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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길목에서 움츠리는 사람들 – 이호석 수필가

나는 이곳 고향에서 공직생활을 하였다. 공직에 있을 때나 퇴직 후에도 항상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재직 시에는 담당업무 수행에 최선을 다하였음은 물론, 강양새마을금고를 만들었으며, 읍 관내 각 마을의 역사를 찾아 정리한 〈마을〉이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또 퇴직 후에는 지역 문화원과 향토사학회에서 활동하면서 〈내암 정인홍 선생〉, 〈합천의 현대 인물〉 등을 출간하였고 〈합천군 연혁과 문화개괄〉, 〈합천군지명사〉, 〈합천읍지〉 등 집필에 앞장서 향토사 기록보존과 지역민들에게 애향심과 자긍심을 고취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결코 나의 자랑을 하기 위함이 아니다. 지역 공무원은 기본적으로 그 고장에 대한 깊은 애향심과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은 것이다.
1970~80년대 내가 공무원 시절에는 항상 공무원은 국가에 대한 무한봉사자라고 닦달하면서 한·수해 대책, 시한영농 현장 등에 공휴일은 물론이고 밤낮없이 불러냈다. 그래도 국가를 위한 무한봉사자라는 작은 소명감으로 모든 공직자는 아무 불평 없이 열심히 일했다.
당시 합천군에는 5급(사무관)이 군청 실 과장 10명 내외였고, 읍·면장은 6급 고참 또는 별정직 공무원 자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사무관이 45여 명에 달하고 서기관도 3~4명이 된다. 그동안 공무원 조직이 크게 확대되었고 직급도 많이 높아졌다. 이러한 변화에 비례하여 우리 군 행정의 질이 높아졌고, 주민들에 대한 서비스가 나아졌을까? 이 물음에 주민들은 그렇게 긍정적인 답변을 하지 않을 것 같다.
지방공무원들의 생태를 보면 9급에서 6급까지는 그런대로 열심히 일하면서 사무관이 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런데 사무관으로 승진만하고 나면 어깨가 높아지고 무사안일 한 근무 자세로 비난받는 사람이 종종 있다.
사무관 이상 공직자는 실과 또는 읍면 행정의 실무 책임자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이들의 무사안일은 바로 우리 군정의 침체 또는 퇴보를 의미한다. 모두가 힘을 모아 창의력과 능력을 발휘하며 밤낮을 뛰어도 어려운 처지인데, 군의 주요 간부들이 퇴직일만 기다리면서 1~3년을 무사안일하게 보낸다면 우리 군에 너무나 큰 피해를 주는 것이다.
또 그러한 분위기에서는 모든 공직자가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업무수행을 하기보다 윗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분위기에 편승하여 무사안일하기가 싶다. 그렇게 되면 우리 군 전체가 생동감을 잃고 침체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유능한 군수라도 혼자의 의욕으로 큰일을 할 수가 없다. 허리 역할을 하는 참모들이 군수의 의욕에 본인들의 창의력을 보태면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움직일 때 어떤 일이라도 이룰 수가 있는 것이다.
최근 군정의 침체 현상 일부가 바로 보이는 것 같다. 주요 도로가나 공원에 잡초가 무성하고, 파손된 공공시설물이 수개월간 방치되고 있으며, 곳곳에 쓰레기가 쌓여 있는 모습 등이다. 주민들의 눈에는 이러한 현상이 시설물을 관리하는 실·과장이나 해당 읍면장이 현장 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5급(사무관) 이상은 지방공무원으로서 최고 목표를 달성한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그 자리에 오른 것에만 만족하면서 마치 할 일을 다 한 사람처럼 무사안일한 자세로 시간만 보내는 사람이 더러 있어 빈축을 사기도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큰 오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100세 시대이다. 퇴직하고도 3, 4십 년을 더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 자리는 끝이 아니라 자기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자, 인생 제2막을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길목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민들은 공무원들이 9~6급일 때의 근무 자세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공무원의 끝자락인 사무관 이상의 간부로 있을 때의 근무 자세를 영원히 기억하고 평가하게 된다. 이때가 그 사람의 본성이나 능력을 확실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인근 고령군의 부러운 얘기를 들었다. 직전 군수는 사무관으로 면장을 하다가 바로 군수에 당선되어 3선까지 하였고, 이번에 군수로 당선된 사람도 고령군에서 국장으로 퇴직하고 2년 만에 치르진 지방선거에서 높은 지지로 군수로 당선되었다고 한다. 우리 군 간부 공무원들의 근무 자세로는 정말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지방선거 때가 되면, 5급 이상 간부 공무원으로 무사안일하게 보낸 사람이 그 관록만 믿고 정치판에 뛰어들려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이 바로 군민의 신망을 얻기는 매우 어렵다.
현재 사무관 등 간부 공무원이나, 앞으로 그렇게 될 사람들은 공무원 임용 당시의 마음을 퇴직하는 그날까지 그대로 간직하면서 항상 군민에 대한 봉사자라는 마음으로 친절과 성실을 다해 주민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받는 그런 사람이 돼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하여 퇴직 후, 연금에만 의존하며 안이하고 나약하게 살 것이 아니라, 지자체의 정치력을 향상시키고, 우리 지역을 더욱 발전적으로 이끌어갈 능력 있고 봉사정신이 투철한 큰 동량(棟樑)이 돼 주기를 갈망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