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꿈 (8) – 변명규
철가방 총각의 변신
철가방 조 태훈 그는 1970년 생으로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친구 따라 무조건 서울로 갔다. 서울역에서 전봇대에 붙어 있는 광고를 보고, 전화하여 취직한 곳이 명동의 ‘충무원’이라는 중화요리 집이었다.
첫날부터 시련이 닥쳤다. 복잡한 명동거리, 서투른 배달 솜씨, 주위 사람들의 시선 그런 상황에서도 성실히 배달에 임하여 그의 배달 솜씨는 날로 향상되었다. 지리와 배달에 자신이 생기면서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배달 방법을 생각했고, 다음은 손님을 만족시키는 방법, 그리고 손님을 감동 시키는 방법으로 거듭 연구하고 발전해 나갔다. 남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일, 중화요리 배달원 하면 누구나 임시로 머무는 직장, 다른 일거리를 찾기 전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일거리로 치부하지만 조 태훈씨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최고의 배달부가 되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거기에 인생을 걸었던 것이다. 배달 가서 할아버지가 안경이 고장나 나사를 찾아 헤매는 것을 고쳐서 깨끗이 닦아드렸고, 집집마다 배달된 그릇을 조사하여 양파와 단무지 어느 것을 좋아하는가, 어느 정도 먹었는가 하는 것을 조사하여 다음 배달에 활용했다. 그러니 자연 단골손님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 번은 젊은 남녀 두 분이 식당에 들어와 무엇을 시킬까 하고 망설이다가 짬뽕과 짜장면을 시켜 나누어 먹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은 것이 있었다. 짜장면을 먹고 나면 뒷맛이 느끼하고 개운치 못했는데, 그때부터 짜장면을 시키는 손님에게 반드시 짬뽕국물을 서비스했다. 양장피 팔보채 같은 푸짐한 요리를 시키는 고객에게는 군만두를 덤으로 주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던 것을 소주 두 병으로 바꿔서 서비스하는 특별한 아이디어를 활용했으며 그렇게 좋아하더라는 것이다. 자기 집에 주문해 달라고 주로 성냥 통을 돌리는데, 그것이 별 효과가 없음을 알고, 그 원인을 알아보았더니, 보통직장에서는 총무과의 아가씨, 별도의 사무실에서는 신입 여사원이 주문을 도맡아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성냥이 아닌 스타킹 작전으로 공략하여 주문을 많이 늘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군대에 갔다 와서는 고려대 후문에 있는 ‘설성반점’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고려대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매상은 다른 집보다 적었다. 며칠을 두고 그 원인을 알아본 결과 두 가지의 원인을 찾았던 것이다. 하나는 양, 또 하나는 속도였다. 학생들은 양이 많은 것을 선호했는데, 그 양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게를 달아보는 것이 아니고 눈으로 보아 많아 보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설성반점의 그릇이 유난히 커서 같은 양을 담아도 큰 그릇에 담기 때문에 적어 보이는 것이었다. 주인에게 설명하여 당장 그릇을 바꾸었는데 그 효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배달 속도 문제는 교수들에게 있었다. 교수들은 강의가 있기 때문에 속도가 빨라야 한다는 것을 알고 교수들이 주문할 때는 다른 주문과 순서를 약간 바꾸더라도 먼저 만들어 배달했다. 그리고 그는 자기만의 고유한 특징을 알리기 위해서 동작이 빨라야 하는 군인 복장에 오토바이 뒤에는 ‘번개’라는 깃발을 달고 다녔다. 그래서 교수들 사이에 “설성반점에 주문할 때는 담배를 피워 물지 말아라.”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태훈 번개표 쿠폰’을 만들어 음식을 시킬 때마다 쿠폰을 주고, 쿠폰이 많이 모이면 음식을 무료로 서비스하는 제도를 만들어 대학생들이 쿠폰 내기 운동 시합도 한다는 것이다.
고려대 경영학과 박 종원 교수가 조태훈의 활동을 예사로 보지 않고 세심히 관찰해 본 결과 그는 경영이라는 것에는 문외한이었지만 누구보다 경영의 기본 원리를 철저히 실천하고 있음을 알고, 그를 불러 경영학과 그의 활동 상황을 연결시켜 설명하고, 강의할 내용을 만들어 주면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해보라고 했다. 그는 자기가 실제로 활동한 내용이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구수한 사투리도 섞어 가며 재미있게 강의했다는 것이다. 그의 강의가 알려지면서 언론에 소개되고, 각 기관이나 기업체에서 초청이 쏟아져 일약 유명한 강사로 변신한 것이다. 그는 또한 ‘신지식인’으로도 선정되었다. 오늘도 그는 작고 소박한 꿈이지만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를 향하여 그 길을 열심히 걷고 있는 것이다.
최초로 도버해협을 헤엄쳐 건넌 여성
1926년. 여성으로서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도버해협을 헤엄쳐 건넌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때까지 도버해협을 헤엄쳐 건넌 여성이 없었기 때문에 한 자동차 회사에서 일찍부터 도버해협을 헤엄쳐 건너는 여성에게 엄청난 상금과 최고급 승용차 한 대가 걸려 있었다.
여기에 미국의 에델레라는 열아홉 살의 소녀가 도전장을 던졌다. 그리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그는 도버해협을 헤엄쳐 건너기 시작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예상했던 대로 중간도 못 가서 지쳐버리고 말았다. 숨이 막히고, 손발은 마비되어 더 이상 헤엄친다는 것은 불가했다. 피곤에 지친 그가 구조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눈을 감는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눈부시게 최고급의 빨간 승용차가 떠오른 것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상금도 상금이지만 멋진 승용차를 갖는 것이 희망이었다. 그 순간 힘이 불쑥 솟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헤엄치기 시작했다.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녀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이제나저제나 그녀가 구조되기를 기다렸으나 끝까지 헤엄쳐 도버해협을 횡단하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사람들이 목표를 세우기는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 목표를 달성시키기까지의 피눈물 나는 고난과 역경 가시밭길과 같은 어려운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러한 과정을 이겨낼 수 있는 끈기와 용기 그리고 지혜가 필요한 것이며, 그 목표를 향한 강한 집념, 이루려는 꿈과 희망을 향한 강한 의지력이 작용할 때 가능한 것이다.