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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꿈 (2) – 변명규

꿈을 그리다
우리나라 여자 축구의 신화를 연 여민지 선수, 그녀는 잠자리에 들기 전 꼭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자신이 시합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 힘차게 경기장을 누비다 멋지게 골 넣는 장면을 그려 보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잠자리에서 상상한 것처럼 월드컵 U-17 대회에 출전해 많은 골을 넣으며 국가 대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자랑스러운 올림픽 금메달의 주인공 장미란 선수도 평소 훈련할 때 상상 훈련을 빼먹지 않는다. 역도 경기장에서 관중이 그녀를 향해 환호하며 함께 숨죽어 우승을 기원한 모습을 그려 본다. 실제 경기하는 것처럼 역기를 들어 올린 뒤 금메달을 딴 날처럼 다시 한번 기쁨의 순간을 맞는 장면도 상상해 본다.
1971년 플로리다에 아름다운 동화 속 나라 디즈니 월드가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날을 애타게 기다리던 월트 디즈니는 그 순간을 함께하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5년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개장식에서 누군가 미망인 릴리 디즈니 여사에게 물었다. “월트 디즈니 씨가 이 모습을 보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요?” 그러자 릴리 디즈니 여사는 “그분은 이미 보았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디즈니 월드가 세워진 것이지요.” 디즈니는 월트 디즈니를 계획할 때 이미 완성된 모습을 상상했고, 그상상의 꿈을 현실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니 돌아가셨지만 그 완성된 모습을 이미 보았던 것이다.

“꿈을 심어 주어라”
한 소년이 여덟 살 때 아버지에게 그림책을 선물 받았다. 그 책에는 트로이가 불타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소년은 아버지에게 “아빠 제가 자라서 트로이의 유물을 찾아내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때 아버지는 “그것참 대단한 일인데” 하며 그를 칭찬했다. 그는 아버지의 격려에 힘입어 저명한 고고학자가 되었고 터키 북서쪽 언덕에서 에게문명의 실존인 트로이의 유적을 발굴해 내었다. 그 사람이 바로 세계적 고고학자 슐리만 박사다.
<트로이 유적과 슐리만>
하인리히 슐리만은 19세기 독일의 유명(有名)한 고고학자다. 그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읽고 그 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진실로 존재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책을 바탕으로 발굴 작업을 하여 그동안 감추어져 있던 트로이의 역사를 온 인류 앞에 드러내어 보인 고고학자이다. 올림포스와 미녀 헬레네, 트로이의 목마 등은 슐리만의 발굴이 있기 전까지는 다만 신화(神話)로만 존재해 왔다. 그런데 슐리만에 의해 비로소 이 세상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소년 슐리만은 크리스마스 날 아버지에게서 한 권의 책을 선물 받았다. <어린이를 위한 역사 이야기>라는 책이었다. 기쁨에 넘친 슐리만은 그 책을 단숨에 다 읽었다. 그 책에는 재미있는 그림도 곁들여져 있었다. 그 그림 중에서 나무로 만든 커다란 말(목마) 그림과 불타는 트로이 시내의 모습은 어린 슐리만으로 하여금 많은 상상력(想像力)을 불러일으켰다.
“아버지, 그리스가 트로이와 싸운 것이 정말이에요?” “글쎄, 지금까지는 호메로스라는 시인이 지어낸 이야기라고만 알려져 있어. 그림도 상상으로 그린 것이고……. 그런데 모를 일이지, 정말 있는지도!” 호기심 많은 슐리만은 멸망해 버린 트로이의 흔적이 어딘가에 분명히 남아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은 그 뿌리가 있기 마련이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이……. 그리스가 이 세상에 존재한 것이 분명하다면 트로이도 이 세상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트로이의 유적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는 것일까?’
이렇게 생각한 슐리만은 고고학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가정(家庭) 형편이 어려웠던 슐리만은 열네 살부터 가게 점원, 선원, 사환 노릇을 거쳐 스물네 살 때에는 무역 회사를 경영하면서 돈을 많이 벌었다. 서른여섯 살이 되자 사업에서 손을 떼고 그의 꿈이었던 트로이 발굴에 나섰다. 그는 트로이 유적을 찾아 여행을 계속하였다. 슐리만은 많은 자료를 분석한 끝에 트로이 전쟁의 현장이 지금의 터키 지방인 소아시아의 서해안 히사트리크 언덕이라는 확증을 얻었다.
슐리만은 그 언덕을 무려 4년 동안이나 파내려 갔다. 파고 또 파도 바위 덩어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일꾼들도 도망쳤다. 그러나 그는 거기가 트로이의 옛 땅임을 굳게 믿고 꾸준히 발굴 작업을 진행하였다. 발굴 자금이 떨어지고 사람들은 비웃었지만 그의 믿음을 꺾을 수 없었다. 마침내 4년 만에 실마리가 되는 유물이 하나 발굴되었으니 그것은 헬레네 문장으로 알려진 조개 무늬 왕관이었다.
50여 년의 집념이 비로소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그러자 유럽 전역에서 많은 후원금이 쏟아져 들어왔다. 발굴 작업은 대대적으로 진행되었고, 히사트리크 언덕 일곱 군데에서 트로이의 유적이 차례로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슐리만은 마침내 그 옛날의 전설(傳說)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내었다. 이야기로만 전해져 내려오던 트로이가 정말로 존재하였다는 것이 밝혀지자 지금까지 슐리만에게 붙어 다니던 돈키호테라는 비웃음은 저절로 사라졌다. 그는 고고학에 대한 축적된 지식을 가지고 계속해서 발굴 작업을 전개해 나갔다.
1876년에는 미케네의 옛땅을, 1880년에는 오르코메노스를, 1884년에는 티린스를 발굴해 내었다. 어느새 예순여섯 살의 노구가 되었지만 그의 발굴에 대한 정열은 식을 줄을 몰랐다. 그는 고고학에 대해 많은 업적을 남긴 채 폼페이 유적 발굴 현장에서 숨을 거두었다.
오늘날 서양(西洋)의 고대 역사를 말할 때마다 어김없이 슐리만의 이름이 불려질 만큼 그의 업적은 매우 크다. 이 업적의 밑바탕에는 물론 그가 어린 시절에 읽었던 한 권의 책이 씨앗처럼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모름지기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은 한결같이 책을 가까이 한 사람들이며, 책 속에서 자신의 길을 발견(發見)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그것 참 대단한 일인데”하고 칭찬한 긍정적인 말에서 꿈과 희망을 가지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