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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난 곳이 명승지’ 합천인물열전 (14) 삼가에서 태어난 뇌룡정(雷龍亭) 주인 남명 조식

합천 삼가면 남명로를 다니면, 외토리에서 태어나 조성 중기 대표학자가 된 남명 조식선생에 관한 유적건물을 볼 수 있다.
“뇌룡정”은 남명 조식이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가르쳤던 곳이다. 조식은 삼가면에서 태어나 서울 및 김혜에서 살다가 48세에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을 연구하며 재자들을 가르쳤다. 학자로서의 명성이 널리 알려져 조정에서 수차례 벼슬을 내렸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당시 국정을 강하게 비판한 상소문인 “을묘사직소”가 이곳에서 지어졌다.
뇌룡정은 1549년에 뇌룡사(舎)였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버리고 후에 용암서원 부속건물로 이전되었다. 용암서원이 폐지된 후 1883년 삼가지역의 유림들이 원래 자리인 이곳에 다시 세웠다.
“뇌룡”이라는 말은 장자(荘子)가 말한 “시동처럼 가만히 있다가 때가 되면 용처럼 나타나고, 깊은 연못처럼 고요히 있다가 때가 되면 우레처럼 소리 친다” 라는 글귀에서 따온 것이다. 꾸준히 실력을 쌓아서 때를 기다리라는 남명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현재 삼가 외토리에는 뇌룡정과 같은 터에 “용암서원”이 있고, 같은 지역에 “남명 조식 생가지”가 있고, 모두 관리가 잘 되고 있다.
용암서원 시설에는 이런 설명이 있다. 남명 조식선생(1501~1572)을 존모하여 향사하면서 강학활동을 하였던 곳. 남명선생은 경(敬)과 의(義)를 학문의 핵심으로 생각하고, 힘써 익혀 아는 것은 반드시 실천하기를 강조하였으며, 현실 정치에 누구보다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도 날카롭게 비판하는 눈을 가졌으며, 출처를 선비의 가장 큰 절개라고 생각하였던,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이었다. 이 서원의 전신은 회산서원이고 임진왜란 때 소실이 된 후도 이전, 복원 등 있었고, 용암이라 사액되어 2007년 현재 자리에 이전 복원되었다.
“남명 조식 생가지”. 본가는 삼가면 하판리이고, 이곳 토동마을은 조식의 외가이다. 조식은 다섯 살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옛날 한 풍수 도인이 이 마을을 둘러보고는 암토끼가 달에 있는 수토끼를 쳐다보며 누워 있는 형상의 땅이라 하였다. 그리고 토끼의 배에 해당하는 곳이 명당이라서 이곳에 지어진 집에서 1년 내에 현자가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곳이 바로 조식의 외가였는데 1년 뒤에 예언대로 조식이 태어났다. 조식이 태어나던 날에 우물에서 무지개 빛이 뻗어 나와 방을 가득 채웠다고 전한다. 조식의 생가는 1970년대에 새마을 운동으로 철거되었다가 현재는 건물 복원 정비가 된다.
남명 조식은 61세부터 마지막 72세까지는 지리산 아래 산청 덕산으로 옮겨 산천재를 지어 후진을 양성했다. 문하에서 학문적으로 48가(家)에 달하는 석학들이 사림의 중심이 되었고, 곽재우, 정인홍, 김명 등의 50여명의 의병장은 임진왜란의 국난 극복에 선봉이 되었다.
/나까다 마유미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