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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회 윤가네 일본댁 이야기 (10) 윤탁 장군 담당 시민기자 활동후기(後記) _ 나까다 마유미

외국인인 제가 윤탁 장군이라는 인물을 알게 된 것은 , 우리 아이들이 가회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을 때 교장선생님께서 써주신 학교통신 글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가회 굴지(屈指)의 대표인물로서 윤탁 장군이 있다”라는 것이었는데, 우리 지역출신 윤가에도 그렇게 훈륭한 분이 계셨구나라고 너무나 반가웠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조상에도 이런 애국자가 있으니, 우리 아이들은 나라를 넘어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인물이 될 수 있도록 키워야겠다고 더 큰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합천인물열전” 시민기자활동을 신문사에서 안내를 받았을 때, 우리 윤탁 장군의 기사를 꼭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함방리는 구평마을과 구전마을이 있고, 파평 윤씨의 가정이 많은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학교통신 글을 보는 계기로 동내 여리저리에 있었던 윤씨 문화재를 아이들과 함께 흥미롭게 찾아가봤습니다. 그 때 이번 기사에도 올린 윤씨 신도비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번 시민기자활동으로 윤탁 장군을 조사하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것도 여러가지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대해도 조금 공부하게 되어, 그의 유명한 인물들도 윤탁 장군과의 관계가 깊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먼저 임진 3대 대접인 진주 1차에서 제일의 대표인물인 “김시민”과의 인연. 목사였던 그 인물이 전투로 부상을 입어 전사(戦死) 하자 윤탁 장군이 그 사람 대신 목사가 되어 행정까지 맡았다고 하니, 정말 윤탁이라는 분은 참 그룻이도 크다고 감격했습니다.
그리고 “의령”라고 하면 저도 첫번째 대표인물이라는 인상이 되는 “곽재우”. 그 인물과는 항상 의논하면서 서로 의병장으로 지역을 나누어서 임진왜란 전투에 나가 활약했던 것 같습니다. 진주 2차전으로 곽재우는 명(明)과 왜나라 간에 화의(和議)가 진행중이라 어려운 상황을 보고 입성하지 안한다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윤탁 장군은 “난 군 소집을 받았으니 아니 갈 수가 없다”고 의병장의 도리를 다하여 진주성과 함께 생명을 완수했다고 합니다. 그것으로 저도, 윤탁 장군은 너무나 의롭고 아름다운 정신을 가진 분인가라고 생각하면서, 뜨거운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임진왜란 역사에 크게 이름을 남긴 인물들과도 갚은 인연을 가지고 더욱 불타는 애국충심(忠心)과 애인(愛人)정신을 보여주신, 제 마음의 변함 없는 자랑스러운 영웅, 그 분이 윤탁 장군입니다. 이번 다시 깊이 보는 윤탁 장군 모습은, 더욱 멋있고 더욱 제 마음에 가까워졌습니다.
이번 참으로 좋은 합천시민기자 경험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게 되어서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