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잠깐 유혹에 흔들리다 – 이호석 수필가
나는 시골 읍 소재지 변두리 마을에 살고 있다. 정확히 합천읍 소재지에서 국도를 따라 대구 방향으로 1.5km 정도 떨어진 마을이다. 7,80여 세대가 살고 있다. 마을에는 16세대 규모의 연립주택이 한 동 있고, 그 외는 대부분 단독주택이다.
내 집은 이 마을 남측 외곽에 있다. 대지 200여 평에 건물은 2층 양옥이다. 아들 삼 형제는 모두 결혼하여 서울과 대구에 살고 있다. 1층에 내가 살고 있고, 2층에는 다른 사람이 세 들어 살고 있다. 집 앞 뒤로 손바닥만 한 텃밭 두 뙈기가 있고, 집 주위로 매실, 앵두, 포도, 자두, 살구, 감나무 등 유실수가 장식하고 있다.
과거 부모님과 우리 형제들이 살던 집을 40여 년 전 둘째인 내가 형님으로부터 인수하여 새로 집을 지었다. 오랫동안 유실수를 심고 가꿀 때는 젊은 나이라 전혀 고된 줄 모르고 즐겁기만 하였다. 한해가 다르게 자라는 유실수들이 예쁜 꽃을 피우고 맛있는 과일을 제공하여 눈과 입을 즐겁게 해줄 때는 삶에 또다른 생동감을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는 텃밭과 유실수를 관리하고 풀매는 일들이 조금씩 귀찮아지더니 나이 일흔 중반을 넘은 지금은 관리하기가 힘들다. 봄부터 가을까지 자고 나면 솟아나는 풀매기도 지겹다.
가끔 내가 이런 사정을 얘기하면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 아파트 생활의 편안함을 자랑하며 나의 마음을 흔든다. 그때마다 나는 텃밭에서 채소를 자급자족하는 재미와 유실수의 예쁜 꽃도 보고 맛있는 과일도 먹는다며 맞대응을 한다. 그러면서도 내심으로는 친구들의 권유에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기도 한다.
나는 이 집에 대한 불만은 없다. 대지도 넓은 편이고, 콘크리트 슬래브 집으로 현재 사용하기에는 별 불편함이 없다. 뿐만 아니라 집 주변이 유실수로 가꾸어져 있고, 작은 텃밭도 있어 전원주택으로 제격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내 사후에는 아들 삼 형제가 펜션처럼 관리하면서 수시로 모이기도 하고 여름에는 교대로 쉬어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난 겨울 우연히 대구에 살고 있는 둘째 아들과 내가 살고 있는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평소 내 생각을 얘기하였더니, 둘째는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여 서운하고 당황스러웠다. 저네들이 모두 객지에 살면서 일 년에 몇 번이나 다니러오겠느냐. 집은 사람이 살지 않으면 금방 잡초가 우거지고 폐가가 될 것이라며 그대로 존치하는 것에 별로 탐탁지 않은 기색이었다.
둘째의 이야기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맏이와 막내의 생각은 어떨까 내심 궁금했다. 기회가 되면 한번 물어보고 삼 형제 모두가 같은 생각이라면 내가 알아서 처분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둘째의 말을 듣고부터 이 집을 팔고 가까운 곳에 작은 아파트를 매입 하여 편안하게 살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집에서 읍 소재지를 왕래하는 길목에 소규모 아파트 단지가 있다. 언제나 단독주택을 선호하던 나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눈치 챘는지 지나올 때마다 이 아파트가 내 눈을 이끌며 유혹한다.
겨울이 지나고 만물이 생동하는 삼월이 왔다. 집 주위 유실수들이 움을트며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먼저 매화와 앵두나무가 분홍 꽃망울을 터뜨리고 이어서 자두, 살구나무가 예쁜 꽃을 피우며 집 주변을 아름답게 꾸민다. 올해 따라 꽃들이 더 많이 피고 꽃송이도 탐스럽다. 아파트에 들뜬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더 튼실한 열매를 만들고 맛있는 과일을 제공할 테니 저들을 버리고 가지마라고 애원하듯 봄바람에 살랑살랑 꽃가지를 흔들며 아양을 떤다. 그 옆에는 지난가을에 전지한 감나무가 말끔한 신사처럼 버티고 서 있다. 아직 꽃은 피우지 않았지만 옛 추억을 불러오며 나에게 매달린다.
어릴 적 마을 집집이 있는 감나무에 감꽃이 떨어질 때면 그것을 주워 실로 꿰어 목걸이도 만들고 삐득삐득 마르면 먹기도 하였다. 또 감이 탱자만큼 자라면 이른 아침에 골목을 돌아다니며 떨어진 풋감을 주워와 소금물에 담가 삭혀 먹기도 했다. 형제가 많은 우리 집에는 감이 미처 삭기도 전에 서로 맛을 보고 덜 삭은 감을 단지에 도로 넣어 상처난 감들이 소금물에 뒹굴기도 하였다. 당시 시골에서는 감이 유일한 과일이었다.
나는 가만히 집 주위의 유실수를 돌아본다. 나와 함께 3.40년을 같이한 나무들이 새롭게 보인다. 그 긴 세월 동안 나와 함께하면서 매년 가지가 잘려나가는 아픔도 겪었고, 때로는 분무기로 뿌리는 농약을 뒤집어쓰고 괴로워하기도 하면서 오늘 같은 몸매를 만들어 온 것이다. 그야말로 오랜 세월 희로애락을 나와 함께 한 나무들이다.
내가 심어 가꾼 유실수들은 건강하고 왕성한 장년이 되었다. 한창 꽃을 피우고 맛있는 과일을 제공하는데, 나는 어느새 칠순의 노년이 되었다. 그들에 대한 사랑이 차츰 식어가는 것 같아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다.
그래! 내가 편하게 살자고 정성을 다해 키운 너희들과 부모님의 얼과 나의 체취가 배어 있는 이 집을 떠날 수는 없다. 내 기력이 다할 때까지 너희들과 함께 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잠깐 아파트의 유혹에 흔들렸던 내 마음을 다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