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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역사다 (37) 한 사회나 나라의 구성원 모두를 변화시키려면 – 권길홍 수필가

(좋아졌네, 좋아졌네라는 노래)

50여 년 전 양정 공무원 교육원에서 직무교육을 받을 때였다.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와 “좋아졌네, 좋아졌어”라는 노래나 새벽의 집합시간에 “새벽종이 울렸네”로 시작하는 새마을 노래를 수업하기 직전에 박수까지 치면서 열심히 부른다. 교육원생 중에 악장을 임명하여 이 감투(?)를 쓴 교육생의 지휘에 따라, 군대식으로 기상 후 새벽의 점호시간이나 학과교육을 시작하기 전, 수업을 마치고 쉬는 시간이나 시작할 때에 부르고,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후교육을 시작하기 전에 이런 노래를 불렀다.
성인인 공무원들이 직무교육을 받으며 이런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라는 유치한 노래를 불렀다. 학과시간의 중간에도 좋아졌네, 좋아졌네 라고 부르면서 우리의 사고를 변화시키려고 했다.
이 어린애장난 같은 일을 아무리 말단 공무원이지만 그래도 나이가 이십대 후반은 지난 성인들에게 거의 강제로 부르도록 했다. 이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고를 바꾸기 위한 정부의 집요함은 곳곳에서 보이지만 사고를 변화시킨다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근무했던 동사무소에서 겪었던 일이다. 새마을 운동을 한다면서 동네의 뒷골목 냄새나는 도랑을 치우기 위해 마을 주민을 동원시켜서 불러 모았다.
그런데 세월이 지난 요즘은 모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새마을 운동이라는 거창한 이념을 따라 즐겨즐겨 그런 일을 했을 것 같지만 그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불평하고 좋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사실을 말단 5급을류 공무원이었던 나는 보았다.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상부관청에 대해 불평하고 욕하고, 주민은 주민들대로 공무원에게 툴툴 거렸다.
그 때 흔히 듣던 말로 말단 공무원만 서글프고 조조군사인 서민만 힘들어 나자빠진다면서!
한두 사람의 사고를 바꾸기도 어려운데 온 나라 전체 국민의 사고를 바꾼다는 건 무척 힘들어서 이처럼 많은 불평을 불렀고 약간의 무리는 있었다.
이런 일을 기획했던 위정자들의 생각에는 국민들의 사고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경제를 발전시키려고 노력해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았다.
당시의 이 유치한 노래를 강제로 부르게 하고 노래라도 불러서 사고를 개조해야 할 만큼 4,50년 전의 우리나라는 매사에 부정적이고 열심히 해도 안 된다는 사고에 젖어 있었다.
우린 너무 쉽게 생각한다. 박정희는 독재자였고 만능이라 모든 일을 쉽게쉽게 달성했으리라 생각하지만 이처럼 매사에 불평하고 반대하고 또 무관심으로 받아들였던 국민들도 무척 많았다. 이런 부정적 사고를 가진 국민들을 이끌고 나간 박정희가 나쁜 사람일까?
개성이 중시되고 개인의 사고가 우선인 요즘에는 이해가 안 되겠지만 50여 년 전의 그 당시에는 경제개발보다 더 우선적으로 생각되었고, 물질적으로 풍족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우리 사회가 함께 변해야 하고, 하면 된다는 각오를 다지는 일이었다. 그래야만 우리들도 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는 일이었다.
경제학자들이나 박정희를 연구하는 많은 분들이 박정희에 대해 말을 할 때 수출의 증가니 국민소득에 대한 수치를 드러내길 좋아하지만 정말 박정희에 대한 업적은 이런 경제발전의 작은 숫자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사고를 바꾸려 한 그 집념이 더 훌륭한 거 아닐까? 우리 국민 모두의 정신자세를 개조하려 한!
