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암계 병신년(丙申年) 총회 개최
지난 6월5일 (음력 5월1일) 부산 금정구 남산동 소재 금남서당(金南書堂) 정원에서 모암계 (慕嵒契) 병신년 연례총회가 열렸다. 모암계는 복야공파 감정공 삼괴당(三槐堂)계 시조후 35세 설암(雪嵒) 권옥현(權玉鉉) 공을 기리기 위하여 문인 후학들이 그 호를 따서 지은 계모임이다. 금남서당은 고인이 만년에 거처하다 고종(考終)한 고택이다. 설암공은 복야공파 감정공계 35세 추연(秋淵) 권용현 선생의 적전(嫡傳)으로 1999년 88세로 별세하였다. 모암계는 공의 별세 후 3년이 지난 2002년에 그의 문집 18권 6책이 발간되면서 그 문인들과 후학들이 결성하여 매년 6월초에 정례를 열고 있으며 올해로 15번째이다.
이번 모임에는 서울에서 모암계 계장 중산(重山) 허호구(許鎬九) 단국대 교수, 중암(中岩) 유효수(柳孝秀)를 포함하여, 부산에서 이병혁(李炳赫) 전 부산대 교수, 권길상(權吉相), 권영호(權英鎬) 전후임 안동권씨 부산 종친회장을 비롯하여 대구. 마산, 합천 등 원근에서 60여명의 계원들과 가족 친지 등 100여명이나 모였다.
총회는 정영만 (鄭永萬) 유사의 사회로 개회되어 상읍례(相揖禮), 묵념, 회장인사, 경과 및 결산보고, 강론(講론), 기타 토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계장 허호구 교수는 휴일에 바쁜 시간에도 경향각지에서 이렇게 성황을 이루어 주셔서 감사함을 전했다. 그리고 올해로 선생이 기세(棄世)하신지 18년이 되었고, 모암계도 15번째 되는 해입니다. 고인의 높은 유덕으로 오늘 날씨도 좋고 참석자들도 점점 늘고 있어 다행이라고 언급하였다. 이어 김해 이성규(李成圭)감사의 감사보고에 이어 강론이 있었다.
강론은 부산예술고등학교 박영진(朴英鎭) 선생이 하였다. 내용은 설암문집 권 5의 잡저(雜著)에 실린 기 운화재 답문(記 雲華齋 答問)으로 원문과 한글 번역문으로 상세히 설명하여 참석자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내용은 1931년 설암선생이 12세 때에 추연(秋淵) 권용현(權龍鉉) 선생에게 대학(大學)을 배우면서 의심스런 내용을 질문하고 추연선생이 응답한 내용으로 학문의 성숙도를 더해나간 독서록(讀書錄)이다. 이글은 총 20항목으로 설암선생의 소시 적에 공부하며 득력(得力)하는 과정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운화재 이름은 설암선생이 지은 추연선생 행장(行狀)에 의하면 마을 뒷산 운현산(雲峴山)과 마을 이름 유화(柳華)에서 운화(雲華) 따온 것과, 추연선생이 젊어서 공부할 때 ‘지이학안조운종화(志伊學顔祖雲宗華)’란 여덟 글자를 벽에 걸어 놓고 학문을 닦았는데 이것에서 운화(雲華)를 따온 것이라고 하였다. 이말은 이윤(伊尹)에 뜻을 삼고 안자(顔子)를 배우며 운곡(朱子)을 조술(祖述)하고 화양(尤庵)을 종주(宗主)로 삼는다는 의미로 주자와 우암을 조종(祖宗)으로 삼겠다는 마음의 발로였다. 강독 후에 고인의 추모시간에 서울 중암(中岩) 질서(姪壻)유효수 계원이 계장 허호구 교수와 설암선생이 75세 때(1976년)에 경기 파주 이율곡선생의 자운서원(자운서원)과 화석정을 동행한 일화를 소개하면서 화석정에 올라 율곡선생이 8세 때 지은 시를 읊으며 그곳에서 지은 시 ‘화석정차판상운증문경(花石亭次板上韻贈文卿: 설암문집 1권)’을 소개도 했다.
이어서 기타 토의시간에서는 앞으로 계주와 총무, 감사 임기를 2년으로 준수하여 많은 회원이 참여하도록 하자고 하였다. 토의 후 폐회를 선언하고 준비된 뷔페 식사를 하면서 담소를 나눈 뒤 행사를 마쳤다. (부산 권영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