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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붙어 살아요 – 문경자 수필가

조간 신문을 식탁 위에 펼쳤다. 잉크냄새를 맡으며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어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옛날 아버지가 신문을 읽던 그 모습과도 닮았다. 1면에 이런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활기 되찾은 을지로 골목’소제목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된 그날 밤 서울 중구 을지로 ‘노가리 골목 집’에 술을 마시기 위해 몰려든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빈자리가 없어 술집마다 대기자들이 보일 정도로 밤새도록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다.’라는 내용이었다. 빽빽하게 붙어 앉은 사람들 사진도 크게 실려 있었다. 사진을 보니 기분이 덩달아 좋았다. 아침부터 기쁜 소식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이 없었다. 나는 술을 먹을 줄 몰라 거리가 멀지만 술에 목말라 하던 사람들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다. 문득 스치는 일이 떠올랐다. 코로나가 오기 전 시 포럼 회원들이 선생님을 모시고 을지로 노가리 골목 집에 갔다. 오랜만에 오니 사람들이 너무 많이 붙어 앉아 있었다. 젊은이들이 모여서 술잔을 기울였다. 활기가 넘쳤다.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가 붙어 있는 듯했다. 우리도 노가리를 구워 맥주를 한잔 했다. 먹지도 못하는 술잔을 앞에 놓고 노가리를 마요네즈에 찍어 먹었다. 그때 선생님은 이렇게 확 트인 공간에서, 별을 보고 먹는 맛은 어디에 비할 수가 있겠냐, 시도 술술 잘 나오겠고, 그런 의미로 자아 모두 건배를 하자 서로 부딪히며 하하 웃던 때가 있었다. 우리는 붙어 다니며 봄나들이도 하고 때로는 맛있는 밥도 먹으며 계속 강의를 듣고 있다.
붙어 살려고 하는 코로나로 인해 제대로 숨 한번 쉬지 못하고 살았다. 지금까지 잘 버티어 온 것도 다행이다. 어디를 가든지 밥 한 끼, 술 한 잔 먹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찻집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을 정해 주며 얼른 먹고 나가라고 하였다. 봄꽃이 피어도 좋은 줄 모르겠다. 꽃이 피는 것도 좋지만 어느 곳이나 마음대로 가서 구경할 수가 있을지, 또 친구를 불러 같이 가자고 해도 괜찮을지, 생각하면 머리가 아팠다. 뉴스를 보면 계속 마스크는 써야 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는 피해야 한다고 한다. 사람끼리 붙어 앉아 얼굴을 맞대고 웃어 본 일도 오래되고 보니 웃는 근육도 사라졌다. 어느 때는 마스크를 벗고 거울을 보며 웃어보았다. 낯선 모습이다. 어색하고 스스로 늙어버린 듯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하하 호호 하면서 열심히 근육을 살려 보려고 했다. 하지만 눈가에 주름이 더 크게 살아나 줄을 그었다. 얼굴에 생기는 것은 꽃이 아니고 줄이었다.
서로 알면서도 모르는 척 지나가는 일이 알게 모르게 생겨났다. 힐끔힐끔 눈만 보이는 모습을 보고 인사를 하기에는 겸연쩍었다. 돌아서서 생각을 해도 누구인지 모르겠다. 혼자 중얼거리며 길을 간다.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아 차라리 신경을 쓰지 말고 가자고 하며 시선을 돌렸다. 한번은 내 옆을 지나가는 아줌마가 내 친구 같아 내가 먼저 “어디가?”하며 말을 걸었다. 그녀는 쳐다보기만 하고 그냥 지나갔다. 뒷모습을 보고는 ‘내 친구 아니네’하고 걸어 가는데 시비를 걸어올까 봐 신경이 쓰였다. 양천문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사무국장과 함께 양천구 의회에 볼일이 있어 의장실을 찾아갔다. 구의회 의장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사이라 별 생각없이 들어갔다. 직원에게 연락을 받고 들어온 구의회 의장은 “문경자 회장님이 어디 계시냐?”했다. 사무국장과 나는 모른 척하고 서있었다. 정말 모르는 것 같아 사무국장이 회장님 여기 계세요, 하는 소리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머리 스타일이 변하고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몰랐다며 주먹인사를 하였다. 사무적인 일을 마치고 나와 마스크와 붙어 사니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하고 웃었다.
사람들은 핸드폰에 붙어 산다. 길을 가다가 전봇대에 부딪히고 발을 헛디디는 일도 종종 일어났다. 젊은이들이 앞에서 오면 슬그머니 피해주어야 한다. 잘 못하다가 약간 몸이 닿은 기분이 들면 대들까 무서웠다. 우리가 잘못했다고 먼저 말을 해야 한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마스크와 붙어 살면서 재미있는 일도 겪었다. 어떤 날은 외출을 하기 위해 급하게 나가거나, 쓰레기 분리 수거를 할 때나, 가까운 슈퍼를 갈 때는 마스크 쓰는 것을 잘 잊어버린다. 그때의 그 시원한 공기가 얼굴에 와 닿아 상쾌한 기분이었다. 마스크 벗을 날이 언제 올까 하고 모두들 걱정이 태산 같다. 친구들 가족들 고령자들 안면만 있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할 때면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뉴스에 나오는 사망자의 숫자가 더 무서웠다. 마스크를 다시 쓴다.
붙어 사는 일은 서로에게 사랑과 행복, 기쁨과 웃음을 얼마나 많이 주는가! 이제 마스크와 전쟁을 끝내려 하지만 아직은 서로 간에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밥을 먹고, 술 한 잔하고, 커피도 마시며 사람끼리 붙어 사는 이유가 있어 더 즐거운 세상. 손전화기와 살며, 멋진 찻집에 앉아 사람 사는 이야기 꽃을 피우고 싶다. 마스크가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갈 날을 기다려 본다. 퇴직한 남편이 집에만 있고, 취직이 되지 않아 함께 사는 자식이 밉다고 하지만 떨어지면 못살 것을 알기에 미우나 고우나 붙어 산다. 오늘 아침도 마스크와 붙어 살지 않아도 된다는 기사를 찾아본다. 신문을 넘기며 세상이 변해가는 글들을 읽는다. 기사에 실리는 사람들 얼굴에 마스크가 붙어 있다. 보기만 해도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 기분전환을 위해 사람들과 마주앉아 마시던 달달한 커피 한 잔을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