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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5) – 변명규

이성계와 무학대사
태조는 왕이 된 이후에도 힘들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으면 무학대사를 찾아가곤 했다. 어느 날 태조가 오랜만에 무학대사를 찾아가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대사에게 농담을 던졌다. “스님은 꼭 돼지같이 생겼습니다.” 무학 대사는 웃으면서 말했다. “대왕께서는 부처님처럼 생겼습니다.” 이성계는 자신이 아무리 한 나라의 왕이지만 스님께 지나친 농담을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으로 말했다.
“저는 스님을 돼지에 비유했는데, 어찌 스님께서는 제게 부처님처럼 생겼다고 칭찬하십니까?” 무학대사는 얼굴에 미소 지으며 말했다.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는 법입니다.”
이 또한 불교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와 상통하는 이야기다. 내 마음이 불안하면 모든 것이 불안해 보이고 내 마음이 평안하면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이 평안해 보이는 것이다.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줄
소년 시킴이 어머니와 함께 시리아를 여행하고 있었다. 어느 강가에 도착했을 때였다. 목동 하나가 수백 마리의 양떼를 몰고 나타났다. 아마도 강을 건너려는 것 같았다. 물을 싫어하는 양떼를 몰고 강을 건넌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시킴이 이를 이상히 여겨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저 목동은 많은 양떼를 몰고 강을 건너려는 거죠?”
“글쎄다. 하지만 얘야, 저 목동의 얼굴은 너무나도 태평하지 않니?” 시킴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고는 호기심을 참다못해 목동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니, 이 많은 양떼를 몰고 어떻게 강을 건너려고 합니까?” 그러자 목동이 호탕하게 웃어 젖혔다.
“하하하! 그야 세상의 이치만 알면 간단한 일이지.” 시킴은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강가에선 양떼들이 “매애, 매애”하며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강물을 본 새끼 양들 역시 놀란 눈으로 어미 옆에 바싹 붙어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목동은 겁먹은 눈으로 서 있는 양떼들 가운데서 귀여운 새끼 양 한 마리를 번쩍 들어 올리더니 자신의 어깨에 둘러매는 것이었다.
“아니, 대체 어쩌려고?” “곧 알게 될 테니 두고 보자꾸나.”어머니는 그제야 목동이 양떼를 거느리고 강물을 건너는 방법을 알았다는 듯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새끼 양을 둘러맨 목동은 성큼성큼 강 한가운데를 향해 걸어 들어갔다. 강폭은 넓었지만 물은 그다지 깊지 않았다. 순간 새끼를 빼앗긴 어미 양이 몇 번인가 “매애, 매애” 울더니 강물 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신호가 되어 수백 마리의 양들이 일제히 물속으로 뛰어들어 강물을 건너는 것이었다.
그 목동은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튼튼한 줄이 무엇인가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선물에서 인용)
자식에 대한 사랑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동물에게 더 강한 새끼사랑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동물의 이러한 사랑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요즈음은 오히려 우리 인간이 부모와 자식 간에 맺어진 사랑이 많이 퇴색되고 있어 안타깝기 짝이 없다.

마음이 없으면
대학(大學)에 인간의 약점을 경계하는 맹점이 있다.
마음이 없으면(心不在焉)
보아도 보이지 않고(視而不見)
들어도 들리지 않고(聽而不問)
먹어도 맛을 모른다(食而不知其味)
‘열자(列子)’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제나라 사람 가운데 돈에 눈이 어두운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이른 아침에 평상시와 같이 옷을 잘 차려입고 시장 안으로 들어가더니 금은을 파는 상점에 들어가서 금붙이를 훔쳐서 뺑소니쳤다. 그러나 포졸이 알고 쫓아가 잡았다. 포졸이 물었다. “너는 어째서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물건을 훔칠 생각을 했느냐?” “제가 금붙이를 훔칠 때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금붙이만 눈에 보였습니다.”
빵을 훔친 노인에게 왜 훔쳤느냐고 물으니 “사흘을 굶고 나니 눈에 보이는 것은 먹는 것 뿐이었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마음이 딴 곳에 가 있는 사람에게는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의미가 없다. 마음이 빠지면 우리의 오관은 하나의 기계에 불과하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잘못을 태연히 저지르는 일이 우리 주변에서 자주 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