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사찰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의 창건유래 (5)
이병생
합천문화원향토사
연구소장
송광사(松廣寺)
송광사는 전남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조계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조계산은 동쪽에 선암사, 서쪽에 송광사가 자리하여 동서로 축이 잘맞아 균형감을 느끼게 한다. 게다가 어디를 보던 자연경관이 빼어나지 않은 곳이 없어서 일찍부터 한다하는 시인묵객들 치고 이곳을 찾아와 시 한수 읊조리지 않은 사람이 없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한 영향 때문인지 1979년 12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는데, 국립공원이든 도립공원이든 그 격이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 해발 884m의 조계산 연산봉이 병풍처럼 절을 에워싸며, 남쪽의 계곡에서 흐르는 신평천은 송광사 주변을 휘둘러 북쪽으로 빠져나가 주암호에 이른다. 절은 이처럼 주위 산천을 배경으로 한 채, 동쪽의 완만한 산 줄기를 다듬어 서쪽을 바라보며 자리 잡고 있다.
송광사의 본래 이름은 길상사(吉祥寺)다.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으나, 신라말에 혜린(慧璘)선사라는 분이 지금의 자리에 절터를 잡고 산 이름을 송광산, 절 이름을 길상사라 하여 창건했다고 전한다. 이 무렵 가람 규모는 전각이 100여 칸에 달하고 30~40명의 대중이 거주했다고 하는데 이것이<송광사사적비>와 <보조국사비명>에 보이는 길상사 창건 내용의 전부다.
길상사 창건 직후의 사정은 잘 알려지지 않는다. 고려시대에 들어서 인종(재위1122~1146)때 석조(釋照)대사가 법당과 스님들이 지내는 요사 등 퇴락한 건물들을 중창할 뜻을 세웠으나, 갑자기 입적하고 말아 길상사는 점점 기울고 허물어져갔다고 하는 정도가 전한다.
한때 역사의 뒤안길에 침잠해 있던 길상사가 다시 전면에 등장한 것은 보조국사 지눌스님(1158~1210)이 정혜사(定慧社)를 결성하고 그 수행처로 이곳을 택하면서 부터다. 이런 상황에서 1182년 보조국 사는 뜻을 같이 하는 10여명과 함께 타락한 고려불교를 정법(定法)불교로 바로잡기 위해 정혜결사를 맺었다. 정혜란 마음을 한곳에 모아 관조한다는 의미로 참선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해서 정혜결사를 이룬 뒤 7년만인 1197년에 보조국사 등은 자신들의 새로운 이상을 펼칠 길상사를 중창하기 시작했다. 중창불사를 시작한지 7년만인 1204년에 완성했는데, 불당, 승조, 제당, 창고 등 전각이 80여 칸이나 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중창불사가 무사히 완성된 그해 10월 약120일 동안의 경찬법회(慶讚法會)를 베풀어 성대한 낙성식을 봉행했다. 이 일은 정부에서도 커다란 관심을 가졌다. 임금은 산 이름을 “조계산”, 절 이름을 “수선사(脩禪社)”로 하라는 명을 내리고 직접 쓴 친필 사액(寺額)까지 내렸다. 그 뒤 절 이름은 수선사에서 송광사로 바뀌었지만, 보조국사는 이때의 중창으로 고려 불교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켰고, 후세 사람들은 보조국사가 이룬 중창을 제1차 중창이라 불렀다. (절 이름에 “社”라고 쓴 것은 절도 단체라면 단체이니까 이렇게 쓴 것일까가 종교적인 혹은 동호인 모임을 가리켜 “社”라고 썼던 것이다.)
보조국사 이후 수선사(아직 송광사란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를 발전시킨 인물로 수선사의 제2세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1178~1234)을 들 수 있다. 혜심스님의 중창이후 절 이름을 수선사에서 지금처럼 송광사(松廣寺)로 다시 바뀌었다. 그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대략 고려시대 후기에서 조선시대 초기에 이르는 동안이라고 생각한다.
송광사(松廣寺)란 절 이름에 대해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송광”을 분석했을 때 첫 글자인 “송(松)” 열여덟 분의 고승을 뜻하고, “광(廣)”은 이분들이 불법을 널리 퍼뜨린다는 해석이다. 이른바 파자(破字)를 해보면 松(송)은 왼쪽의 “木”과 오른쪽의 “公”으로 구성되어있다. “木”은 다시 “十”과 “八”자로 분해되므로 “松”은 곧 열여덟 분의 “公”으로 해석할 수 있다. “公”은 훌륭한 분을 가리키는 말이므로 열여덟 분의 훌륭한 분이 나타나 불법을 널리 알린다는 의미인 것이다.
실제로 제1세 보조국사부터 시작해서 조선시대까지 이곳에서 열여섯 분의 국사가 탄생했고, 나머지 두 분은 앞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이 오래전부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