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오피니언)칼럼

가사문학의 정취와 죽향이 서린 담양으로 향하다 (3-1)

이성동
논설위원

아름다운 한국의 전통정원 소쇄원에서
일행이 역사와 사상의 고장 장성의 필암서원과 고산서원을 뒤로하고 40여분 걸려 우리나라 전통정원의 고장 담양의 소쇄원에 도착한 시각은 이날 오후 2시 20분, 소쇄원 입구의 대형 주차장은 차량과 사람의 물결이 쇄도하고 있었다.
담양은 16세기 사화(士禍)와 당쟁(黨爭)의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절의(節義)를 고수하거나 정쟁(政爭)에 연루돼 유배됐다가 귀향하고 낙향한 사림(士林)들이 모여 사림문화층을 형성하고 호남유학(湖南儒學)을 중흥시킨 선비의 고장이다.
또한 이곳은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중심을 이뤘던 곳으로, 무등산 자락 성산 주변의 면앙정, 서하당, 식영정, 소쇄원, 환벽당, 송강정 등 찬연했던 호남시단(湖南詩壇)의 공간이자 자연과 하나가 되는 곳으로 한국문학사에 있어 불후(不朽)의 명류(名流) 문사들을 배출한 산실이요, 요람이었던 것이다.
그 중에 소쇄원은 자연과 사람 사는 공간을 조화시킨 조선중기의 대표적인 원림(苑林)으로 보길도 세연정, 영양의 서석지와 함께 가장 아름다운 한국의 3대 전통정원으로 손꼽는다.
소쇄원은 사헌부 대사헌으로 있던 점은 선비 양산보(梁山甫)가 기묘사화가 일어나 스승인 조광조가 사사(賜死)되자, 모든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인 이곳으로 내려와 소쇄원을 짓고,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 은둔한 곳이다. 은둔은 숲의 청결 속에 들어가 가면(假面)과 위선(僞善)을 벗는 생활이다. 소쇄원은 티없이 살며 때묻었던 마음을 씻어내기 참으로 좋은 곳이다. 현대인들이 찌든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이곳에 오면 마음이 절로 정화되고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를 수 있는 곳이다. 새마을 사업이 전개되던 60년대 이후 도시는 물론, 농촌마을 안마당까지도 코발트색 콘크리트 도시문명이 깔렸지만, 여기에서는 흙길과 흙마당, 대나무숲이 정겨운 조선시대 그대로의 아늑하고 한가한 시골정취를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도에 이엉을 얹은 대봉대(待鳳臺)도 그 정취를 더해주고 있다. 대봉대(待鳳臺)는 봉황이 내려앉는 곳이라는 뜻으로 소쇄원을 오르는 길가의 첫 번째 만나는 초가정자(草家亭子)로 계곡물이 흘러내리는 길가 한쪽에서 귀한 손님을 기다리는 정겨움과, 손님들이 잠시 앉아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던 곳이다.
양산보는 여기서 비록 문장 한줄 남기지 않았지만, 이 소쇄원에 들려 시문을 남긴 사람은 부지기수였으니 송순 ‘임억령 ’, ‘김인후’, ‘유희춘’, ‘기대승’, ‘고경명’, ‘김성원’, ‘정철’ 등 모두 시문에 걸출한 인물들이다. 그렇지만 양산보는 여기서 소쇄원과 대봉대를 짓고 죽림(竹林) 속을 소요(逍遙)하며, 자신이 이루지 못한 이상의 실현을 세월 속에 묻고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며 자신을 수기(修己)했을 것이다.
이곳에서 계곡 건너편에 제월당과 광풍각이 보인다. 외나무다리 건너편 광풍각(光風閣)은 손님을 맞는 사랑방이고, 제월당은 양산보가 거처하며 독서하던 곳이다.
일행이 관광객들의 대열에서 빠져나와 제월당 마루에 올라 앉아 잠시 휴식하는 시간을 가졌다. 제월당(霽月堂)의 제월(霽月)은 ‘비 갠 뒤 하늘의 상쾌한 달’을 의미하며 제월당 주변에는 회화나무와 산수유, 그 옆에는 편백나무와 석류가 자라고 있어 아름다운 풍광을 담아내고 있다.
돌아 나오는 소쇄원 길 시원하게 쭉쭉 뻗은 대나무 숲 연도를 걸으며 문득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가 뇌리에 떠오른다.
~상략, ~중략
나무도 아닌 것이 줄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시기며 속은 어이 비연는다
저러고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