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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난 곳이 명승지’ 합천인물열전 (15) – 영남 바둑계의 대부 하찬석

하찬석 국수는 합천이 낳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수(國手)이다.(國手: 장기, 바둑 따위에서 그 실력이 한 나라에서 으뜸가는 사람)
1948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하 국수는 1963년 일본으로 건너가 기타니 도장에서 수학한 뒤 일본기원에서 전문기사가 됐다. 5단까지 승단한 뒤 군 입대를 위해 1970년 귀국했고 한국기원에서 4단을 인정받아 이후 국내에서 활약했다. 이 무렵은 60년대의 최강자 김인 9단의 빈 자리를 놓고 군웅이 쟁패하던 시기였다. 하찬석 기사는 73년 국수, 74년 왕위를 잇달아 쟁취했고 75년엔 국수를 2연패하며 군웅 중에서 우뚝 섰다. 뭉툭하지만 억센 동아줄 같은 힘으로 바둑판을 지배했던 그에게 기자는 ‘무딘 칼날의 명검’이라 헌사했고 이후 애칭이 됐다.
바둑계는 곧이어 천재 조훈현 9단이 등장하면서 그의 일인 천하가 시작된다. 이후 하 국수는 78-79년 사이 중앙일보사 주최의 왕위전을 필두로 국수, 국기, 최고위 전의 도전권을 모조리 거머쥐며 천하통일을 앞둔 조훈현과 바둑 사상 초유의 20번기를 벌인다. 하나 왕좌 자리를 놓고 벌인 이 혈투에서 고인은 뼈아픈 연패를 당하고 한계를 느낀 고인은 낙향하여 후진 양성에 힘쓴다.
일본에서 돌아온 조훈현이 귀국과 더불어 하찬석의 시대는 너무 빨리 저물게 된 것이다. 이후 그는 고향 합천으로 내려가 칩거하면서 중앙 무대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2003년 九단에 오른 뒤에도 고향인 합천과 대구 등지에 거주하면서 상대적으로 바둑 불모지인 이 지역에서 후진을 양성하는 한편 바둑서적 저작에도 힘을 기울였다. 2010년 9월 지병인 직장암으로 사망했으며, 향년 61세였다. 그리고 그 해에 하찬석 국수를 기리는 의미에서 합천군이 후원하고 한국기원이 개최하는 <하찬석 국수배 영재바둑대회>가 탄생했다.
앞으로 지역에서 하국수의 후예가 태어나길 기다려 본다.
/박영수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