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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은 못 끓여요 – 문경자 수필가

맛있는 라면을 어떻게 끓일까! 고민을 한 적이 많았다. 내가 끓인 라면은 맛이 없다고 먹지 않았다. 손잡이가 달린 스테인리스 냄비에 눈 짐작으로 물을 대충 붓고 가스레인지를 켰다. 열라면 두 개를 분질러 놓고 스프도 뜯어서 준비를 끝냈다. 물이 펄펄 끓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아무래도 물이 줄어 든 것처럼 보였다. 국자로 수도물을 받아 붓고 다시 물을 끓였다. 얼른 순서대로 라면과 스프를 넣고 뚜껑을 닫았다. 익는 냄새가 좋아 군침이 돌았다. 몇 분? 3분이 얼마나 지나야 되는지 모른다. 파란 대파 잎을 넣었다. 계란은 내가 싫어해서 넣지 않았다. 내가 봐도 대성공이었다. 파도 그림이 있는 그릇에 나누어 담았다. 공휴일이라 컴퓨터를 하고 있는 큰 아들에게 방문을 열고 라면을 먹자고 했다. 대뜸 하는 말 “어머니 잘 끓였어요.”? 하고 못 믿겠다는 얼굴로 식탁에 앉았다. “얼른 먹어. 붇기 전에 먹어야 맛있다.” 아들은 대답 대신 한 젓가락 먹더니 “어머니 혼자 다 드세요.”하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오늘도 실패작이었다. 라면을 어떻게 끓여야 맛이 있을까! 그래 다 먹자. 일자로 쭉 뻗은 라면을 먹다 보니 온 몸에 열이 펄펄 났다. 그 후로 내가 끓인 라면은 사절이었다.
억지로 먹다 보니 배가 빵빵하게 불렀다. 오늘처럼 배 터지게 라면을 먹어 본적이 없다. 라면이 귀하던 때 부스러기 하나 먹는 것도 행운이었다. 지금은 우리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식품으로 자리잡았다. 사람들은 라면 맛에 길 드려져 있었다. 출출할 때 생각나는 간단요리는 라면이 최고다. 라면에 떡국 넣고, 만두 넣고, 라면 국물에 밥 말아먹고, 부대찌개 라면 사리 넣고, 떡볶이에 붉은 옷 입고 라면은 팔방미인이다. 라면을 끓여 먹는 맛은 일품이다.
결혼 전 직장을 다니며 자취를 하던 친구가 있었다. 이웃에 살고 있는 친구 집에 가서 밤이면 수다를 떨다 보면 배가 고팠다. 이럴 때 제일 생각나는 것은 라면이었다. 특식으로 친구가 라면을 끓여 준다고 했다. 나는 언제 라면을 끓여 오나 하고 콧노래를 불렀다. 드디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노란 냄비를 내 앞에 내려놓았다. 둘이 머리를 맞대고 나무 젓가락으로 후후 불며 먹었던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곱슬곱슬한 면발이 입안에 감기며 정말 맛있었다. 마지막 남은 국물과 몇 가닥의 라면은 누가 먹을까 하는 기싸움을 하며, 속으로 나는 먹을 욕심을 내고 있었다. 친구는 내 눈치를 보더니 양보를 한다며 다 먹으라고 하였다. 곱슬머리 친구는 결혼을 하고 그 후로 만날 수가 없었다.
서울에서 시골로 시집을 오니 모든 것이 낯설었다. 열명의 대가족 끼니를 준비하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5일장이 서는 날이면 새벽 닭이 울 때 일어나 장에 가시는 아버님의 밥상을 차렸다. 어머니는 생필품을 사오라며 여러 가지 주문을 하였다. 그 중에서 라면 한 박스를 사오라고 강조를 했다. 술을 좋아하는 아버님은 가끔 주문한 것을 잊고 오실 때가 있었다. 오랜만에 라면 먹을 생각에 침이 고였다.
해 질 녘에 장에서 돌아오신 아버님은 빠짐없이 다 사가지고 오셨다. 가족들은 모두 라면 박스에 눈독을 드렸다. 어머님의 감시가 심해서 아무나 끓여 먹을 수가 없었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니 논밭에 나가 일을 할 수가 없다. 가족들이 집안에서 쉬고 있는 날이다. 점심은 라면을 삶아 먹기로 하였다. 대가족의 라면을 끓이는 일은 참 어려웠다. 라면 한 두개정도는 끓였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어머니의 요리솜씨가 좋아 라면을 끓이자 신경이 쓰였다. 벽시계는 재깍재깍 오늘따라 크게 들렸다. 드디어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 양은 솥에 물을 알맞게 부었다. 무쇠 솥 보다는 양은 솥에 끓이는 라면이 더 맛이 있을 거라는 가족들의 말에 따랐다. 어머니의 칭찬은 고사하고 맛있게 끓여야 하는 것이 문제였다. 라면 10개와 스프까지 넣을 물이 끓고 있는데 장작불을 떼어 끓인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수제비나 칼국수는 자신이 있는데 라면은 신경을 써야 했다. 제발 맛있는 라면이 되게 해 달라고 마음 속으로 빌었다. 드디어 4등분하여 먼저 넣고, 스프까지 다 들어갔다. 면발이 퍼지거나 국물이 모자라거나, 싱거우면 완전 실패다. 많은 것을 한번에 끓이다니 기가 찾다. 모두 라면 냄새를 맡으며 맛있게 먹을 생각에 웃음 뛴 얼굴들. 반면에 나는 독한 연기에 눈물까지 나왔다. 급한 마음에 얼른 그릇에 라면을 차례대로 퍼서 샛문으로 드려 보냈다. 그런데 국물이 줄어 들고 라면 밥이 되었다. 마지막에는 아예 면발도 없고 솥 밑바닥에 눌어붙었다. 가족들이 라면을 먹으면서 아무 말이 없었다. 젓가락질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말은 안 해도 ‘속으로 우째 이래 라면도 하나 못 끓이노’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그 마저도 먹지 못하고 찬밥 한 덩이 물에 말아 배추 김치를 길게 찢어서 먹었다. 라면은 절대로 많이 삶는 것은 아니다. 다음에는 각자 석유곤로에 삶아 먹자는 어머님의 말씀에 모두 웃음꽃이 훨훨 피어났다. 라면은 각자 입맛에 맞추어 끓여 먹었다. 지금도 라면을 먹으면 그때 일이 떠올라 입가에 잔잔한 웃음이 번진다.
친정 식구들은 내가 끓인 라면을 맛있다며 경자는 시집을 가도 라면 하나는 잘 끓여 주겠다며 아버지는 맛있게 드셨다. 연탄불에 끓이니 시간을 제대로 맞추어서 곱슬곱슬 하게 잘 끓였나 보다. 글을 쓰다 보니 라면 드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라면을 끓이다 보면 어느 때는 잘 되고, 어떤 때는 형편없는 맛이었다. 매일 하는 밥도 질거나 된밥이 되기도 한다. 주부들은 평생 밥을 한다. 기분에 따라 신경을 써지 않고 대충 할 때가 있다. 나는 아무리 정성을 다해 라면을 끓여도 맛이 나지 않았다.
언제 라면을 맛있게 끓일까 혼자 고민하며 열라면을 먹는다. 아들은 내가 먹고 있는 것을 보더니 맛없게 보이네요 했다. 다음에는 제가 맛있게 끓여 드릴 테니 말씀만 해주세요 하고 자기방으로 들어갔다. 또 실패작이었다. 라면은 정말 못 끓여요. 그래도 또 끓여 야지 아니 삶아 먹자 하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