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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용선을” 아시나요 – 이병생 합천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나는 일요일 시간이 날 때면 딸아이 셋과 함께 절을 다녀오는데 벌써 전국 순천 송광사, 동래 법어사, 영천 은해사, 청도 운문사, 양산 통도사 등등 수많은 절을 둘러 보았다. 목적은 일주일 내내 일에 밀리다가 하루쯤 여행을 하므로서 몸도 가벼워 지고 정신도 맑음으로써 상당히 생기가 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절은 어느 절이나 모두 대동소이하다. 먼저 일주문을 지나면 사천왕문 종무소 대웅전 등 각기 법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데 어느 절이나 그 절 입구에서부터 딸아이들에게 해설을 해준다. 딸아이들도 해인사 종무소에서 근무를 했기에 불교에 대한 이해는 어느정도하고 있다. 나는 해인사와 비교해서 설명도 해주고 그 절의 특이한 점을 찾아서 설명을 해준다. 양산 통도사 극락전을 지나는데 벽에 빈야용선도가 그려져 있는지 않는가 해인사에는 반야용선도가 없다. 중생이 극락정토로 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가야 하는데 그 배가 용이 큰 배로 변해 중생들을 싣고가는 반야 용선이다. 뱃머리에는 용의 머리가 있고 배의 후미에는 용의 꼬리가 그려져 있다. 배의 중간에는 가마같은 형태의 선실이 있고 그 앞뒤로 중생들이 앉아있는 모습이다. 뱃머리 쪽에는 인로왕보살이 배의 후미에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이 서 있다. 배에 탄 중생들을 인로왕보살과 지장보살이 선 채로 앞뒤에서 보호하며 물살을 헤치고 가는 모습이다. 중생들은 작게 인로왕보살과 지장보살은 크게 그려져 있다. 파도가 이는 물살을 헤치며 배를 타고 가는 항해는 위험한 여행이다. 기실 파도를 건넌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다. 그런데 이 벽화를 보면 용이 중생들을 태우고 간다. 용은 물에서 사는 수신아닌가 그 수신이 태우고 가므로 중간에 풍란을 만나 전복될 가능성은 없다. 더군다나 선수와 선미에서 두 보살이 중생들을 보호하면서 가니 더할 나위 없이 마음이 놓이고 안전하다는 느낌이 온다. 극락으로 가기 위해서는 바다가 되었든 강물이 되었든 간에 물을 건너야 하고 물을 건너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만 한다. 이때 가장 안전한 배가 반야용선이다. 여기에 반야가 붙는데 그냥 용선이 아니다. 반야는 지혜다. 지혜의 용선이다. 지혜와 용이 결합된 배가 반야용선이다. 지혜는 결국 무엇이겠는가 분별을 떼는 일이 될 것이다. 생과사, 선과악, 유와무의 분별 아니겠는가 일본의 북해도에 가면 삼도천(三途川)이라는 팻말이 붙은 곳이 있다고 한다. 유황가스가 산의 계곡에서 분출되는 곳이다. 유황냄세는 역겹다. 그 냄새를 맡으며 유황이 계곡에서 분출되는 장면을 보면 섬뜩한 느낌을 준다. 이런장소에 “삼도천(三途川)”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것은 무엇일까 일본인의 저승관이 여기에 집약되어 있다. 이승에서 살다가 저승에 갈때는 냇물을 하나 건너야 하는데 그게 “삼도천”이다. 사찰 입구에 설치된 다리도 이와 관련 있다고 본다.
대개 사찰 입구에는 냇물이나 계곡물이 흐르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다리를 건너야 한다. 다리를 건넌다는 것은 속세의 세계(俗界)에서 성스러운 세계(聖界)로 들어간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여러개의 다리를 건널수록 정화되는 의미도 더 강해진다. 절입구에서 여러개 다리를 건너 올수록 속진(俗塵)을 더 많이 털고 절에 당도하는 것이다.
죽은 영혼도 물을 건너기가 어렵다고 본 것이 고대인들의 사생관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장사를 지낼 때 시체를 넣은 관을 꽃가마에 싣고 간다. 상여꾼들이 꽃가마를 메고 장지로 가다가 중간에 냇물을 만나면 그냥 가지 않고 쉬었다 간다. 죽은 혼이 물을 건너는 것을 힘들어하니까 쉬고 간다는 것이다. 이때 상여꾼들이 저승 가는데 필요한 노잣돈을 꽃가마에 꽂으라고 상주에게 요구한다. 며칠 동안 죽어 있다가 살아난 임사 체험자들 체험에도 물 이야기가 나온다. 물을 건너고 있었는데 뒤쪽에서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뒤쪽을 돌아보며 건너던 냇물을 뒤돌아서 나왔더니 자기가 깨었다는 것이다. 만약 이때 냇물을 건너갔다면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개신교 찬송가에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라는 찬송가가 있다. “요단강을 건넌다는 것은 죽어서 저승에서 만나다”는 뜻이다. 요단강은 말하자면 삼도천이다. 삶과 죽음을 나누는 강이다. 천당에 가려면 일단 요단강을 건너야 한다는 신앙과 불교의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에 간다는 사생관은 그 기본 골격이 같다. 통도사 반야용선은 그 선수에 인로왕보살이 타고 있고 배의 후미에는 지장보살이 타고 있다. 인로왕보살과 지장보살은 모두 사후세계를 안전하게 보살펴주는 보살들이다. 죽은 조상의 혼을 제사 지내주는 명부전(冥府殿)의 책임자가 지장보살이다. 죽은자의 영혼을 극락정토로 인도해주는 보살이 인로왕보살이다. 사후세계를 책임진다는 측면에서 양 보살의 역할은 거의 같다. 길을 인도하는 인로왕보살이 배의 앞에 서는게 맞고 지장보살은 뒤에서 지켜주는 역할이 적합하다. 그뿐만 아니라 푸른 파도를 그려서 바다를 나타내고 있지만 바다 가운데는 연꽃도 있다. 연꽃은 불교에서 특별한 꽃이다. 정토세계를 상징하는 꽃일뿐더러 다시 태어나는 삶, 또한 연꽃으로 그려진다. 연꽃에는 상 중 하 3품이 있다.
이는 정토신앙에서 구분하는 방식이다. 그 사람의 업장에 따라 연꽃의 상품으로 태어나느냐 아니면 중품 하품으로 태어나느냐가 결정된다. 이 반야용선도 바다에 그려진 연꽃은 이걸 이야기한다.
〈반야 용선도〉는 이러한 세부적인 배치까지 모두 법에 맞게 고려했음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