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곁눈질 – 宣旿노덕경수필가
눈 뜨면 아침이고 돌아서면 저녁이다. 월요일인가 하면 주말이고 어느 새 월 말이다. 가는 세월은 어쩔 수가 없는가, 어느새 일흔의 중반이다. 푸르던 산천이 울긋불긋 단풍으로 밀려왔다. 만년 晩年에 이르고 보니 가을바람을 쏘여야 마음이 진정되지 싶다.
며칠 전에 김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주말에 뽕 따러 가잖다. 바다도 보고, 임도 보고 회도 먹자고 했다. 마음으로 바라던 바였다. 모처럼의 일탈을 생각하니 얼굴에 홍조 紅潮가 일고, 가슴이 두근거리니 아직도 청춘의 불씨가 남아나 보다.
모닝콜 소리에 뻘떡 일어나 외출 준비를 하는데, 아내가 토끼 눈이다.
-“아침에 어딜 가는데 새벽잠을 깨우는교.” -“응, 김 사장이 남해나 가자네.” -“어제까지 이야기 안 했잖아.” -“못 가게 할까 봐, 지금 이야기하잖아.” -“당신은 이제껏 혼자 밖에서 놀았잖아. 이제 나와 같이 그런데 가면 안 돼?” -“미안하게 되었네, 남자끼리 가는데, 다음에 같이 가자. 여보.”
주섬주섬 옷을 걸쳐 입고 약속 장소로 갔다. 김 사장의 차가 먼저와 경적을 울리며 얼른 승차하란다. 차 안에 중년의 여인 둘이 앉아있는 게 시선을 끌었다. 김 사장은 나를 여인들에게 소개하며 비행기를 태웠다.
“이 사람, 공직에서 정년하고 잘나가는 사장이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응수했다.
“아닙니다. 할 일 없이 먹고 노는 백수입니다.”
고속도로를 달려 휴게소에 이르렀다. 커피를 마시며 상대편을 살피는 것은 동물의 본성이다. 젊으나 늙으나 이성을 좋아하고 서로 잘 보이려고 한다. 눈에 명태 껍질 씌려고 말과 행동도 점잖게 한다. 상대방의 기분이 좋으라고 입에 침을 바르고는 여인들을 향하여 젊고 새댁같다, 인상도 좋고 멋쟁이라고 칭찬했다.
친구는 나를 치켜세워 건강하고 경제력 있고 즐겁게 살고, 나중에 해어지더라도 치마꼬리 붙들지 않을 사람이라고까지 덧붙였다.
어느덧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바닷가 특유의 비린내와 함께 바람이 차창으로 들어왔다. 햇빛에 파도가 넘실대는 물결을 보니 마음마저 상쾌해졌다.
바닷가에 전망이 좋은 곳에서 주인이 추천하는 참돔 회를 시켜 놓고, 선남선녀와의 만남이니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술잔을 부딪치며 ‘카’ 하는 술맛까지 더해지니 천상에 오른 것 같았다.
취기 속에 몽돌이 깔린 바닷가를 초면의 여인과 거닐었다. 걷는 내내 상대편에게 환심을 얻을 요랑에 여념이 없었다. 다음에 만나고 싶도록 하려면 어ㄸ쩐 이야기가 좋을까를 구상하며 걷고 있었다. 그때 진동 벨이 울렸다. 아내의 전화였다.
“잠깐, 친구 전화 왔어요.” 하고는 조금 떨어져 전화를 받았다.
-“여보, 지금 무엇 해?” -“응, 전화 받고 있어.” -“전화 받기 전에 무엇 하고 있는지 물었지.” -“김 사장과 한잔하고 바닷가에 바람 쏘이러 나왔지.” -“여보, 심심해서 죽겠다. 언제 오는데?” -“알았어. 미안해?” -“빨리 와 여보.”
김 사장은 사업가라 젊어서부터 여인들을 달고 다녔다. 그 여인과는 면식이 있는 사이인 듯했다. 상대편 그녀의 알리바이를 위해 친구 한 사람을 데리고 왔지 싶다.
김 사장은 둘이 잘 해보라고 했다. 그래야 자주 함께 나올 수 있다며 나를 꼬드겼다.
오랜만에 친구와 바닷바람을 쏘이니 기분이 상쾌하고 하루가 즐거웠다. 남의 꽃이 예뻐 보인다고 그런대로 마음에 들었다. 다음에 동해안으로 동행하자고 했다. 분위기가 잘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일찍 집에 들어가야 할 상황이니, 일찍 귀가 하자고 했다.
집에 도착하고 보니, 5층 상가주택의 계단실이 온통 물과 세제 거품이었다.
“어, 이게 뭐야?” -“보면 몰라, 계단 대청소하고 있잖아.” -“당신, 대청소한다는 이야기 안 했잖아.”
아내는 혼자 놀러간 것에 대해, 어떻게 골탕을 먹일까 생각하여 일을 벌여 놓은 듯했다. 고양이 같이 순한 아내는 살면서 호랑이로 변했다. 좋은 시절이 다 지나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