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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언제나 마음의 바다에서 유영한다 – 이호석 수필가

인간은 언제나 마음의 바다에서 유영한다. 유아기 때 마음의 바다 수질은 수십 미터 암반을 뚫고 뽑아 올린 생명수처럼 아주 맑고 깨끗하다. 누구나 그 순백한 수질을 그대로 유지하며 천사같이 살고 싶어 하지만, 세상의 온갖 오염물질이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어쩌면 청년기가 지나고 중년이 되면 인간의 마음 바다는 오염 덩어리로 변해 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 품속에 있을 때는 허기를 면할 수 있는 젖만 있으면 만족스러운 작은 바다이지만, 조금씩 자라면서 그 바다는 차츰 넓어지고 깊어진다. 그 맑고 순수한 바다에 선과 악의 물질이 마구 흘러들면서 고요하던 바다에 파도가 일기 시작하고, 매사에 욕심이 발동한다. 음식을 보면 먹고 싶어 하고, 아무것이나 만지고 싶고,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어 한다. 때로는 닥치는 대로 먹고 만지고 욕심을 내다가 큰 탈이나 곤혹을 치르기도 한다.
마음의 바다는 너무나 깊고 넓어 희망과 욕망, 자비와 봉사, 미움과 원망, 갈등과 분노 등 인간사의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인다. 평생 동안 채우고 또 채워도 넘치지 않는다.
이 마음의 바다에 평생을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너무나 황홀하고 훌륭한 큰 배를 띄울 수도 있다. 출생할 때는 금수저 부모를 만나기도 하고, 흙수저 부모를 만나기도 하여 바다의 수질이 다르기도 하지만, 성장 후에는 근본적으로는 자기의 생각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마음의 바다에서 기나긴 인생행로를 항해한다.
사람은 성장하고 살아가는 동안 많은 것을 보고 배운다. 그 배움은 마음의 바다에 흘러드는 온갖 선악의 물질을 분별하고 그에 대처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보고 배우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배운 지식을 가지고 얼마나 바르게 분별하고 실천하느냐가 중요하다.
가끔 귀한 외동으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자란 사람과 또 자기가 보고 들은 것만을 인생의 원칙이나 정도, 정답으로 착각하며 고집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이기적이고 독선적이다. 이 사람들의 마음 바다 외곽에는 철벽같은 방파제가 처져 있다. 이 방파제는 수질이 좋은 물(바른 교육이나 옳은 말)은 막고, 자기의 아집과 욕심을 충족시키는 오염물질에만 수문을 열어준다.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외동이 많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더욱더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사회로 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험난한 생존경쟁 사회에서 좋은 물질만 받아들일 수는 없다. 때로는 나쁜 물질도 받아들여야 한다. 비슷한 환경에서 태어나고, 같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도 자기 마음의 바다에 흘러드는 좋고 나쁜 물질을 어떻게 분별하고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행로가 달라진다. 이것을 선별하는 능력과 지혜에 따라 선(善)하고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악(惡)하고 사회로부터 멸시받는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인생은 희로애락의 연속이다. 마치 사계절 변화와 같다. 주변 산야에 온갖 꽃들이 만발하고 따스한 봄볕이 포근히 내려앉은 잔잔한 바다 위에 일엽편주가 되어 한없이 행복한 유영을 할 때도 있다. 그러다가 건강에 탈이 나거나 가정에 큰 불행이 닥쳐 그 행복한 바다 위에 갑자기 먹구름이 짙게 깔리며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여름이 되고 지옥 같은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도 있다.
또 온산에 단풍이 울긋불긋 아름답게 수놓는 가을이 되어 여름내 땀 흘린 농부들이 오곡이 무르익은 풍요로운 들판을 바라보며 행복해하는 마음일 때도 있다. 그러다가 또 어느 틈엔가 매서운 설한풍이 몰아치는 겨울이 되어 만물이 꽁꽁 얼어붙고, 그 혹한 속에서 나 혼자 길 잃은 기러기처럼 한없는 외로움과 두려움 속에서 허공을 헤맬 때도 있다.
한마디로 인생에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할 때도 있고, 캄캄한 밤중에 등대를 잃고 그 넓고 깊은 바다 위에서 절망감에 빠져 방황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내가 살아 있기 때문에 겪고 느낄 수 있는 일이다. 먼저 타계한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생각하면, 현세에서 방황하고 힘들어도, 오늘도 살아 있음이 큰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행복할 때나 불행할 때나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다윗왕이 반지에 새겨놓고 삶의 지표로 삼았다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여덟 글자의 명언을 평소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는 슬기가 필요하다. 인생의 긴 여정에서 보면 행복도 불행도 한순간이다. 순간의 행복에 너무 자만하지 말고, 순간의 불행에 너무 절망하지도 말며, 항상 마음의 바다가 잔잔하고 평온하도록 노력하며 살아가는 게 가장 좋은 인생의 유영(삶)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