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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텃밭 잡초를 매다 – 이호석 논설위원

어느새 7월도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무더위와 장맛비가 계속되면서 텃밭의 잡초가 그야말로 우후죽순처럼 솟아나 일취월장한다. 아마 이 두 성어가 여름철 잡초를 보고 지은 말이 아닐까 싶다. 한 이틀 비가 멎더니 일기예보에 내일부터 우리 지역에 또 비가 내린다고 한다. 저녁 식사 후 잡초가 무성한 텃밭을 둘러본다.
봄부터 텃밭의 잡초와 벌써 너덧 차례 싸웠다. 그 후에 자란 잡초가 또 밭고랑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성하다. 그동안 무더위와 장맛비 때문에 밭 맬 시기를 놓쳐 버린 것이다. 이제 밭 옆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부끄러워서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내일 아침에는 열일을 제쳐놓고 이놈들과 또 한바탕 싸워야겠다고 다짐한다.
아침 5시경 일어나 창문을 열어본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으나 금방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다. 예보에 의하면 오후에 비가 내린다고 하였으니 조금 시원한 이 아침에 저놈들을 해치우기에 딱 좋은 것 같다.
간밤에 열대야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몸이 찌뿌둥하다. 잡초 매러 나서기가 머뭇거려진다. 먼저 복장부터 완전무장을 했다. 긴팔 셔츠와 긴바지를 입고 모자, 장갑을 두루 챙겨 놓고, 빵 하나, 사과 한 쪽과 우유 한 컵으로 요기를 한 후,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처럼 각오를 단단히 하고 나섰다.
텃밭에 앉아 호미로 한 뼘이 더 되는 잡초를 뽑기 시작한다. 시작한 지 5분도 안되어 등에서 땀이 주르르 흐른다. 약이 오른 새까만 모기들이 하나둘 나타나 내 주위를 서서히 돌며 침투할 곳을 찾는다. 저들의 서식지를 파괴한다고 비상이라도 걸은 걸까. 마릿수가 자꾸 늘어난다. 며칠 전, 모기한테 다리 두 곳이 물려 아직도 가려움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라 늘어나는 모기떼가 겁이 난다.
나는 일단 후퇴하여 재무장하였다. 모자 주위에는 읍사무소에서 나누어준 모기 기피제를 뿌리고 에프킬라 한 통을 가져와 풀 뽑는 곳 1~2m 앞 놀 골에 살포해 가면서 풀을 맨다. 에프킬라에 죽어가는 동료들을 보면서 화가 났는지 모기들이 사생결단으로 공격해 온다. 나와의 공방이 더욱 치열해졌다.
날이 채 밝지도 않았는데 집 옆 자두나무에서는 참새들이 이 가지 저 가지로 옮겨 다니며 짹짹거리고, 뒷산 골짜기에서 뻐꾸기가 뻐꾹뻐꾹 구슬피 운다. 참새는 원래 모이면 조잘거리는 놈들이지만, 뒷산 뻐꾸기 울음소리는 언제 들어도 무슨 슬픈 사연이 있는 것처럼 애잔하다. 어쩌면 참새, 뻐꾸기도 나와 같이 간밤에 열대야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아침 일찍부터 저렇게 짜증스레 우는지도 모르겠다.
땀에 옷이 흠뻑 젖고 나니 젖은 땀이 식으면서 오히려 시원해진다. 집 앞쪽의 텃밭을 매는 데 벌써 두어 시간이 걸렸다. 계속되는 모기 공격에 나는 철통방어를 하였지만 결국 목과 다리에 세 곳이나 물리고 말았다.
서서히 잡초가 제거되니 잘 보이지 않던 오이, 가지, 고추, 토마토가 서서히 제 얼굴을 드러내며 반갑다고 인사를 한다. 역시 사람이나 식물이나 주위 환경이 깨끗해지면 자체가 돋보이는구나 싶다.
잡초를 매는 동안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한 가지는 논밭의 잡초가 농부들에게 꼭 귀찮게만 하는 존재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더위에 축 늘어진 게으름을 쫓고 삶에 활력소를 가지게 하는 좋은 점도 있는 것 같다. 오늘 아침, 나도 잡초 매는 일을 시작할 때는 아주 귀찮은 일로 생각하면서 망설이기도 하였지만, 땀에 흠뻑 젖어 일할 때는 이 잡초가 무더위 속에서도 나를 억지로라도 이렇게 움직이게 하고,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였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예전에 아버지께서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평소 농사를 지으시면서 “흙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언제나 심고, 가꾼 대로 수확하게 해준다.”고 하셨다. 지나고 보니 나에게 매사에 부지런하고 진실하게 살도록 에둘러 당부를 하신 것 같았다. 나는 가끔 이 말씀을 생각하며, 흙과 가까이 있는 것이 진실에 가깝게 사는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지난 초봄, 텃밭을 정리해 놓고 시장에 몇 종류의 모종을 사러 가기 전에 올해는 오이를 다섯 포기만 심을 계획으로 적당한 곳에 거름과 비료를 주고 심을 곳을 장만해 놓았다. 그런데 오이 모종을 사 올 때 일곱 포기를 사 왔다. 남은 두 포기는 귀찮아서 비료 거름도 주지 않은 옆 공터에 그대로 심었다. 이를 심을 때 나는 ‘비료, 거름을 준 곳이나 그냥 심은 곳이나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두 포기 오이는 나에게 ‘천만의 말씀’이라며 답했다. 내 편의를 합리화 하려는 아전인수 격 생각이였을 뿐이었다. 그곳의 모종은 잘 자라지도 않았고 오이도 별로 열지 않았으며 어쩌다 열린 작은 오이는 모두 꼬부라져 볼품이 없었다. 나는 이를 보면서 생전 아버지께서 “흙은 절대 거짓말하지 않는다.…” 고 하시던 말씀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오후가 되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우산을 받쳐 들고 텃밭 주위를 돌아본다. 골골이 무성하던 잡초를 매고 난 텃밭은 더벅머리를 갓 이발하고 난 사람처럼 말끔하다. 작은 성취감과 상큼함에 기분이 좋다. 앞 밭의 오이, 가지, 고추는 무더위 속에 수시로 내리는 비를 맞으며 생기가 넘쳐 너울너울 춤추고 있고, 뒤뜰 감나무에는 알밤만 한 단감이, 사과나무에는 주먹만 한 사과들이 해맑은 소년들의 얼굴처럼 풋풋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