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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난 곳이 명승지’ 합천인물열전 (21)김광일 前비서실장

김광일(金光一, 1939년 9월 11일 ~ 2010년 5월 24일)은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김녕이며,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그는 경남고등학교(12회),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대학 졸업이후 고등고시 사법과 15회에 합격하고 유신 정권 시절 대구지방법원 판사를 지내다가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학생에게 무죄를 선고해 인사상 불이익을 받자 사표를 내고 부산직할시에서 변호사로 개업하였다. 영화 변호인에 나오는 김상필이 바로 김광일을 모티브로 삼은 인물이다. 변호사로 활동하면서도 1979년 부마민주항쟁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이 때문에 부마민주항쟁의 자금책으로 몰려 한동안 고초를 당하기도 했다. 1980년대 내내 부산지역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부림사건,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때마다 학생운동가, 민주화운동가들을 변호하였다. 부산지역 재야민주화운동의 핵심인물로 노무현, 문재인 등과 함께 1987년 6월 항쟁에 참여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김영삼이 부산 재야의 대표격인 김광일 변호사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자신을 포함한 재야인사 3인 부산지역 공천’을 조건으로 해서 통일민주당에 입당하였다. 이때 김영삼에게 추천한 재야인사가 바로 노무현과 문재인인데 노무현은 제안을 받아들여서 통일민주당에 입당해서 총선에 출마하였고, 문재인은 거절하고 변호사로 남았다. 이후 그가 추천한 노무현은 국회의원을 거쳐 대통령까지 됐으니 정치계에서 나름 큰 역할을 했다고 할수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5공 청문회에서 맹활약하며 청문회 스타로 두각을 나타냈다. 1990년 3당 합당 때 김영삼을 따라가지 않고 꼬마민주당에 남았다. 꼬마민주당이 신민주연합당과 합당하여 민주당이 되자 거기에 따라가지 않고 1992년 정주영의 통일국민당에 입당하였다.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자유당 정상천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제14대 대통령 선거 직전 정주영의 당 운영을 비판하며 통일국민당을 탈당하며 정계 은퇴 선언을 하였다. 문민정부가 출범하자 김영삼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서 대통령 비서실장과 초대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여 김영삼의 최측근이 되었다.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부산광역시 서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정문화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낙선 뒤 민주국민당 최고위원 등을 지냈으며 주로 부산 지역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2010년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