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3) – 변명규
바람과 깃발
바람이 심하게 부는 밤이었습니다. 소년은 친구와 함께 둑길을 걸어가며 나뭇잎이 바람에 심하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별똥별이 긴 사선을 그으며 떨어질 즈음 친구가 물었습니다. “너 바람을 본 적 있어?” “지금 바람이 불고 있잖아.” 이상한 걸 묻는다는 표정으로 소년은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친구는 걸음을 멈추고 더욱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소년을 보았습니다. “저건 나뭇잎이 흔들리는 모양이지, 바람이 보이는 게 아냐.” “바람이 부니까 나뭇잎이 흔들리는 거잖아.” “그래도 바람은 보이지 않아. 이 세상 누구도 바람을 본 사람은 없어.” 친구는 어른스러운 어조로 의젓하게 말했습니다.
친구의 말을 듣고 소년은 바람이 아니라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형상을 묵묵히 지켜보았습니다. 친구의 말처럼 바람의 형상은 보이지 않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형상만 보였습니다. 그 순간, 깊고 깊은 의구심 한 가지가 소년을 사로잡았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 눈에 보이는 것이 움직이는 이치는 무엇일까.
세월이 흘러 소년은 어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바람에 대해 지녔던 근원적인 궁금증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움직이게 만드는 근원 이치를 깨치지 못하는 한 인생의 무지가 스러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에게 묻고 또 물었습니다. 하지만 대답은 얻지 못하고 바람과 같은 것이 또 한 가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도 또한 바람처럼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의구심은 더욱 커지고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무엇이 바람을 움직이게 하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가.
어느 바람 부는 밤, 그는 길을 가다가 어린 시절 자신이 겪은 일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백발노인 둘이 공원 벤치에 앉아 깃발이 펄럭이는 모양새를 보며 선문답을 하듯 띄엄띄엄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저건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닐세.” “그럼 움직이는 것의 실상은 무엇인가?” “실상은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지. 깃발이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깃발을 따라 마음이 움직이고, 바람이 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바람을 따라 마음이 움직이는 것일세.”
“그럼 마음은 왜 움직이는 것인가?” “그것이 살아 있다는 증거일세. 살아 있으니 마음이 움직이고 마음이 움직이니 몸이 움직이는 것 아닌가. 바람도 마음과 같아 살아 있는 모든 것을 흔들리게 만드네. 때로는 태풍과 폭풍이 휘몰아칠 때도 있지만 마음과 바람이 없는 인간과 세상을 상상해 보게. 생명의 진동을 무슨 수로 느낄 수 있겠나?”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때 어린 시절처럼 별똥별 하나가 긴 사선을 그으며 그를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6조 혜능
혜능은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함께 가난하게 자랐으며 산에서 나무를 해다 팔아 생계를 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스님이 금강경을 읽는 소리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멎어 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곧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에게 출가의 뜻을 밝히고 황매산에 있는 홍인 대사 밑으로 들어갔다. 그때 그의 나이 34세였다. 홍인 대사는 자신을 찾아온 나이든 행자를 보는 순간 큰 그릇임을 알았으나 제자로 삼지 않고 벼를 찧는 일을 맡겼다. 일자무식이었지만 그는 이미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 있었다. 5조인 홍인 대사<1조 달마, 2조 혜가, 3조 승찬(僧瓚), 4조 도신(道信), 5조 홍인(弘忍), 6조 혜능(慧能)>가 그를 몰래 불러 가사와 바루를 물려주고 멀리 남쪽으로 피신시켰다. 오래도록 수행한 제자들의 시기를 걱정하였던 것이다.
혜능이 법성사에 이르렀을 때 인종 법사가 열반경을 강의하고 있었다. 마침 갑자기 바람이 불어 깃발이 펄럭였다. 이것을 보고 대중들 가운데 한 사람은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라 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라 했다. 입씨름은 끝을 보지 못하고 결국 인종 법사에게 가서 해답을 구하려 했으나 인종 법사 또한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이때 혜능이 말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인종 법사는 그 자리에서 혜능의 제자가 되기를 청했다. 이후 혜능은 조계산을 중심으로 선종의 종풍(宗風)을 크게 일으켰다.
혜능 대사는 인간은 부처님의 생명에 의해 살고 있는 것이므로 자기의 것이란 하나도 있을 수가 없다. 보리(깨달음)라든지 마음(明鏡)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자기의 것이 아니다. 망집도 또한 자기의 것이 아니다, 모두가 임시로 나타난 모습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한 것들에 집착하지 않고 부처님이 삶을 주신 그대로 너그럽고 솔직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앞의 게송을 통해 전하고 있다. 망집과 깨달음을 초월한 커다란 세계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이글은 자칫 종교에 대한 편애로 오인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을 떠나서 ‘마음’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례이기에 소개한 것뿐이라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