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오피니언)칼럼

기계에 종속되어가는 인간들

이호석
논설위원

필자는 사정에 의해 주말부부로 살고 있다. 아침, 부엌 밥솥이 뜨거운 김이 배출된다고 경고하더니 잠시 후 맛있는 밥이 다 되었다고 통보한다. 그 옆 다용도실에서는 잠시 전 돌려놓은 세탁기에서 세탁이 다 되었으니 빨랫거리를 내다 말리라며 삑삑거린다. 또 그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이번에는 냉장고 옆 탁자 위에 놓인 전자레인지가 음식이 다 데워졌으니 내다 먹으라며 삐삐 소리를 낸다. 그중에도 이놈의 성질이 제일 급하다. 다른 기기들은 한 번 하고 나면 다시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거나 몇 분의 시간을 두고 알리는데 요놈은 잠시 사이를 참지 못하고 계속 삐삐거린다. ‘알았다. 이놈아 언간이 졸라라’ 구시렁거려도 내 말은 들은 채도 않고 제 성질대로 계속 삐삐거린다.
거실 TV에서는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여자 남자 몇이 나와 웃고 떠들고 난리더니, 조금 후 뉴스를 한다. 재수 없게 보기 싫은 국회의원이란 작자들이 제일 먼저 나왔다가 사라진다. 일 년 내 안 봐도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입만 열면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것처럼 허세를 떨지만, 자기들 속셈만 가득 채우며, 미운 짓만 찾아가며 하는 사람들이다. 이번에는 한술 더 뜬다. 국회 사무실마다 설치되어 있는 생떼 같은 그 많은 책상 컴퓨터를 몽땅 새것으로 갈고, 의원실 벽지도 다 갈아붙인단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세계에서 우리나라 국회의원만이 겁 없이 할 수 있는 횡포요 특권이다. 이렇게 수천만 국민의 눈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정부 공무원들을 매일같이 불러다 호통치겠다나, 그 정도면 낯짝에 철판을 깐 것이 아니라 무쇠를 깐 사람들이다. 자기들은 어느 한 곳 통제받지 않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온갖 특혜와 세비 인상을 맘대로 하면서 국민 속을 새까맣게 태우는 자들이다. TV에서 그 사람들이 나오는 바람에 괜히 얘기가 엉뚱한 곳으로 가버렸다.
우리는 자고 나면 TV를 튼다. 꼭 볼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습관적이다. 그다음 어젯밤에 꽂아둔 휴대폰이 충전되었나 확인하고, 그때부터 온종일 옆에 끼고 산다. 수시로 카톡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한다. 휴대폰 등장으로 찬밥신세가 된 집 전화벨이 가끔 울린다. 이 전화는 주로 휴대폰 번호를 모르는 나이 많은 어르신들로부터 걸려온다. 아침을 먹고 자동차를 타고 나간다. 오늘은 대구에 가는 날이다. 출발하면서 내비게이션을 켰다. 아가씨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길을 안내한다. 아니 안내를 하는 게 아니라 나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거나 지시를 한다. 내 의견은 조금도 받아주지 않는다. 모퉁이를 조심해라, 너무 달리지 말라, 얼마 앞에서 좌로 가라 우로 가라, 제멋대로다. 고령 톨게이트를 들어서니 또 기계란 놈이 버티고 서서 입으로 통행권을 날름 내민다. 조금 가다 더운 날씨라 잠시 쉬어 갈 요량으로 화원 휴게소로 들렀다. 여기서도 자판기란 놈이 쪼르르 커피를 부어준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대도시 목적지를 가본 사람이면 한 번씩은 이놈에게 당한다. 분명히 질러가는 길이 있는 데도 제 놈이 아는 길 외는 절대 가르쳐주지 않아 빙빙 돌아가게 골탕을 먹인다.
또 전국 곳곳에 설치된 CCTV는 우리 인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 도둑을 예방하기도 하고, 어떤 지역을 경계하는 역할도 하지만, 이제 인간들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기 예사다. 이웃 사람도 모르는 마을 내 사건·사고를 골목 높은 곳에서 매달려 먼저 알고 내려다보면서 히죽히죽 인간들을 비웃기 일쑤다. 얼마 전 어느 공원을 들렀다가 화장실이 안 보여 숲 속에서 소변을 보려다가 깜짝 놀랐다. 멀리 쳐다보니 CCTV가 빙그레 웃으며 내려다보고 있지 않은가. 아뿔싸, 화장실을 찾아 줄행랑을 쳤다. 곳곳에 사람대신 기계들이 버티고 섰다. 이제 예전같이 자연 속에서도 마음 놓고 시원하게 용변도 못 보는 세상이 되었다.
얼마 전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대결이 있고 나서 인공지능의 무서움을 새삼 알았고, 그 발전의 한계가 어디까지 갈 것인지 기대와 두려움으로 시끄러웠다. 또 이를 이용하는 로봇이 그 치밀성을 더해가면서 앞으로 여러 직업에서 인간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많은 인간이 실업자로 내몰린다는 보도가 있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이 이제 자기들이 만든 기계의 지시를 받아야 하고, 일자리를 내줘야 하고, 때로는 조롱을 당하게 되었다. 이렇듯 인간들이 편리만 쫓아 기계화, 자동화만 찾다가 이제 자기 손으로 만든 기계의 눈치를 봐가며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