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마음(6) – 변명규
여유로운 마음
사안이 동진의 재상으로 있을 때 북쪽에 있는 전진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전진의 병력은 백만 대군, 거기에 비해 동진의 병력은 불과 몇만 명으로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물론 동진은 위기에 대비하여 군사들을 정예화 시키기는 하였지만 외면적으로는 눈곱만큼도 승산이 없었다. 강성한 전진의 침입이 알려지자 왕을 비롯하여 신하들과 국민들까지 모두 다 두려움에 떨었다.
그런데 재상 사안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하였다. 장군들을 소집하여 적을 맞아 싸울 각종 준비와 지시를 마치고 난 그는 한가롭게 집으로 친구를 불러 술을 마신 다음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사실 그의 마음도 어지러웠다. 몇만의 정예병이라 할지라도 전진의 군사는 하늘이라도 허물 것만 같은 백만 대군이 아닌가? 그렇지만 지도자가 흔들리면 모두가 흔들린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애써 여유를 보이면서 결과를 기다린 것이었다.
그런데 이 전투에서 의외로 동진의 정예군은 백만 대군의 적을 깨뜨리는 대 전과를 올렸다. 승전보는 제일 먼저 파발을 통해 사안에게 전해졌다. 사안은 이때도 바둑을 두고 있었는데 급히 뛰어 들어온 전령이 보고서를 내밀자 곁눈으로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바둑판으로 눈을 돌렸다. 손님이 물었다. “대감, 대체 무슨 소식입니까?” 그러자 사안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별일 아니야, 우리 군사들이 적군을 쫓아냈다는구려. 신경 쓰지 말고 바둑이나 두세.” 이 말을 전해들은 동진의 백성들은 사안의 여유에 혀를 찼다고 한다.
하지만 전쟁이 터진 마당에 재상으로서 자기 집에서 술을 마시고 바둑이나 두고 있어서는 될 일인가? 요즈음 같으면 당연히 파직되고 말았을 것이다.
국경일이나 나라의 행사가 있는 날 골프를 쳤다가 호되게 질책을 맞아 스스로 막중한 직책을 물러나고 만 경우가 있지 않는가?
당시의 상황이나 평상시 그 사람이 일해 온 업적과 태도에 따라 그 해석도 달라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흔들림을 보이지 않기 위해 여유를 보인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그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는 평상시 전쟁에 대비하여 정예부대를 훈련시켜 놓았고, 국정을 열심히 살펴왔기 때문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가장 큰 작용을 한 것은 전쟁의 승리였을 것이다. 아무리 준비를 열심히 했다고 치더라도 전쟁에서 졌더라면 숫자의 열세를 따지기 전에 비난의 소리가 난무하지 않았을까?
여유로운 마음도 사람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진다. 평상시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도 다른 사람의 마음도 흔들림이 없다.
인생은 정답이 없다
“왜 사느냐?”고 “어떻게 살아가느냐?”고 굳이 묻지 마시게. 사람 사는 일에 무슨 법칙이 있고 삶에 무슨 공식이라도 있다던가? 그냥, 세상이 좋으니 순응하며 사는 것이지. 보이시는가 저기 푸른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한 조각 흰 구름, 그저 바람 부는 대로 흘러가지만 그 얼마나 여유롭고 아름다운가. 진정 여유 있는 삶이란 나 가진 만큼으로 만족하고, 남의 것 탐내지도 보지도 아니하고, 누구 하나 마음 아프게 아니하고, 누구 눈에 슬픈 눈물 흐르게 하지 아니하며, 오직 사랑하는 마음 하나 가슴에 담고 물 흐르듯 구름 가듯 그냥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라네.
“남들은 저리 사는데”하고 부러워하지 마시게. 깊이 알고 보면, 그 사람은 그 사람 나름대로 삶의 고통이 있고 근심 걱정 있는 법이라네. 옥에도 티가 있듯 이 세상엔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살아가며 검은돈은 탐하지 마시게. 먹어서는 아니 되는 그놈의 ‘돈’받아 먹고 쇠고랑 차는 꼴 한두 사람 보았는가?
받을 때는 좋지만 알고 보니 가시방석이요, 뜨거운 불구덩이 속이요, 그곳을 박차고 벗어나지 못하는 선량들. 오히려 측은하고 가련하지 않던가. 그저 비우고 고요히 살아 가시게. 캄캄한 밤하늘의 별을 헤며 반딧불 벗 삼아 마시는 막걸리 한잔. 소쩍새 울음소리 자장가 삼아 잠이 들어도 마음 편하면 그만이지. 휘황찬란한 불빛 아래 값비산 술과 멋진 풍류에 취해 흥청거리며 기회만 있으면, 더 가지려 눈 부릅뜨고, 그렇게 아웅다웅하고 살면 무얼 하겠나. 가진 것 없는 사람이나 가진 것 많은 사람이나 옷 입고, 잠자고, 깨고, 술 마시고, 하루 세끼 먹는 것도 마찬가지고, 늙고 병들어 북망산 갈 때 빈손 쥐고 가는 것도 똑 같지 않던가.
우리가 100년을 살겠나, 1000년을 살겠나? 한 푼이라도 더 가지려, 발버둥 쳐 가져 본들, 한 치라도 더 높이 오르려 안간힘을 써서 올라 본들, 인생은 일장춘몽. 들여 마신 숨마져도 다 내뱉지도 못하고 눈 감고 가는 길, 마지막 입고 갈 수의에는 주머니도 없는데. 그렇게 모두 버리고 갈 수밖에 없는데……. 이름은 남지 않더라도 가는 길 뒤편에서 손가락질하는 사람이나 없도록 허망한 욕심 모두 버리고. 베풀고, 비우고, 양보하고, 덕을 쌓으며. 그저 고요하게 살다가 조용히 떠나세나. 날마다 좋은 날 되시게나. (책에서 참고한 내용)
참 좋은 말이다.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금과옥조와 같은 말이다. 하지만 인생 전체를 그렇게만 살아간다면 무슨 발전이 있을까. 그러면서 잘못 해석하면 인생을 허무하게 살라는 것으로 비치기도 한다. 욕심을 버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목표가 있고, 바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 취미도 있고, 사람으로서의 할 일도 있다. 사람은 목표를 향해 열심히 노력하는 가운데 그때그때 즐거움과 보람과 행복이 있는 것이다. 빈손으로 간다고 그냥 흘러가는 세월에 인생을 맡겨 두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이란 정답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