하긴 2003년 퇴임한 말레이지아의 마하티르 수상이 이십삼 년을 넘게 집권하면서 말레이지아 국민들의 사고를 바꾸게 하여 나라를 잘 살 수 있도록 하겠다고 자신했지만, 말레이시아 국민들의 사고를 바꾸는 일에 실패했고 잘 살게 하는 일에도 실패를 했다. 그러면서 눈물을 흘리며 퇴임했다. 왜 작은 나라이고 자원도 없고 분단국이라 국방비가 엄청나게 지출이 되는 한국이라는 나라는 잘 살겠다는 각오로 똘똘 뭉쳐서 이룩한 일들이 자원부국인 말레이지아에서는 안 되는가 하고 탄식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그만큼 사고를 바꾼다는 일은 어려운 일이라 이런 노래를 강제로 부르게 하는 식의 유치한 작전을 써서라도 사고 변화를 이루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우리 공무원들에게 강압적이면서 무의식적으로 주입시킨 것 같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열심히 하면 잘 살 수 있고, 다른 사람만큼의 수준으로 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는 게 너무 정상적인 시대다. 물론 오늘날의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걸 보고 절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당시의 우리사회에 팽배한 무기력하고 부정적인 사고는 너무 심했고 어찌 보면 체념하며 받아드린 역사의 유산이었다.
그래서 잘 산다는 일에 아예 자신을 가지지 못한 시대였고 사회였는지도 모른다.
조선조의 역사를 통 털어 보아도 세종대왕 같은 성군 외에는 우리나라의 서민들이 배불리 밥을 먹어보겠다고 밭을 개간하고 소출을 늘려서 노력해봐야 잘 먹고 잘 살았던 때가 있었나? 그리 애써서 일해도 아전과 고을의 벼슬아치들, 그리고 양반이니 사대부라 하는 지배계급의 치부수단으로 뜯기고야 마는(예를 들어 전정, 군정, 환곡이라는 삼정의 문란에 족징 ,황구첨정, 백골징포 등으로 수탈 당하고 오죽하면 군포를 징수당하기 싫어 자신의 성기까지 잘랐다는 얘기를 정약용 선생께서 애절양이라는 글로 남겼을까?), 그래서 노력하면 할수록 자신만 고달파지는 그런 삶을 사는데 누가 그 탐욕스런 위정자들을 믿고 따르겠나?
말 그대로 정부가 하는 말이라면 반대로 들어야 지혜롭다고 여겨지는 시대였다. 이런 부정적 사고를 가진 대다수의 국민을 이끌고 정통성 없는 정부니 독재자라는 욕을 바가지로 듣고 있던 박정희정부는 우리 역사상 어느 통치자도 시행하지 않았던 잘 먹고 잘 살아 보자는 경제개발정책을 시행하려 했으니 얼마나 어려웠을까?
미국과 야합을 했다고 비난을 받았고, 항상 부정을 저질렀다고 욕을 먹고 있었으니, 욕먹지 않으려면 국민들이 생각하는 대로 적당히 자신의 독재자라는 자리만 유지하거나, 그 당시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도 비아냥거렸던 미국의 눈치나 보며 구호물자나 양곡을 조금 얻어 와서 갈라 먹이든지, 어쩌면 미국도 이런 정치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요즘 흔히 정치지도자부터 말단 공무원까지도 들먹이는 가장 손쉬운 복지정책이나 집행했으면 오히려 욕을 덜 먹었으리라 여겨질 만큼 그 당시의 경제개발은 이 강철의 독재자에게도 어려웠고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가장 정부에 가까운 공무원에게 박수치며 노래 부르는 유치한 일을 시켜서라도 우리 국민의 사고를 바꾸고 경제를 성장시키려 했다. 그 경제부흥을 위해서 그 정책을 고집스레 집행한 박정희대통령은 참으로 어리석었다.
이런 역사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나? 아니다! 나는 잘 살아보자고 노래 부르는 유치한 일을 했더라도 그 역사의 현장에 있었고
이런 유치한 역사 속에 내가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자랑스럽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