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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꿈 (3) – 변명규

꿈을 향해 달려라
1998년 대한항공 여객기가 괌에 추락한 사건이 있었다. 그 추락한 장소가 ‘니미츠 힐’이라는 언덕이었다. 니미츠는 유명한 미국 해군의 제독인데 그의 인생을 알아보자.
그가 소위 시절 해군 대장이 니미츠가 근무하는 함대를 방문했다. 중요한 행사가 있어 참석차 왔는데, 갑자기 대장 계급장이 망가진 것이다. 그래서 전 함대에 급히 타전했다. “대장 계급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즉시 신고 할 것.” 그러나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 함대에는 대장급 장군이 없었으니까 대장 계급장이 있을 리 만무했던 것이다. 그런데 작은 함대에서 계급장이 있다는 연락이 왔고 그 계급장으로 행사를 마쳤다. 행사가 끝난 후 그 해군 대장은 도대체 누가 대장 계급장을 가지고 있었는지 궁금해서 알아 봤더니 니미츠라는 소위였다. 사연을 물으니 그가 소위로 임관할 때 애인에게서 대장 계급장을 선물로 받았고, 그는 반드시 대장이 되겠다는 꿈으로 그 계급장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훗날 니미츠는 대장이 되었고, 그 지혜로운 애인은 대장의 마누라가 된 것이다.
우리는 그냥 꿈만 가지고 있다고 하여 그 꿈을 이룬다고는 할 수 없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특단의 노력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변화할 경우가 많다. 어느 한 곳에 안주하거나 자기의 일상생활에 젖어버리면 희망이나 꿈도 쉽게 잊어버리거나 미루고 만다. 현재의 일에 충실해야 하고, 주위의 분위기에 어울려야 하는 것이 보통사람들이다.
여기에 그러한 해이해지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하나의 증표가 있으면 큰 도움을 받는다. 신체적으로 정상적이지 못한 열등감이나 편모슬하나 너무나 빈곤한 가정적인 열등감 등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하여 그 열등의식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키겠다는 굳은 결심, 좋아하는 사람이나 존경하는 사람으로부터 긍정적이 암시를 강하게 받은 경우. 가문의 전통, 학교의 좋은 전통을 이어받아 자부심과 긍지로서 남보다 앞서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경우 등의 정신적 지주가 있다면 그는 반드시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흐트러지는 마음을 다잡기 위하여 어떤 물질적 증표를 갖는 것도 도움을 주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니미츠의 애인이 선물한 대장 계급장이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이 풀어지고, 게으름을 피우고 싶을 때마다 그 계급장을 보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정진할 수 있었기에 대장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스코트, 좌우명, 부적, 문신 등도 그 뜻은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정신적인 안정이나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것에는 통하지 않을까?
니미츠는 아나폴리스의 미국 해군사관학교를 1905년에 졸업한 후 제1차 세계대전 때 미국 대서양 잠수함 부대 사령관 참모장으로 복무했고 이때 잠수함 작전의 효율성을 확신했다. 해군과 육군에서 여러 직책을 두루 거친 뒤 1939년 미해군의 항해국장으로 임명되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1941. 12) 이후, 태평양 함대의 사령관으로 승진하여 육·해군을 함께 통솔하게 되었다. 1942년 6월 그는 미드웨이 해전과 산호해(海)에서 거둔 승리를 자랑스럽게 발표했는데, 이 해전에서 입은 일본군의 손실은 진주만에서 당한 미국의 손실보다 10배나 더 많았다. 그 뒤로도 솔로몬 제도 해전(1942~43), 길버트 제도 해전(1943), 마셜·마리아나·팔라우·필리핀 해전(1944), 이워[硫黃] 섬과 오키나와 해전(1945) 등 역사적인 전투를 지휘했다.
일본의 항복문서는 1945년 9월 2일 도쿄만(灣)에 있는 그의 사령선 미주리호 선상에서 조인되었다. 1944년 12월 니미츠는 신설된 최고 직책인 해군원수로 승진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는 해군 참모총장으로 근무했다(1945~47). 1947년 전범자(戰犯者) 재판에서 독일의 칼 되니츠 제독이 제기한 질문에 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이 태평양에서 실시했던 무제한 잠수함 작전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E. B. 포터와 함께 〈해군사 Sea Power, a Naval History〉(1960)를 펴냈다.
최첨단 항공모함 니미츠호도 그의 이름에서 따올 만큼(1975년 5월 3일) 미 해군 역사상 그의 명성은 가히 전설적이다. 체스터 니미츠는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 제국주의 해군을 패배시킨 대규모 작전을 직접 계획·조정·집행하기도 하였다.
그가 육군이며 고집이 센 맥아더 원수와 협력하여 태평양 전쟁을 수행해 나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정이었다. 니미츠 제독의 친화력과 외교력, 그리고 관용성이 없었다면 맥아더와의 협력은 어려웠을 것이다.
체스터 윌리엄 니미츠는 체스터 버나드 니미츠(Chester Bernhard Nimitz)와 애나 행크 니미츠(Anna Henke Nimitz)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현재 그가 태어난 텍사스 주 프레더릭스버그의 집은 기념관이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다. 그는 독일 상선의 선원이었던 그의 할아버지 찰스 H 니미츠(Charles H. Nimitz)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그의 할아버지는 그에게 “바다는 인생과 마찬가지로 매우 엄격한 선생님(stern taskmaster)이란다. 네가 바다와 함께 잘해 나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선 네가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운 다음, 일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고, 그리고 걱정하지 않는 거란다. 특히 네가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말이지.”라고 가르쳤다. 바다에 동경과 꿈을 심어준 것이다.
성공한 사람의 뒤에는 가르침을 주저나, 직접 보고 배울 수 있는 솔선수범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성공한 자들은 그들이 심어준 가르침과 꿈을 잊지 않고 항상 생활속에 습관처럼 몸에 익히며 성공의 길로 매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