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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역사다(30) | 자본주의의 음식 – 권길홍 수필가

내 젊은 시절에 음료는 사치다 하며 일체의 음료수를 마시지 않으려 했다. 한 번씩 신문이나 방송에서 들리는 말로는 서구취향의 음식인 햄버거니 콜라에는 우리 인체에 해로운 음식이라 하여 자주 먹거나 마시면 해롭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비만을 가져오거나 당분이 많은 음료는 당연히 당뇨병을 일으키고 우리 인간의 몸을 약하게 한다고, 이런 말을 들어서인지 콜라와 햄버그를 안 먹으려 했다.
그 당시에 햄버그니 콜라라는 음식을 처음 마주할 때의 느낌은 이때까지 우리가 보고 먹었던 음식의 관념과는 너무 달랐다. 어떻게 음식을 손에 든 채로 젓가락이나 숫가락을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바로 먹을 수 있고, 식사를 한다고 하면서 밥을 따로 그릇에 담아온다든지 반찬이니 국이니 하는 구분도 없이 고기와 야채를 한 가지 음식으로 만들어 종이에 둘둘 말듯 포장을 한 걸 먹을 수 있느냐고, 젊고 철이 없었던 아니 무지했던 우리는 오로지 쉽게 간단히 속성으로 먹어지는 한 끼니의 빵이나 햄버그와 같은 식사를 수용하지 못했다. 서양사람들은 그 귀한 먹는 일조차도 편리성만 추구한 걸 보고 정말 자본주의를 좋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합리라든가, 편리함은 작업하고 제조와 생산이라는 일을 할 때 추구하는 가치로 알았지 그게 먹는 일에도 적용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긴 요즘에는 치킨이 있고 피자까지 있어 자본주의 음식 정도가 아니라 세계화된 음식들이 우리 입을 꼬드겨 하루라도 끊지 못하게 입맛마저 바꾸어 놓았지만, 이처럼 불과 5,60년의 세월이 흘러갔을 뿐인데 먹는다는 일 하나에서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내용은 말할 것도 없지만 먹는 방법이나 영양에서도 달라졌고 음식을 대하는 자세마저도 달라졌다.
이런 한편으로는 우리 젊은이들을 서구 취향의 음식에서 떼어놓으려는 그 당시 식자층의 가르침은 집요했다. 정말 음식의 영양문제에서도 지방이 많아 우리 인체에 해롭다고 말리거나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음식이라 할 정도였다.
그런데 내가 월남에 가서 미군들과 잠시 어울려보면 그들 미군들은 콜라와 커피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마실 정도로 자주 마시고 있었다. 그때 미국의 언론에서 나온 말이 콜라가 해로운 음식이라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그 여파로 콜라를 피엑스 매점에 판매하지 못하게 했더니 뭐, 전투력이 떨어지고 사기가 내려가서 먹지 못하게 막을 수 없는 음식이라고 했다. 그걸 들은 우리 한국인 사병들끼리 뭐, 콜라가 무슨 대단한 음료라고 미군장병들이 그걸 못 마시면 사기가 내려간다고 하나, 그러면서 오히려 그런 거 안마시고도 전투를 잘하고 있는 우리 한국군이 훨씬 뛰어난 군대라고 우쭐댈 만큼 우리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요즘은 아무도 자본주의의 음식이니 해롭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을 만큼 우리 사회가 개인주의로 달려가고 있지만 누군가는 이 사회를 향해 잘못가거나 외곬수로 흘러가고 한편으로 기울어지면 가르치고 바로잡아주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사람조차도 없다는 게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든다.
함께 행복해야 하고 건강해야 한다면 감정적이고 단순한 사고로 제 앞만 보고 달려가는 대중들을 바로잡아 주어야하는데 그런 사람도 없다. 음식에서도 그렇다. 굳이 먹는 일로 국민적이 자세니 정체감을 들먹일 이유야 없겠지만 너무 서구쪽에 치우친 부분도 있는데 이런 일에서도 아무런 인식이 없이 주어진 현상만 수용하는 사회! 하긴 베트남 쌀국수가 있고 터키 케밥이니 온갖 나라의 음식을 우리는 잘도 먹는다.
제 몸 제가 스스로 챙기면서 살아라는 얘기겠지만 늙어가는 나에게는 좋아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지식이 발달되고 문명이 나아지는 방향으로 간다하지만 자기 통제력이 뛰어난 사람이면 혼자서 판단하고 제 앞가름을 잘하겠지만 그런 사람보다는 아직도 맛있고 편한 거만 찾는 사람이 너무 많이 존재한다. 그들에게 그래도 누군가는 바른 길을 말해주어야 할 게 아닌가.
그 옛날에 햄버그를 먹지 않았고 콜라를 마시지 않았던 그 사실에 대해 이실직고하자면 자본주의 음식이니 인체에 해로우니 하고 아무리 큰소리로 말해주어도 우리에게는 그 말 때문에 안 마시고 안 먹었던 게 아니라 내 호주머니에 돈이 없었던 때문에 먹지를 못했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아무리 몸에 해로워도 우리 경제사정이 넉넉했더라면 그 젊고 왕성한 식욕 앞에 어찌 절제가 되며 참을 수가 있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