적을 지우는 것은 지난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행한 문화말살文化抹殺 행위와 다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도시가 발전을 하면 공공건물은 복잡해지는 도심을 피해서 외곽으로 이전을 하게 됩니다. 삼가에도 복지회관은 강 건너로 옮겨야 하고, 앞으로는 면사무소도 외곽으로 옮기는 걸 검토해야 합니다. 구도심을 새롭게 정비하는 것은 엄청난 자금과 노력으로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에 새로운 동네를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충청북도 옥천군沃川郡의 3천평이 넘는 육영수여사생가 복원사례를 소개합니다. 원래는 정승이 살던 오래된 큰 고택으로 독농가篤農家인 육영수여사의 선친께서 구입하여 살았는데, 육영수여사 서거 후로 방치되어 건물이 무너지고 폐가가 된 고택古宅이였습니다. 옥천군에서 2002년부터 복원계획을 세워 고증과 집을 수리했던 목수, 관리인, 고용인 등 많은 분들을 수소문하여 예전의 모습을 수집*참고하여 원형대로 복원하려고 노력하여 1년에 한 채 혹은 두 채를 지어 8년차인 2010년 5월에 완공을 하였다고 합니다. 많이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전라북도 전주시에서는 규모가 큰 전라감영을 복원하여 전주한옥촌보다 더 각광을 받을 것이라는 전주시장의 말을 들었습니다.
필자는 삼가도시재생사업이 더 잘되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