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오피니언)칼럼

사랑의 매는 없다

공원석
논설위원

필자에겐 교직수행에 영향을 준 세 권의 책이 있다. 먼저는 이효상(경북대교수와 국회의장역임)의 저서인 <교육의 근본문제>이다. 이 책은 교육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풀어주었다. 다음은 영국의 신교육운동가 니일의 <섬머힐>과 니일의 교육적 실천에 평생을 노력한 교육가로서 자유교육을 주창한 일본인 학자 시모다 세이지(霜田靜志)가 쓴 <꾸짖지 않는 교육>이다. 이 두 권은 학생지도방법에 대해 지침이 되었다. 요즘 학교체벌에 대한 논의가 쟁점이다. 원래 교육은 보수적이다. 그러나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서 학생체벌이 만병통치약일까? 백해무익일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사회는 학교나 가정에서 체벌을 사랑의 매라고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음은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체벌은 인격문제 외에 더 심각한 교육적 문제가 있다. 니일은 섬머힐에서 “체벌이나 억압의 치료기간은 그 체벌의 양과 기간에 비례한다.”고 했다. 이는 고무줄탄력성이론으로 체벌을 받은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은 만큼 폭발력이 강하고 치유기간도 오래 간다는 뜻이다.
섬머힐에 의하면 어떤 아이가 교정(校庭)의 나무들을 자르고 싶으니 톱을 달라고 했다. 아이는 수십 년 된 나무를 서너 그루 자르더니 스스로 포기했다. 억압에 대한 반발이었는데 나무를 잘라도 아무도 간섭하지 않아서 싫다고 했다. 그는 마음 내부에 잠재한 억압과 폭력에 대한 감정을 씻어내고 자율학습에 불이 붙자 어려웠던 라틴어를 6개월 만에 익혔다고 한다. 이는 강제로 주입시키는 교육과 자발적으로 하는 학습효과에 대한 차이였다. 니일의 결론은 체벌이나 억압은 반발의 감정이나 성격형성으로 잠재시키는데 그 탄력적 강도는 체벌의 양과 억압의 강도에 정비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체벌과 억압의 영향은 언제인가는 반드시 나타나는데 어른이 되어서든 늙어서든 흉악범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파괴행위로 보상받기도 하며 일탈행동으로 발산하기도 한다고 했다.
나는 교육현장에서 니일의 가설이 옳음을 알았다. 그래서 학교에서 체벌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잘못된 소치라고 단정한다. 체벌은 어떤 변명으로든 폭력일 뿐이다. 체벌을 하다보면 습관성중독이 된다. 세상엔 사랑의 매는 없다. 아이에게 네가 행한 행위가 미워서 체벌한다고 말하는 것이 훨씬 솔직한 마음의 전달이다. 사랑의 매로 아이의 행동변화가 이뤄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합리화이다. 내면적인 성찰이 스스로 일어나지 않는 행동변화는 가식이며 일시적인 눈가림이고 모면행동에 불과할 뿐이다. 사랑을 먹고 자란 사람이라야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됨을 믿어야 한다. 경험에 의하면 매를 손에서 버리고 맞은 첫 번째 변화는 내 마음의 평안과 화평이었다. 숙제를 안 해왔다고 손바닥을 때렸고, 수업시간에 해찰을 한다며 종아리를 쳤던 날카로운 감정이 손에서 매를 놓으므로 깨끗하게 맑아졌다. 이는 먼저 내 자신에게 평화와 안정이 왔다는 의미이다. 두 번째 변화는 학생들이 스스럼없이 내 곁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는 전에 느끼지 못한 기쁨이었고 교사가 매를 버리자 학생들 성향이 달라진 결과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