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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역사다 (33) 부자나라라고 영원히 부자로 남을 수 있을까? – 권길홍 수필가

금세기 전반기만 하더라도 세계5대 부국의 하나였던 아르헨티나가 급격한 임금상승과 극심한 인플레이션의 악순환을 이기지 못하고 삼류의 빈국으로 전락해버린 광경은 결코 남의 얘기만은 아니다. 무료급식소에 줄을 서 있는 못가진 자들의 끝없는 행렬, 가진 자들은 외국으로 달아가기 위해 외국대사관 앞에서 줄을 서고, 이것은 노동자의 대통령이라고 할 만큼 민중의 인기에 영합했던 페론정권의 결과였다. 페론주의로 대표되는 아르헨티나 병이란 일명 민중민주주의 병이다. 페론의 정치기반인 노동자와 농민들로 구성된 강력한 노조들은 임금인상과 과잉복지 요구를 위해 정치적 압력을 가해왔다. 국가경영의 실패로 인한 멀어진 민심을 끌어 모으기 위해 그대로 수용한 결과가 인플레이션에 재정적자에 외채는 늘어갔다.
마찬가지로 지금부터 300년 전, 세계를 지배한 나라는 스페인이었다. 광활한 국토와 바다를 제패하고 세계를 지배할 만큼 강력한 위세를 떨쳤다. 중남미 대륙을 스페인의 영토처럼 누비면서 찬란한 개척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그 위세를 100년도 이어가지 못하고 쇠퇴하였다. 피레네 산맥 북쪽의 프랑스 ,독일, 영국 등의 나라들은 새문명을 받아들여 자각하고 있음에 반하여 스페인은 여전히 중세시대의 전제와 귀족주의의 낡은 환상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스페인의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에게는 스페인의 근대사야 말로 무능하고 무책임한 엘리트 군중의 방탕한 시대로 인식되었다. 부패와 무질서, 물질문명의 방탕과 정신문명의 타락으로 이어진 스페인의 말로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새 세기가 열리면 새로운 윤리관과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외쳤다. 그러나 그 기대는 배신당했고 격렬한 시민전쟁 속에서 혼란만 겪게 되었을 뿐이었다.
스페인은 16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근 4세기 동안 세계를 지배한 대국이다. 중남미 전체가 스페인의 영토였고 인도, 필리핀에 이르는 동남아시아 전역이 스페인의 영향권에 들어갔을 만큼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로 군림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스페인은 그 눈부신 역사를 이어 가지 못하고 19세기에 들어오면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수세기 동안 세계를 지배한 나라였지만 그 힘은 결코 생산과 기술을 바탕으로 한 경제의 힘이 아니었다. 해적들에 의한 침략과 약탈의 노획물로 호화스러운 삶은 유지해왔다. 그 때문에 스페인 군중들은 방탕과 방종의 역사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오르테가는 그 당시의 모든 대중으로부터 배신당한 것을 깨닫고 조국을 등진 채, 방황의 세월을 보냈다. 그는 대중들의 극단적 이기주의와 방탕으로 흘러가는 대중을 본위로 하는 민주주의에 큰 기대를 못한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민주주의야말로 만능일 수 없는 한낱 수단과 제도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나라를 만드는 게 아니라 나라를 받쳐주는 대중들의 인식이 나라를 일으켜 세운다. 물론 이 지구에 민주주의만큼 훌륭한 제도는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자라나는 문명의 터전에 따라서 민주주의의 선악이 판가름 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만 이뤄지면 지상 천국이 열릴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는 정치인들의 공약에 휩쓸려 관념의 노예로 전락한 대중의 반지성적 모습, 요즘의 퍼주기 좋아하고 받아먹는 데 익숙한 우리나라처럼, 오르테가는 엘리트의 탐욕과 무책임성 그리고 대중의 무모함과 타락으로 가득 찬 상황이야말로 척추없는 사회, 주인 없는 나라라고 외쳤다.
지구 안의 나라들이 뜨고 지는 것을 돌아보면서 한 민족과 국가가 어떠한 이상과 철학을 갖고 역사 앞에 서야 할 것인가를 새삼 배우게 된다, 영원한 부국은 없다. 맹목적인 이데올로기도 영원히 존속할 수 없다. 더 나은 단계로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선 기본적인 가치관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어떤 목표와 어떤 추구가 그 가치관 안에 담겨 있는지를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다.(백영훈 박사님의 조국근대화의 언덕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