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2) – 변명규
꿈을 이루려는 굳은 마음
송나라의 재상 범문정이 젊었을 때 이야기다. 일정한 직업도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던 그가 어느 날 길가에 앉아 있는 점쟁이에게 다짜고짜 자신의 운세를 물었다.
“내가 이 나라의 재상이 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갑작스런 젊은이의 물음에 점쟁이는 눈을 껌벅껌벅하면서 이리저리 살피더니 말했다.
“음, 자네의 관상으로는 어림도 없네그려.” 그는 크게 실망했지만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럼 의원 노릇이라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그 점쟁이는 의아하다는 투로 물었다. “아니 자네의 희망 사항이 어찌해서 금방 재상에서 의원으로 내려앉는가?” “예, 저는 여하튼 백성을 구원하는 일을 하고 싶은데 세상을 살기 좋게 다스리려면 우선 재상이 되어야 할 것이고 그게 안 된다면 의원이라도 되어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 주려고 합니다.” 이 말에 점쟁이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자네는 결국 재상을 하겠구먼.” 범문정이 이 말을 듣고 이상하여 다시 물었다. “아니 어떻게 금방 변하는 점괘도 있습니까? 좀 전에는 어림도 없다더니 이제는 …….” 그러자 점쟁이가 엄숙하게 말했다. “관상에는 골상, 색상, 심상이 있는데 골상이 색상만 못하고, 색상은 심상만 못하다는 말이 있네. 자네는 골상이나 색상으로 보아서는 재상 근처에도 못갈 위인이지만 그 넉넉한 심상을 보아하니 결국 재상이 될 거라는 말이네.” 그렇게 하여 범문정은 훗날 결국 재상이 되었던 것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획기적이 전환기가 있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기회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기회 즉 전환기를 잘 포착하여 실행한 사람은 성공하고 그 기회를 놓치는 사람은 성공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범문정의 심상이 재상을 할 수 있겠다는 그 점쟁이의 긍정적인 말이 그에게 기회를 제공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시 말해 그에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열심히 노력할 전환기 즉 기회를 불어넣어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으로서의 기본적인 도리를 하고 살도록 하는 것도 마음이요, 존경받는 훌륭한 삶이 되는 것도 그의 마음 씀씀이가 좌우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 인간이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인가? 이 세상이 꼭 필요로 하는 존재인가? 하는 것도 그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는 것이다.
제아무리 아는 것이 많고 재주가 있으며 기술이 좋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사정을 몰라주고 자기가 최고라는 거만한 자세로 행동하며 이기적이고 베풀 줄 모른다면 그는 누구에게도 존경을 받을 수 없으며 결국 회사나 사회로부터 따돌림을 당하여 패배자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지금의 사회는 복잡하게 얽혀있다. 서로의 지식을 공유하고, 정보를 교환하며 협력과 상호 유기적 관계를 유지해야만 낙오 없이 살아갈 수 있다. 나만이 잘 되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서로 공생하는 자세로 베풀며 살아가야 한다.
김구 선생과 관상 이야기
백범 김구 선생의 자서전 ‘백범일지’를 보면 선생이 한때 풍수와 관상을 공부하던 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김구 선생은 당시 17세의 나이로 과거 시험에 응시했지만, 이미 당시의 조선은 사전에 합격자가 미리 정해져 있을 만큼 매관매직이 판을 쳤고, 부패할 대로 부패해 있었습니다. 이에 크게 실망하고 풍수와 관상을 공부하기로 합니다. 관상 공부에 매진하던 김구 선생은 어느 날 자신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하였는데 좋은 상은 없고 온갖 나쁜 상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김구 선생은 또 한 번 큰 실망을 하지만, ‘마의상서’의 한 구절을 보고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상호불여신호(相好不如身好)
얼굴 좋음이 몸 좋음만 못하고,
신호불여심호(身好不如心好)
몸 좋음이 마음 좋음만 못하다.
이 글귀를 보고 선생은 “이제부터 밖을 바꾸는 외적 수양에는 무관심하고 마음을 닦는 내적 수양에 힘써 사람 구실을 하겠다고 마음먹으니, 종전에 공부 잘하여 과거하고 벼슬하여 천한 신세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은 순전히 허영이고 망상이요, 마음 좋은 사람이 취할 바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라고 합니다.
하지만, 김구 선생의 한 인간으로서의 인생을 들여다 보면 그의 삶은 그의 관상처럼 참으로 힘든 인생이었습니다. 조선 시대 역적으로 몰린 김자점의 후손으로 집안 대대로 고생을 했고, 동학운동을 하며 쫓기는 삶을 살았고, 일본인 살해사건으로 젊은 나이부터 오랜 감옥생활을 했고, 상해 임시정부를 지키며 어렵고도 힘든 독립투사의 삶을 살았고, 해방 후 민족의 지도자로서 거듭나려 할 때 암살을 당했습니다.
어찌보면 그의 안 좋은 관상대로의 삶이라 볼 수도 있겠으나 선생과 같은 독립투사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라가 존재하고, 선생 역시 오늘 날 존경받는 위인으로서 우리들의 가슴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일 겁니다.
위인들의 뒤에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다. 김구 선생 또한 한 어머니의 아들이며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냈다. 김구 선생이 어머니를 모시고 중국 남경에서 지낼 때 김구 선생을 존경하는 청년 단원과 몇몇 동지들이 선생의 어머니 생일을 알고서는 잔치를 준비했다. 이를 눈치챈 어머니는 아들의 동지들을 불러, “생일상을 차릴 돈을 나에게 달라. 그러면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준비하겠노라.”고 했다. 친구들은 그런 줄 알고 그 돈을 드렸다. 어머니는 장을 보러 나간다고 밖으로 나갔다 오더니 차린다는 음식은 하나도 사오지 않고 그 돈으로 위기에 처 했을 때 사용할 권총 두 자루를 사 가지고 와서는 독립운동에 쓰라고 동지들을 격려해 주었다고 한다.
김구 선생은 어머니의 그 큰 뜻을 보고, 듣고, 실천하며 나라의 큰 별로 활동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