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처럼 (4) – 강만수전 기획재정부 장관
고시에 합격하고 그녀를 만난 몇 달 후 나는 재경사무관으로 발령받아 경주세무서로 가는 길에 다시 부산에 들렀다. 그날 그녀의 언니와 어머니를 만났는데 그녀의 형제는 여자만 다섯이고 그녀는 셋째였다는 것을 알았다.
토요일이면 나는 오전 근무를 마치고 그해 개통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부산에 갔다. 해운대를 많이 갔지만 오륙도가 발아래 있는 태종대도 가고 낙동강 하구 에덴동산에도 갔다. 주일에는 그녀를 따라 범일동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그리고는 밤 9시 마지막 고속버스를 타고 경주에 돌아왔다.
나는 경주에 가서 처음에는 시내 황오동에서 하숙을 하다가 신라 역사를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남산 탑골의 옥룡암으로 거처를 옮겼다. 남산으로 불리는 금오산은 산 전체가 불상과 암자로 가득하여 신라 문화가 아름답게 보존된 곳이다. 화창한 봄날 그녀와 함께 탑골을 타고 남산에 올라가 해가 기울 때까지 불상들을 구경했다. 어둠이 내릴 때 옥룡암 사랑채에 돌아와 저녁밥을 먹고는 택시를 불렀는데 택시가 늦게 오는 바람에 9시에 출발하는 부산행 고속버스 막차를 놓치고 말았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옥룡암으로 돌아와 밤을 지내게 되었다. 대학생 때 명동성당에서 우리는 순결 서약식에 참여한 후 순결에 대해서는 서로를 믿었다. 나는 사랑채 아궁이에 장작으로 군불을 때 방을 따뜻하게 하였다. 자정이 넘도록 이야기하다가 새벽에 그녀가 먼저 잠에 곯아떨어지자 나는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나는 벽에 기대어 잠을 잤다.
다음 날 그녀의 어머니 드리라고 경주 명물 황남빵을 사서 보냈는데 별일 없이 지나갔다고 했다. 그 일이 있은 다음 주말에 우리는 그녀의 어머니에게서 결혼을 허락받았다. 그리고 한 달여 흐른 어느 토요일, 그녀와 결혼식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 부산에 갔다. 우리는 해운대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는데 그녀는 아무 말도 없다가 D 여고 앞에서 택시를 세우고 나를 거기서 기다리게 하고는 범일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한 시간 정도 지나서 나오더니 아무 말 없이 다시 택시를 탔다. 우리는 동백섬으로 가서 해운대석각 옆 천막 횟집을 찾아 아나고와 함께 맥주를 마셨다. 나는 결혼을 언제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는데 그녀는 오늘 범일성당에 가서 신부님에게 수녀가 되겠다고 서약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묻지 말라고 했다. 그녀는 말이 없었고 나는 맥주만 마셨다. 그녀는 말하기 싫을 때는 무엇을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날 아무 말도 못 하고 술만 마시다가 밤늦게 그녀를 수정동 집에 데려다주었다. 그녀는 끝내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산비둘기 이야기는 이렇게 황망하게 끝났다.
나는 옥룡암 풍경소리에 많은 밤을 울었다. 애간장은 타고 어지러웠다. 그렇게 겹겹이 쌓아 올렸다가 툭 떨어져 버린 인연이 슬펐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가 왜 그래야 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봄날 밤공기는 차가웠다. 나는 벤치에서 일어섰다. 보안등 불빛이 쏟아졌다. 50년 전같이 오늘도 헤어짐을 말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9시 반이 지났네요. 언니가 10시에 데리러 온다고 했는데.”
“······”
“수녀님! 일어설까요?”
“예.”
시갈로 부르고 싶었지만 수녀님이라고 불렀다. 그녀와 눈길이 마주쳤다. 불빛에 보인 그녀의 눈망울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기도를 했다.
“주여! 이 영혼을 불쌍히 여기소서. 오늘의 만남으로 얼마간이라도 이 생명을 연장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천국으로 부를 때까지 그녀에게 평화를 주소서.”
나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눈물방울이 내 손에 떨어졌다. 천국에서 만나자는 그녀의 마지막 말로 들렸다.
밤바람이 소나무 사이로 소슬하게 불었다.
늦은 밤 파도 소리도 어둠에 묻혔다.
우리가 호텔 커피 라운지로 갔을 때 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형제라고는 해자밖에 남지 않은 터라 저에게도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아니, 그러면 언니와 동생은 ······”
놀라는 내 모습에 언니가 더 놀란 듯 눈이 커졌다. 깊은숨을 쉬고 나서 조용히 무겁게 말했다.
“다들 먼저 세상을 떠났지요. 집안에 말 못할 내력이 있어서 ······. 그래서 해자는 의사가 되려는 생각도 했지요. 결국 수녀원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라운지 창밖의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초점 없는 그녀의 눈빛이 평화로워 더 슬퍼 보였다.
두 손을 잡으며 악수하고 시갈을 떠나보낼 때 그녀의 눈망울에 맺힌 눈물을 보았다. 돌아서 가는 그녀의 진홍색 털모자를 보면서 나는 처음 만났던 야간열차에서 그녀가 입었던 진홍색 코트를 생각했다.
나는 밤의 백사장을 걸었다.
우리가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의 사연들이 모래알처럼 발끝에 밟혔다.
파도 소리가 시갈의 울음소리로 들렸다. 아픔이 가슴에 밀려왔다.
추풍령 야간열차에서 산비둘기로 만나, 해운대 백사장에서 갈매기로 정을 주었고, 동백섬에서 동백꽃처럼 빨갛게 피었었는데. 그 시절 그녀의 눈동자는 슬펐고 나의 마음은 목말랐고 두 영혼은 가난했었는데.
그녀의 언니에게서 들은 ‘말 못할 내력’은 50년 전 그런 이별에 대한 또 다른 의문을 불렀지만, 그녀는 오늘도 말이 없었고 나는 모든 것을 또 묻었다. 사연을 그녀에게 묻지 않고 내 가슴에 묻는 것이 내게 주어진 운명인 것처럼. 그것이 그녀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인 것처럼.
50년 전 ‘나머지’는 말할 수 없다던 그 산비둘기, ‘그리움’을 남기고 말없이 떠났던 그 미뇽, 오늘은 ‘말 못할 내력’을 남기고 또 말없이 떠났다. 차가운 겨울에 진홍색 꽃을 피우고, 봄이 오면 꽃송이 통째로 툭 하고 떨어지는 동백꽃처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