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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난 곳이 명승지’ 합천인물열전 (17) –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생애와 소학당(小學堂)에 남긴 흔적

이조 유학연원(李朝 儒學淵源)을 말하면 정몽주(鄭夢周)는 길재(吉再)에게 전하고, 길재는 김숙자(金叔滋)에게 전하고, 김숙자는 그 아들 김종직(金宗直)에게 전하고, 김종직은 김굉필(金宏弼)에게 전했다고 한다.
한훤당 선생이 처음 점필제(佔畢齊) 김종직 선생을 좇아 학업을 청하니,소학서(小學書)를 손수 주면서 말하기를 “진실로 학(學)에 뜻하려면 의당 이 소학으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고 하자 정성껏 가슴에 품고, 손에서 놓지 않았다. 사람들이 혹 시국의 일을 물으면 “소학동자(小學童子)가 어찌 대의(大義)를 아리요. 소학책 가운데서 이제까지의 잘못을 알았노라.”란 글귀가 있다.
주자(朱子)가 하은주(夏殷周) 삼대(三代)의 교(敎)에서 추려내어 엮은 이 소학서는 인류(人類)에 공통(共通)되는 도덕적(道德的) 행위양식(行爲樣式)이 담겨있다.
김굉필은 단종 2년(1454)에 한경(漢京.서울) 정능동(貞陵洞.정동) 자택에서 출생하여 연산(燕山) 10년 갑자 (1504) 51세로서 적소(謫所) 순천부(順天府)에서 최후를 마쳤다. 19세에 합천군 야로(현 가야)에 있는 박씨(朴氏) 댁에 장가들고 , 처가 옆에 작은 서제(書齋)를 지어 한훤당이라 불렀으니, 그것이 그의 아호(雅號)로 된 것이다. 21세에 점필제가 함양군수로 있을 때 그 문하에서 소학을 배웠고, 27세에 생원시에 3등 제32위로 입격한 바 있다. 30세 이후에 비로소 다른 책을 읽었고 또 후진을 가르쳐 권헌(倦獻)함이 없었으니, 주소지례(酒掃之禮)와 6예지학(6藝之學)을 배우고 닦는 제자들이 뜰에 가득 찼었다. 33세 되던 해에 당시 이조참판으로 있던 은사 점필제에게 시를 지어 올려 그의 국사에 대한 특별한 건의가 없음을 풍자한 바 있으므로 그때부터 사제지간에 서로 갈라섰다고 한다. 34세에 부상(父喪)을 당하여 시묘(侍墓) 3년을 겪음에 향리(鄕里)를 감화시킨 바 있다. 39세에 그와 동문(同門)인 추강 남효온(秋江 南孝溫)과 일찌기 절교한 일이 있었다. 훗날 추강이 와병중이라 문병하였으나 돌아 누우면서 원한을 풀지않았으므로 추강의 몸을 어루만지며 돌아갔을 따름이다. 41세에 부참봉(部參奉)을 제수받고 42세에 전생서참봉(典牲署參奉)으로 이배(移拜)되고, 43세에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로 되었다가 곧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이 되었다. 44세에 형조좌랑(刑曹佐郎)이 되어 옥송(獄訟)에 지성(至誠)을 다하였으므로 모두가 공정(公正)에 탄복하고 예법(禮法)에 적중하였다 한다. 45세 무오년(戊午年)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쓴 선생 점필제의 필화사건(筆禍事件)에 사제지간의 결당이란 죄목으로 연좌되어 평안도 희천에 부처(付處)되었다. 이 때 조광조(趙光祖)는 한원당으로부터 소학을 배웠다. 47세에 대궐문에 무우진인(無雨震人)의 이변이 일어나자 원옥(寃獄)을 처결하기에 이르러 희천에서 전라도 순천으로 옮겼다. 화기를 예측할 수 없는 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평소의 지조는 변함이 없었다. 51세 때 갑자사화(甲子士禍)로 적소(謫所) 순천에서 사약(賜藥)으로 종신하니, 태연자약(泰然自若)하게 목욕관대(沐浴冠帶), 수염을 입에 물고,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의 계명(戒銘)을 외우면서 종용(從容)히 취사(就死)했다는 것이다. 아들과 사위들이 경상도 현풍으로 반장(返葬)하였다.
중종 2년(1507) 通政大夫承政院都承旨兼經筵參贊官尙瑞院正(통정대부승정원도승지겸경연참찬관상서원정)을 증(贈), 중종 10년(1517) 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右議政兼領經筵監春秋館事金宏弼諡號文敬公(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우의정겸령경연감춘추관사김굉필시호문경공) 이라 사증(賜贈)했다. 광해 2년(1610)에문묘(文廟)에종사(從祠)하게되었다.
소학은 성리학을 대성한 주희(朱憙)의 가르침을 받아 그 문인인 유청지(劉 淸之 )가 찬술(纂述)한 것이다.거기에는 이미 원시 유학의 수행관을 넘어선 성리학적 수행관이 깃들게 되었다. 이동고(李東皐)는 한훤당을 우리나라 성리학의 계발자(啓發者)로, 이적과 퇴계선생은 근세도학지종(近世道學之宗)으단언하였다.소학.성리학.도학이 곧 그의 학문영역이다. 합천군 가야면 매안리에 가면 소학당이 있다. 한훤당의 학문을 위하여 처가에서 마련해 주었으며,이곳은 곧 한훤당의 때가 묻은 곳으로 이조 성리학의 산실이다. 주위에는 일두 정여창 선생과 뜻을 같이 했다는 지동암(志同巖).600여년 된 느티나무와 팽나무 4그루, 울창한 솔 숲이 찾는 이의 마음을 만족하게 한다. /하재효 시민기자

*이 원고는 [한훤당의 생애와 사상(한훤당 선생 기념사업회 간)]을 참조함 자료제공:서흥김씨종친회장(배위분하씨) 사진별첨 1. 소학당 전경 2.지동암 3.노목 4.솔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