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담배와의 인연 – 이호석 수필가
나와 담배의 인연은 아주 짧았다. 첫 만남은 초등학교 5학년 때쯤으로 생각된다. 평소 어른들의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맛인지 항상 궁금하였다. 어느 날 또래 서넛이 모여 호기심으로 길가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주워 어른들이 볼까 봐 주위를 살펴 가며 불을 붙여 한 모금 빨았다.
첫 만남에서 나는 기겁을 했다. 멋도 모르고 심하게 빨은 담배 연기가 목구멍을 통해 폐로 들어갔는지 한참 기침을 콜록거렸고, 머리가 띵하고 하늘이 노랬다. 그 이후로는 담배가 무서웠고, 그런 담배를 즐겨 피우는 어른들의 심사(心思)를 알 수가 없었다.
두 번째 만남은 청년이 되고 군에 입대하여 논산 훈련소에서였다. 당시는 군인들에게 담배가 정기적으로 보급되었다. 하루 일곱 개 피로 계산해서 사흘에 ‘화랑 담배’ 한 갑씩이 나왔다. 이곳에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였는데 처음 피울 때는 초등학생 시절 담배꽁초를 피우다가 혼이 난 생각이나 아주 조심스레 조금씩 빨았다.
사실은 이때도 담배 맛은 제대로 모르고 뻐끔담배를 피우며 흉내만 냈다. 그렇게라도 피워야 할 이유가 있었다. 훈련받을 때는 50분간 훈련하고 나면 반드시 10분간 휴식 시간을 주었다. 잠깐의 휴식 시간이지만 그 시간이 너무 무료하여 모두 담배를 꺼내 피운다. 나는 뻐끔담배 연기를 내뿜으면서 가끔 고향 쪽 하늘을 쳐다보며 가족과 친구들 생각에 잠기기도 하였다.
훈련소에서 피운 담배는 훈련을 마치고 기성 부대에 배치되고는 곧바로 끊었다. 원래 기관지가 좋지 않은 나에게 도저히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담배를 끊고 한동안은 보급되는 담배를 모두 옆 전우들에게 주었다. 그러다가 가만히 생각하니 아깝기도 하여 모아서 휴가 때 아버지께 몇 차례 갖다 드렸다.
담배 하면 가끔 나는 조모님과 종조모님을 생각하게 된다. 두 분 모두 백세 가까운 나이에 돌아가셨다. 그분들은 그야말로 애연가셨다. 도대체 몇 살 때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였는지 모르지만, 내가 어릴 적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았으니 꽤 오래 피운 것은 틀림없다. 두 분 모두 시간만 나면 긴 담뱃대를 늘상 입에 물고 계셨다. 그런데도 돌아가실 때까지 건강하셨고, 장수하였으니 담배가 몸에 꼭 해로운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특히 종조모님의 담배 관련 얘기는 전설적이다. 조선 말엽, 우리 마을 뒷산 등 너머 ‘생골’이라는 마을에 살다가 종조부와 결혼하셨다. 그런데 시집올 때 짐 속에 담뱃대를 숨겨 왔다고 한다. 그 사유는 이러했다. 아가씨 때부터 인(회충) 배가 자주 아팠는데 당시는 약이 제대로 없어 그때마다 담배를 피워 진정시켰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담배 피우는 습관도 들었을 것이고, 또 시댁에 와서도 인 배가 아플 때 대처하기 위해 가져온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이 사실을 남편인 종조부께서 먼저 알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자기만 알고 한동안 몰래 피우도록 숨겨 주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아들딸을 낳고 중년에 들면서 자연스레 공개적으로 피웠을 것 같다.
당시 조모님들이 피우는 담배는 주로 봉초 담배(말린 담뱃잎을 잘게 썰어 봉지에 넣은 것)였다. 담배를 하도 자주 피우니까 담뱃대 안에 담뱃진이 많이 쌓여 수시로 담뱃대 대통(대꼬바리)에 붙은 찌꺼기는 뾰족한 쇠붙이로 긁어내었고, 담뱃대 속의 진은 짚 속 줄기를 밀어 넣어 제거하였다.
여름에는 담뱃불을 주로 성냥으로 붙였지만, 그 외 계절에는 거의 화롯불을 이용하였다. 가을이 들고 날씨가 조금 쌀쌀해지면 조모님 방에 들기 시작한 화로는 이듬해 늦봄까지 계속 들락거린다. 지금 생각하면 화로는 방안을 따뜻하게 하는 목적도 있었지만, 담뱃불 붙이는데 더 긴요하게 사용한 것 같다.
조모께는 담뱃대와 화로가 여러 용도로써였다. 화가 날 때는 방안에서 담뱃대를 연신 빨아대어 자욱한 연기 속에 앉아서 죄 없는 담뱃대 대통으로 화로 언저리를 쾅쾅 때리며 고함을 질렀다. 그러니까 담뱃대와 화로는 담배 피우는 용구이기도 하지만, 담배 불씨를 담는 그릇이자 재떨이도 되고, 또 화날 때는 화풀이로 두들겨 패는 다용도 생활필수품이었다.
8, 90연대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는 담배 천국이었다. 농촌의 사랑방에는 비 오는 날이나 저녁이면 마을 어른들이 이집 저집 모여 놀았다. 이때는 마치 담배 피우는 경연이라도 하듯 교대로 담배를 피워댔다. 방안의 하얀 벽지가 담배 연기에 절여 항상 누르끼리하였고 날이 갈수록 그 색채가 더욱 짙어졌다.
또 읍면 소재지 다방이나 술집, 심지어는 관공서 사무실까지도 탁자나 책상 위에 재떨이가 필수로 놓여있었다. 그런 곳에서는 지역 어른들이나 제법 높은 사람이 담배를 피웠다. 다방 출입을 하는 사람이 어쩌다가 양담배라도 한 갑 생기면 다방에서 남들이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폼을 잡기도 하였다. 당시는 어느 곳이나 사람이 모이면 담배 연기가 자욱했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은 돈을 아끼려는 좀생이나 못난 사람으로 취급받기가 일쑤였다.
사회 곳곳에 금연 구역이 늘어나고 건강을 걱정하여 많은 사람들이 금연하는 지금의 세태를 보면 격세지감을 가진다. 담배가 언제부터 우리 인간들과 희로애락과 함께해왔는지 모르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이 애용하는 기호품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