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역사다(31) – 자기가 흙수저라 생각하는 젊은이들 – 권길홍 수필가
전쟁후 가난, 하고싶어도 할 수 없었던 공부, 월남전 파병, 개발지상주의 폐해, 민주주의 항거 등 한국의 근대사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왔다. 현재 20여 년의 공직을 마무리 짓고 귀촌했다. 국민소득3만달러를 돌파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어떤 고난과 아픔을 가졌는지 이야기해 보고 싶다. 사실 우리 모두는 역사다./권길홍=gapowon@naver.com
젊은 내 꿈은 재벌2세인데 우리 부모님이 안 따라 준단다.
너희들이 자조하고 마음의 상처받는 걸 보는 이 나이든 내가 더 괴로울 정도로 내 마음도 아프다. 우리 어른들이 뭘 잘못했고 뭘 잘못 가르쳤나?
내 인생에 뭘 잘못했기에 내 자식들에게조차 할 바를 다 못한 인간이 되었는지 속 쓰리고 아리기로 말한다면 젊은 내 자식보다 더하다.
자신이 흙수저라는 자각인지 비하를 하며 자살한 어떤 젊은이는 그 부모들을 두 번 죽이는 거 아닐까? 누가 이리도 부모가 살아계시는데도 막가듯 생각하고 행동하게 했을까? 사는 건 어차피 공평할 수 없다는 건 살아보면 깨달을 건데, 자신의 태생이 흙수저라서 자살했다면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여기서 자살이라는 행위도 나쁘지만, 그보다 내 귀한 자식이 자신을 흙수저라고 생각했다는 게 더 마음이 아프다. 남들은 다 내 자식이 흙수저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겐 세상 무엇보다도 더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내 자식이 모른다는 사실이 아비인 내가 더 억울하다. 왜 이 부모마음을 몰라주나? 부모치고 자식에게 흙수저로 한평생 살기를 바라는 부모는 한분도 계시지 않을 거라. 그런데 젊디젊은 청춘이 그런 부모 마음 몰라주고 또 그런 부모를 두고 어찌 죽을 생각을 할 수가 있나?
살다보면 이꼴저꼴 본다하지만 자식 앞세우는 일만은 안 겪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게 부모마음인데 그런 일도 모른 체한 그 청춘이 애달프다.
자식에게 평당 몇 천만 원 하는 아파트도 남보라는 듯 물려주고 싶겠지만 그리 안 되는 걸 어쩌나? 그리고 자기 자식들에게 기업체와 같은 번듯한 거 하나라도 물려주고 싶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나? 그러나 될 수 없는 일인 걸 어쩌나? 또 부모인 우리들이 살아보니 그런 거 없이도 잘살 수 있었고 사는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는 걸 체험으로 느꼈는데 뭘 그리 아등바등 욕심 부리며 처음부터 다 갖춰놓고 살려고 할까?
살아가는 일이 끝없는 성취도 있지만 유유자적이나 안분지족이라는 말도 있다. 더 크게 생각한다면 행복한 길은 돈으로만 측정이 되지 않는다.
또 하나 더, 내가 흙수저라서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아니다. 오히려 더 행복할 수가 있다. 사업 때문에 미국 출장을 가서도 편히 쉬지를 못하는 사업가들이 많다. 외국에 있어도 자신의 기업체를 걱정해야 하고, 공장을 돌려야 하고, 귀국하자 말자 바로 어음 막는다고 밤낮으로 돈 걱정에, 직원들의 급료를 주기 위해, 돈 벌어야 하는 책임 때문에, 여행에 제약을 느끼는 사업가들! 그 놀기 좋은 미국에 가서도 제대로 한번 놀지도 못하는 사업가들! 혼자서 사업을 꾸려가야 하는, 온갖 책임을 다 맡아 기업체를 운영해야하기 때문에 항상 일 속에서 살아간다.
미국에 가서 바이어 만난다고, 단발 글라이더 비슷한 작은 비행기를 타는데 조금 센 바람에도 마구 흔들리는 속에서 이런 위험 마다하지 않고 바이어를 만나기 위해 떠난다고 한다.
기업하는 분들 가운데 한국에 있을 때에도 좋은 산 한번 못가고, 매일 공장에서 세월 보내고, 어쩌다 인맥을 쌓으려 골프채를 잡지만, 골프 치는 시간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처럼 자주 가게 되는 매물도 옥녀봉은 못 가보는 기업체 사장들이고 재벌회장들이다.
아니라고, 그들은 더 많은 돈으로 화려한 놀이를 즐길 거라고 우리는 상상하지만, 아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리보다 더 힘든 삶을 살 수가 있다. 오히려 주말도 찾을 수 있고, 가족을 매일 볼 수 있는 우리 서민들이 행복할 수도 있다.
그리고 왜 흙수저론에 빠지나? 혹시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게임에 빠져보았나? 또 만화나 의류의 유행에 빠져 보았나? 이 모두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을 현혹시켜서 자신의 이름이나 돈을 벌려는 목적에서 만들어낸 이론이나 유행인 것 아닐까?
어떤 얼치기 사회학자나 언론사의 기자가 자신만의 사고로 지어낸 말에 마치 컴퓨터게임에 열광하듯 우리는 흙수저론에 빠져들었던 건 아닐까? 아니,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들이나 선생님들이 좋은 대학, 좋은 대학 하면서 읊조린 주문에 걸려 스무 살까지 살다보니 깊이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주장하는 자신은 사라지게 된다. 빈부격차가 심한 우리 사회에서 태어난 너희들을 흙수저라고 말하니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
취직이 안 되어도 사회 탓하고, 부모님들이 재산 없고 가난한, 그래서 안 좋은 가정을 물려준 탓하고, 그래서 더 쉽게 남의 말에 빠져들고, 맞나? 그러면 좋은 대학 나오고, 공부하며 쌓아올린 그 지식은 어디로 갔고 그리도 열심히 살아오며 배우고 익힌 감성은 어디로 갔나? 그저 어른들이 시키면 그 말에만 맹종하는 게 습관이 된 허수아비인 자기만 남아있는 건 아닌가, 자신을 다시 한 번 더 돌아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