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오피니언)칼럼

구읍(舊邑) 야로면(冶爐面)에 남겨둔 발자취 및 역사적 의의(意義) <2>-만수동(萬壽洞) 역사루트를 찾아(18)

하재효
논설위원

헐려버린 객사
야로면 하빈리에 객사(客舍)가 있었다. 이 객사는 합천군청이 야로에 있을 때 중앙이나 원지(遠地)에서 공무로 온 손님이 유숙(留宿)하거나 파발[擺撥 = 공문을 급히 보내기 위하여 설치한 역참(驛站)]꾼 들이 말을 갈아타거나 먹이를 주기 위하여 이용하는 관용 청사로 교통과 행정의 중심지인 야로면 하빈리에 설치되었다. 이 객사는 군청이 합천읍으로 환원(1893년)된 후에도 유지되어 오다가 야로초등학교가 이 객사를 이용하여 개교(1921.2.15)한 후 학교 건물로 사용해 오다가, 강양관 중수공사 준공(1956.11.30), 객사(강양관) 및 목조 2교실을 철거(1970.12.20)하고 현대식 학교 건물을 신축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근거 자료:용광로(鎔鑛爐:야로초등학교 동창회지, 창간호, 2005년3월31일간, 발행인 동창회장 하재효, p17의 중요 연혁) 참조>
이 객사 건물은 전통 한옥 기법으로 못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우물 마루였다. 건물의 방향과 초석, 그리고 창문을 과학적으로 배치하여 통풍(通風)과 채광(採光)이 뛰어나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였다. 특히 천정이 높고 목재(木材)가 넉넉하여 견고(堅固)하고 안정감(安定感)을 주었다.
1032호=7 2이 건물의 건립 연대(1890~1893)는 군청이 야로에 있을 때였으므로 지금으로부터 124년 전으로 추정된다. 이 건물은 객사와 학교로 이용된, 역사적으로나 문화사적으로 보존되어야 할 귀중한 문화재였다. 이 건물 하나만으로도 연구 및 관광 자원으로서의 잠재적 유발효과가 영구히 이어질 수 있었다.
지금은 헐려진 건물이지만 이 건물은 충분히 복원할 수 있다. 야로초등학교 1회에서부터 50회까지가 여기에서 공부를 하였으며, 졸업생 중에는 전통한옥 대목장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 있으며, 졸업사진마다 이 건물을 배경으로 하는 등의 인적 물적 고증(考證) 자원(資源)이 많이 동원(動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야로초등학교에 가면 현관에 강양관(江陽館)이라는 객사의 현판(懸板)이 남아 복원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